박근혜 정부 때 양승태 대법 ‘민사 책임 없다’ 판례 7년 만에 변경
“위헌 법령에 의한 공무원 직무 집행으로 기본권 침해” 원심 파기
박정희 정권 때 발령된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해 옥살이를 한 피해자들에 대해 국가가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이 나왔다.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이므로 정부에 배상 책임이 없다’는 7년 전의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오후 A씨 등 71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 등은 1970년대 일체의 유신 반대 행위를 금지한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혐의로 기소됐다. 영장도 발부되지 않은 상태에서 체포돼 유죄 판결을 선고받고 수감 생활을 했다.
이들은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긴급조치 9호’에 대해 위헌·무효 결정을 내린 뒤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어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옥살이를 하는 등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는 이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때인 2014년과 2015년 대법원이 내린 판례를 따랐다.
당시 대법원은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국민 전체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해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 ‘긴급조치는 위헌·무효 선언이 되기 전이라 수사나 재판을 한 담당자들이 위법성을 인식했다고 볼 수 없다’며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1·2심 재판부는 원고 중 일부가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국가로부터 보상금을 지급받은 점도 기각 이유로 들었다. 보상금을 받음으로써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셈이기 때문에 별도의 배상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하며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새로운 판례를 제시했다.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는 위헌·무효임이 명백하고 긴급조치 9호 발령으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는 그에 따른 강제수사와 공소제기(기소), 유죄 판결의 선고를 통해 현실화했다”고 밝혔다.
이어 “긴급조치 9호의 발령부터 적용·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작용은 ‘전체적’으로 보아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해 그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으로서 위법하다”면서 “긴급조치 9호의 적용·집행으로 강제수사를 받거나 유죄 판결을 선고받고 복역함으로써 개별 국민이 입은 손해에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또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보상을 받았다 해도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대해서는 여전히 국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