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보고서란 기업의 경영활동 중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 등 비재무적 활동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보고서다. 기업의 일상적인 사업활동은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 같은 재무제표상의 숫자로 ‘사후’에 사업보고서를 통해 공개된다.
최근 들어 기업의 경영환경은 갈수록 예측 불가성이 심화되고 있다. 수익을 잘 내기 위해서는 위험 요인을 ‘사전’에 파악하고 대비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또 한편으로는 자기증식적 DNA를 가진 자본의 탐욕에 대응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강조하고, 공유가치창출(CSV)을 홍보했지만 심화되는 양극화는 해소시키지 못했다. 여기에다 그동안 인류의 번영을 뒷받침해 주었던 화석연료 사용이 지구 온난화라는 통제 불능의 재앙을 불러오고 있다.
따라서 경영의 사전 예방 활동이 시급해졌다. 무엇보다 온난화 대책(E)이 중요해졌고, 구매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양극화 해소(S)가 중요해졌다. 그리고 기업이 이러한 이슈에 미리미리 준비를 할 수 있는 지배구조(G) 또한 중요해졌다. 이러한 배경으로 ESG 보고서는 MRV(측정·보고·검증)가 핵심이 됐다. 즉, 경영활동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요소를 측정 가능하고(Measurable), 보고 가능하고(Reportable), 검증 가능한(Verifiable) 방식으로 작성해야 한다.
ESG 보고서는 크게 세 파트로 구성돼 있다. E·S·G 각 부문별 기업의 철학과 의지를 밝히고 실증을 보여주는 본문 부문, 이와 관련된 정량 데이터를 보여주는 자료 부문, 보고서 작성 표준 준수 등을 검증해주는 부록 부문으로 돼 있다. 이 중 MRV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료 부문이다. 본문에서 미사여구로 설명된 ESG 활동을 실제 수치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업보고서 측정·보고·검증 불능
삼성전자·현대자동차·SK하이닉스·포스코·LG화학 등 세계적 명성을 가진 우리나라 대표 제조 기업 5개사의 ESG 보고서를 살펴봤다. 이해관계자들이 보고서의 자료 부문에서 기대하는 것은 본문에서 주장한 주요 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다. 그러나 현실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기업의 지속 가능 경영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선 최소한 10년 이상의 장기 시계열 트렌드를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외부 평가기관이 요구하는 3, 4년치에 불과하다. 또한 향후 일정 시점별로 회사의 목표치를 제시하고 현재 달성도, 차이 원인, 대책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숫자의 의미가 바로 이해되도록 원단위(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기준량) 표시를 해주어야 한다. 자동차 대당, 철강 t당처럼 원단위 환산 분모가 일정해야 한다. 많은 회사들이 원료 투입(제품 구성)이 다양한 관계로 매출액(억원)당 원단위를 표기하는데 이는 오히려 혼선만 줄 뿐이다. 특히 온실가스의 경우 배출권 할당 기준에 대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다음으로 데이터 간의 인과관계를 보여줘야 한다. 인건비의 경우 각 회사의 성별, 정규·비정규직과 협력회사의 데이터가 비교 표기되어야 한다. 그 차이를 줄이는 것이 ESG경영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다른 회사에 비해 자료가 좀 상세하다. 일부 데이터는 반도체(DS) 부문과 가전(DX) 부문도 구분했다. 성별 임금 격차의 경우 10년치 데이터를 보여주고 있다. 임금 격차가 2013년 34.8%에서 2022년 23.1%로 좁아졌지만 앞으로 고직급 여성 비율을 높여서 개선하겠다고 선언했다. 장애인 고용률은 법적 기준(3.1%)보다 낮은 1.6%임을 공개하면서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설립해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온실가스 감축률(%)은 자료가 없고, 배출전망치(BAU) 대비 감축량을 밝혔다. 이는 ‘넷 제로’ 관점에서 의미가 없다.
현대차의 경우 제품이 단일한 관계로 자동차 대당 다양한 환경지표를 표시하고 있다. 많은 데이터들이 개선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일부 악화되는 원단위에 대해서는 주석으로 설명을 해줘야 한다. 장애인 고용률의 경우 2021년 3.13%에서 2022년에는 2.82%로 후퇴했으나 본문이나 자료에서 설명이 없다.
SK하이닉스의 가장 큰 특징은 주요 항목별로 2030년 목표를 설정하고 현재 진도율과 차년도 목표를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모든 기업이 본받아야 할 점이다. 아쉬운 점은 이천공장의 황산화물(SOx) 발생량이 과거 3년 평균 7.7t에서 2022년에는 25.9t으로 236%나 증가했는데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본문에서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강조했지만 장애인 고용률(%)은 표기를 안 하고 인원만 표기를 했다. 계산을 해보니 매년 0.6%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다만,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장애인을 합하면 3.4%수준이 된다.
포스코의 경우 이미 1995년부터 환경보고서, 2004년부터 지속가능보고서를 발표해 온 관계로 ESG 보고서의 환경 관련 자료는 나름대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장애인 고용률도 3.1%로 법적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 다만, 2030년까지 온실가스 10% 감축을 선언했는데 자료상으로는 진도율이 보이지 않고 있다.
10년 이상 시계열 정보 못 보여줘
LG화학 보고서는 우선 용어의 혼선이 눈에 뛴다. 환경 용어 명사(Environment)와 형용사(Environmental)가 혼용되고 있다. 대표이사가 특별히 인권·노동 등 ‘유엔 글로벌 임팩트 10대 원칙’을 지지한다고 별도로 선언을 하고(49쪽), 본문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며 포용하는 문화를 중시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장애인 고용률(%)은 밝히지 않아 계산을 해보니 1.7%에 불과했다. 질소산화물(NOx)의 발생량이 2020년 867t에서 2021년 4134t으로 377%나 증가했는데 설명이 없다.
5개 기업의 ESG 보고서는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다른 기업들의 모델이 된다. 불리한 데이터라도 10년 이상 시계열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목표치를 제시하고, 중간 점검이 되도록 해야 한다. 평가기관을 설득할 수 있도록 이해관계자들과 상생하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정보화해야 한다. 대기업이 앞장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