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이 민주노총과 산하 노조에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이 주도한 노조파괴 공작으로 인한 손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묻는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주장의 대부분을 인정하는 판결을 8일 선고했다.
원고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전교조, 공무원노조, 서울교통공사노조다. 이로써 피고인 대한민국 정부는 ▲민주노총에 1억원 ▲전교조에 7,000만원 ▲공무원노조에 5,000만원 ▲금속노조에 3,000만원 ▲서울교통공사노조에 1,000만원 ▲조○○에게 100만원으로 도합 2억6,1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
민주노총, 전교조,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금속노조,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 등은 지난 2018년 6월 이명박(MB) 정부 당시 국정원이 주도한 일련의 노조파괴 공작로 인한 손해를 주장하며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바있다.
이에 서울중앙지법은 대한민국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로써 MB 정부가 당시 국정원이 주도한 일련의 노조파괴 공작은 노동조합의 하부조직 탈퇴를 유도하고, 선거·총회 결의 등 각종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하고, 노동조합에 대해 비난의 여론을 조성한 혐의들이 인정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MB 정부 일련의 불법행위에 대해 국가배상법에 적용되는 소멸시효 기간이 도과됐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주노총 법률원(원장 정기호)은 “이번 판결은 법원의 사실인정을 통해 과거 MB 정부 시기 이뤄진 노조파괴 공작의 진실을 확인했다는 점에 대해서 상당한 의의가 있다”면서 “MB 정부 시기 이뤄진 노조 파괴 공작은 ‘국가 주요 기관이 조직적으로 협업해’ 이뤄진 불법행위였다”고 단언했다.
원고들은 소송 과정에서 입수한 2010년 및 2011년 기간 동안 국정원이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실로 보낸 176건의 문서를 입수했다. 이를 통해 국정원은 경찰, 검찰, 노동조합과 관련된 주무부처 등과 긴밀히 결합해 원고들의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하기 위한 세부적인 전략을 수립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문서에는 노동조합이 집회를 개시할 경우 경찰을 통해 금지통보를 발령하고, 검찰을 통해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에 대해 체포·구속영장을 청구하게 하고, 주무부처로 하여금 사용자와 접촉하게 하여 정부의 지원을 중단할 것을 겁박하거나, 노무관리 강도를 강화할 것을 주문하고, 사용자로 하여금 파업중인 노동조합에 대해 손해배상청구를 유도해 파업 중단을 압박할 것을 주문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민주노총 법률원은 위의 문서에 담긴 내용을 두고 “현재 윤석열 정권이 노동조합에 대해 보이는 태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수준”임을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국가에 의한 노조파괴 공작이 불법행위에 해당함을 선언한 이번 판결은 현 시국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면서 “청와대, 국정원, 고용노동부 등 주무부처, 경찰, 검찰 등 국가 주요 조직이 협업해 노동조합의 쟁의행위 등 정당한 활동을 방해하고, 무력화하고자 한 모습은 현재 윤석열 정권이 화물연대의 파업 국면에서 보이는 태도와 본질적으로 같다”고 부연했다.
서울중앙지법은 국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진 노동조합 파괴 공작은 헌법이 보장한 단결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임을 분명히 했다. 헌법재판소는 단결권의 헌법적 의미와 관련해 ‘근로자단체라는 사회적 반대세력의 창출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노사관계의 형성에 있어서 사회적 균형을 이루어 근로조건에 관한 노사간의 실질적인 자치를 보장하려는데 있다’라고 판시하고 있다(헌법재판소 1998. 2. 27. 선고 94헌바13 결정).
따라서 국가는 헌법 제10조 제2항에 근거한 국민의 기본권 보호의무에 따라 노동조합의 단결권 행사를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를 부담한는 것이다. 단결권을 보호할 책무를 향유하는 대한민국이, 노조을 국가의 적으로 삼아 그 활동을 방해하고, 와해할 전략을 수립한 것은 헌법적으로 도저히 정당화 될 수 없는 불법행위라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민주노총 법률원은 “윤석열 정권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국가가 노동조합에 대해 부담하는 단결권 보호의 책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한다. 요컨대 국가는 노동조합이랑 싸우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는 오히려 노조의 단결권 행사를 최대한 보장할 의무를 부담한다. 이와 같은 단결권 보호 의무를 망각한 채, 현재와 같은 노동조합 탄압 기조를 계속할 경우 언젠가 또 다른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