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시 5월1일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노동절을 기념했다. 나라와 정당, 노동단체에 따라 목소리는 제각각이었지만, 2023년 세상은 노동절을 기념했다. 1886년 5월1일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총파업투쟁을 하고, 3일 파업투쟁을 벌이던 맥코믹 공장 노동자를 향해 경찰이 발포하고, 이에 격분해서 4일 헤어마켓 광장에서 열린 규탄집회에서 경찰의 사격으로 70명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던 사건으로부터 137년이 지났음에도 오늘 세상은 여전히 기념하고 있다. 당시 노동자들의 총파업투쟁은 8시간 노동제 쟁취를 위한 것이었다. 하루 8시간만 일하고 살겠다는, 8시간 노동제에 대한 노동자의 바람이 대규모 총파업투쟁로 이어졌다. 사용자 자본과 그편에 선 경찰의 폭력 진압에 노동자들과 지도자들이 죽거나 다쳤던 것이니, 어찌 노동제의 의의를 새기지 않고 온전히 그날을 기념할 수 있겠는가.
2. ‘노동절 국힘 “특권노조 횡포” …’ 이 나라에서 노동절에 나는 이런 제목의 뉴스(미디어오늘 5월1일)를 읽었다. 해당 기사는 노동절을 맞아 국민의힘이 유상범 수석대변인을 통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노동 가치를 존중하며 노동자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또 안전한 노동 환경을 만드는 데에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하지만 최근 들어 일부 특권 노조 행태는 노동 의미를 퇴색시키고, 노동자라는 이름에 오히려 먹칠을 하고 있다”며, “‘노동자 권익’과는 전혀 무관한 불법, 떼법 파업을 주도하는가 하면, 자신들만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고용 세습’, 비노조원들에 대한 차별과 괴롭힘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뉴스 기사만 읽어봐도 오늘 이 나라에서 권력이 어떻게 노동절을 기념하는지 보인다. 오늘 이 나라의 집권 여당 대변인이 노동절에 발표한 말을 보면, 윤석열 정부와 집권 여당은 특권 유지와 불법파업을 하는 노조를 다스려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힌다. 어디 한번 보자. 노동자 권익과 전혀 무관하게 불법, 떼법 파업을 주도하는 노조가 이 나라에서 얼마나 있을까.
오늘 이 나라에서 사용자 자본과 권력이 불법, 떼법 파업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노조 투쟁을 살펴보면, 대부분 임금인상 같은 임단협 또는 구조조정 저지를 비롯한 노동자권익과 관련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조합원 등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파업 투쟁을 한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 하지 않는다. 만약 집권 여당의 대변인이 노동자 권익을 위해 이 나라 노조들이 불법, 떼법 파업을 일삼고 있다고 비난했다면 논리적으로 적어도 말은 된다고 해줄 수 있다. 그렇지만 엉뚱하게도 노동자권익과 전혀 무관하게 노조가 불법, 떼법 파업을 주도하고 있다고 하니 되지 않는 말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고용 세습과 비노조원 차별을 비난의 이유로 내세웠다. 고용 세습부터 보자. 과연 이 나라에 고용 세습을 쟁취한 노조가 어디 있길래 그런 노조를 손봐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하는 것인가. 지금까지 20여년 동안 노조를 자문하고 노동자를 상담하면서 이 나라 노조들이 체결한 수천 개 단체협약을 봤다. 하지만 조합원 자녀에게 고용 세습을 보장했다고 볼 협약을 나는 보지 못했다. 오늘 고용 세습에 관한 협약조항을 두고 있다고 비난받는 사업장 단협은 해당 사업장에서 평생을 일하고 퇴직한 경우 그 자녀에 채용 시 가점을 부여하는 것이다. 해당 사업장에서 일하다가 다치거나 죽었다면 그 자녀가 채용 지원시 우선 채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과연 이러한 협약 조항이 고용 세습이고, 그걸 없애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겠다는 것인지 나는 의문이다. 더구나 정말로 사회적으로 고용 세습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비판받는 협약조항이라면 법원 판결로 무효이므로 굳이 오늘 이 나라처럼 권력이 대단하게 비난하며 바로잡겠다고 걱정할 일도 아닐 것이다. 다음으로 비노조원 차별을 보자. 이 말 자체가 뭔 말인지 모르겠다. 노조가 조합원을 위해서 활동하는 것이야 당연하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래서 비노조원보다 우월한 단협 체결을 위해 교섭과 쟁의를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한다. 만약 노조가 단협으로 노조원에 우월할 권리를 보장해 주는 바람에 비노조원의 권리가 현저히 낮아져 사회문제가 되면 그것은 바로 권력이 입법·정책으로 해결할 문제다. 결코 노조에 대해서 비노조원을 차별하고 있다고 비난할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심지어 노조조차도 합법적으로 차별하는 나라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보면, 다수노조를 우대하고 소수노조를 차별하는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를 두고 있다. 근로기준법에서 과반수노조를 우대해서 근로자대표 지위를 두고 있다. 이렇게 제도적으로 일상적으로 소수노조를 차별하고, 비노조원을 차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인데, 엉뚱하게도 이 나라에서 노조가 비노조원을 차별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으니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3. 8시간 노동제를 위한 노동절에 집권 여당의 기념사를 살피다가 나는 정작 살펴야 할 것은 살피지 못했다. 노동제 말이다.
올해 초 윤석열 정부는 이른바 주 69시간 근무제에 관한 입법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직접 그 안을 설명했다. 현행 주 단위로 파악하는 근로시간 산정을 월, 분기, 반기, 연 등으로 산정단위를 확대해 특정 주에 현재의 연장근로를 포함한 주 52시간 한도를 넘어서 심지어 69시간까지도 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 안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물론, 심지어 이른바 MZ노조들까지도 비판하자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 의견 수렴 등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다양한 의견 청취를 통해 ‘입법의 취지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겠다’며 최근까지 분주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69시간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기존 주 52시간를 넘는 시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을 추진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노동제에 관한 입법 논의로 보자면, 이 나라는 엉망이다. 노동제에 관해 이 나라는 도대체가 엉터리다.
1886년 미국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까지만 일할 것을 요구하며 총파업투쟁을 전개했다. 연장근로는 별도로 하고서 8시간까지 일할 것을 요구하며 투쟁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1일 8시간을 초과해서 일할 수 없도록 노동시간을 제한해 달라고, 8시간 노동제 쟁취 투쟁을 했지, 1일 8시간을 초과해서 일하면 연장근로수당을 추가해서 지급해 달라고 투쟁하지 않았다. 국제노동운동계는 8시간 노동제를 위한 노동자투쟁을 노동절로 기념한다. 러시아혁명 이후 1918년 소비에트러시아에서 최초로 8시간 노동제를 도입했다. 이듬해인 1919년 국제노동기구(ILO)가 출범하면서 8시간 노동제를 1호 협약으로 채택했다. 20세기 전개된 노동운동은 당연히 8시간 노동제 쟁취를 위해 투쟁했다. 제국주의 나라는 물론 그 식민지 노동운동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일제 강점기 조선 노동운동도 그렇게 전개됐다. 결코 식민지 조선에서 유별나게 연장근로수당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1일 8시간을 초과해서 일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8시간 노동제를 다른 의미로 사용한 것은 아니다.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되면서 1일 8시간 노동제가 도입돼 현행법에 이른다. 즉 사용자는 근로자를 1일 8시간을 초과해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한 근로기준법 50조가 바로 그것이다. 다만 제정 근로기준법에서는 1일 8시간과 별개로 1주 48시간으로 주 단위의 노동제도 규정하고 있었는데, 이는 44시간, 40시간으로 단축돼 오늘에 이른다. 이렇게 노동자의 근로시간 한도를 규제하는 노동제가 도입된 것이니 이 나라에서는 당연히 1일 8시간을 초과해서는 사용자가 노동자를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근로기준법 제53조에서 당사자간 합의로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해 1주 12시간까지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고 연장근로에 관한 규정하고, 이러한 규정에 근거해서 법원과 노동부 등 이 나라에서는 1주 52시간까지 사용자가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법을 집행했다. 여기서 모든 게 엉망이 됐다. 이 나라에서 노동제는 엉터리가 됐다. 노동자와 사용자 간 합의만 하면 1주 52시간까지 노동할 수 있는 것으로 사용자에게 보장한 것이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상 노동제를 이렇게 해석·집행하는 것은 엉터리다. 1일 8시간제에 관한 근로기준법 50조는 강행규정이다. 당사자 간 합의도 무효가 된다. 근로기준법 50조를 위반한 사용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110조1호). 이렇게 형사처벌까지 하는 강행규정이다. 따라서 1일 8시간를 초과할 수 없도록 한 근로기준법 50조는 이 나라 노동자의 최장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노동제가 명백하다. 당사자 간 합의로 1주 12시간을 연장해서 할 수 있도록 한 근로기준법 53조규정은 50조 노동제 규정을 해치지 않도록 해석·집행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제에 엉터리인 이 나라에서는 그동안 53조를 노동제로 취급했다. 53조로 50조를 형해화시켜 사실상 폐기한 것이다. 이제라도 진정으로 이 나라에서 노동절을 기념하기 위해서는 8시간 노동제가 온전히 되살려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