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 상향, 정년연장부터” “국민연금 개혁, 정년연장 논의 서둘러야” “60세 넘어도 기운 팔팔한데 … 정년연장 시동 건다” “고용노동부, 정년연장 논의”….
정년연장에 관한 보도가 부쩍 늘었다.
오세훈의 서울시가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연령 상향을 검토한다고 하자 현재 60세인 정년부터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윤석열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을 하겠다면서 현재 수급 연령을 늦추는 방안 등이 제기되자 역시 60세로 정하고 있는 정년의 연장과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초고령사회와 인구 감소에 대한 대책에서도 정년연장이 논의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이 나라는 정년연장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노동단체들이 이 나라 노동자들의 고용보장을 위해서 주장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노조보다는 사용자 기업을 위한 정책 추진에 관심이 많은 윤석열 정권에서 그에 관한 논의를 서두르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한국경총이 지난 2일 주최한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확산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는 “60세 이후로 정년연장하려면 연공식 임금체계 개편해야 한다”는 발제자와 손경식 경총 회장의 주장이 나오고 있으니, 오늘 이 나라에서는 정년연장 필요성에 관해서는 노사정 모두가 공감하는, 보기 드문 일이 일어나고 있다. 낯설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나는 어리둥절하다. 최근까지도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등 대기업노조가 60세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단체교섭 요구를 한 데 대해서 귀족노조 등의 과도한 요구라도 되는 것처럼 비난이 쏟아졌던 나라에서 이러니 말이다.
2. 이것은 무엇인가. 정년연장은 사용자 자본과 권력에게도 추진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국민연금 고갈 방지를 위해서는 수급 연령을 상향하고 더 많이 납부해야 하는데 이는 정년을 연장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이대로면 노동시장의 공급이 줄어들게 되니 공급 확대를 위해서 역시 정년을 연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년연장은 이 나라에서 권력과 자본이 그 필요를 공감하는 것이라서 이를 정책으로 추진하게 될 것은 뻔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추진을 앞두고서 주장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한 정년연장 추진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정년연장을 추진하면서 나오고 있는 논의를 살펴보면 기존 임금 수준을 낮춰야 한다고 하고, 연공급제를 직무·성과급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년 60세로 개정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 2016년 시행을 앞두고서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기존 임금을 삭감했다. 그처럼 오늘 정년연장을 추진하면서 자본의 주장과 권력의 논의를 보면, 기존 임금제도에 의한 임금 수준을 보장하지 않고 임금체계 개편을 통해서 사용자 자본의 인건비 부담을 낮추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이처럼 노동자의 임금 권리를 삭감하고자 하는 것인데도 이 나라에서는 이를 추진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오히려 이를 추진하는 권력과 사용자 자본은 당당하기만 하다.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이러한 권력과 자본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정년연장이 노동자를 위한 것이라 보기 때문인 것 같다. 정년을 연장해서 더 일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니 이에 대해서 노동자도 사용자를 위해서 기존 임금 수준을 삭감하고 임금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를 위해서 정년을 연장하는 혜택을 주니 대신에 노동자도 임금에 관해서는 양보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임금체계 개편을 정년연장에 관한 논의의 대상 내지 전제로 삼는 데에는 정년연장이 노동자에 대한 특별한 혜택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3. “거리로 뛰쳐나온 100만 프랑스 시민들 … 마크롱식 정년연장 뭐길래?” 노동자 정년을 2년 더 연장해 기존 62세를 64세로 늘리겠다고 마크롱 대통령이 이를 강행하자, 프랑스에서는 약 100만명의 노동자,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는 보도였다.
이 뉴스 기사를 보면, 이번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온건 성향의 프랑스 노동민주동맹(CFDT)은 ‘죽을 때까지 일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주요 이유라고 밝혔다. 연금법에 의해서 정년 만기로 연금 전액을 지급받을 수 있었는데 정년이 연장되게 되면 그에 따라 연금 지급이 늦춰지게 돼 정년연장에 반대해서 프랑스에서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는 것이다. 이들 프랑스 노동자들에게는 정년연장은 혜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일만 할 수는 없다’는 그들의 이유는 죽을 때까지 일할 수 있는 것이 노동자에게 혜택일 수 없다는 걸 말해 준다. 적어도 프랑스 노동자들에게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 이 나라에서 권력의 정년연장 추진에 대해서도 무작정 노동자를 위한 혜택이라고, 당연하게 인식한다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제대로 갖춰진 연금제도를 통해서 정년 이후에 안정적인 노후가 보장될 수 있는 상태라면 빨리 정년퇴직하기를 바랄 것이다. 이런 나라에서라면 정년을 연장해서 연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계속 일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바로 프랑스 노동자들이 그렇다. 이와 달리 이 나라에서는 노동자·노동조합이 정년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정년 퇴직해 봐야 국민연금 수급 없이 수년을 살아야 하는데, 국민연금제도를 개혁한다면서 그 수급 연령을 높여 그조차 더 늦추겠다니 정년이라도 연장해서 생존할 수 있게 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인 것이다. 한마디로 국민연금제도 등 사회적 보장이 미흡한 이 나라의 노동자들에게는 ‘죽을 때까지 일만 할 수 없다’는 프랑스 노동자들의 이유는 부럽기만 할 뿐이고, 그저 죽을 때까지 일만 할 수 있어도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4. 그런데 이렇게 연금 수급 등에 관한 논의와 결부돼서 연장이 논란이 되고 있는 정년제도 자체의 법적 정당성을 살펴본다면 과연 정당한 것일까. 2013년 고령자고용법 개정을 통해서 노동자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해서 적어도 법적으로는 이 같은 논의를 한다는 것이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법적으로 정년에 관해서 규정하고 있지 않은 상태라면, 정년제도는 타당할 수가 없다는 것이 오래전부터 해 왔던 내 주장이다. 과거 정년연장에 관한 고령자고용법 개정 전후해서 이미 이 칼럼 등에서 밝히기도 했다.
노동법은, 노동자의 권리에 관해서 규정하고 있는 법은 기가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 의한 일정 기간(현재는 2년)까지만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기간의 제한 없는 근로자로 사용해야 하도록, 노동자의 계속 고용을 보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법의 원칙으로 보자면, 근로계약상 노무를 노동자가 제공할 수 있는데도 일정한 연령이 도달했다는 이유로 노동자를 퇴직시키는 것은 타당할 수가 없다. 노동자가 사직 의사를 밝히거나 사용자와 합의해서 퇴직하지 않고 노동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로계약 관계를 종료시키는 것, 즉 노동자를 퇴직시키는 것을 노동법은 해고라고 한다.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노동자를 해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근로기준법 23조). 바로 정년제도는 해고에 관한 노동법 규정에 합치된다고 볼 수가 없다.
60세까지 해 오던 것처럼 노무제공을 할 수 있는데도 60세가 됐다고 해서 노동자를 퇴직시키는 사용자의 행위가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라서 정년을 이유로 한 퇴직처분은 해고로서 그 사유로서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 아무리 노사합의로 단체협약에서, 회사 인사규정 등 취업규칙에서 정년을 퇴직사유로 정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해고의 사유로서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이러한 주장을 노동자에 편향된 자라서 내가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무리 편향됐다고 하더라도 나는 법적 논리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철저히 노동법적 논리에서 하는 주장이다. 물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60세 이상으로 정년을 보장하도록 한 현행 고령자고용법 아래서는, 그 법률이 위헌이 되지 않는 한 이제는 법률상으로는 주장하기 어렵게 되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정년제도는 본질적으로 해고제도다. 아무리 그 정년을 연장한다고 해도 해고로서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제도를 두고서 정년을 연장해 준다면서 그 대신에 임금체계 개편 등 노동자에게 무언가 해야 한다고 오늘 이 나라에서는 권력이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