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국 변호사(민변)

풍경 1. 민주노총이 강원 원주혁신도시 내 국민건강보험공단 본사 앞에서 공단의 고객센터 상담사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7월23일 개최하겠다고 신고했다. 그러자 원주시장은 바로 전날인 22일 원주시의 사회적 거리 두기를 3단계로 격상하면서 집회·시위에 대해서는 4단계 기준을 적용해 ‘방역지침’을 이유로 집회를 전면 금지시켰다. 원주시장의 자의적인 행정조치로 인해 허용돼야 할 집회가 금지된 집회로 급전환됐고, 노동자들이 농성을 하고 있던 동료들을 만나기 위해 언덕을 오르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풍경 2. 8월13일 이재용 부회장이 가석방되는 날 서울 서초구청은 ‘코로나19 방역’과 ‘주민들의 민원’을 이유로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 왕복 4차선 도로 양측 두 개 차로에 154개의 비어 있는 대형화분을 설치하고 도로에 앵커볼트를 박아 고정했다. 그리고 화분 주변에는 대형화분을 위한 안전펜스까지 설치했다. 이로 인해 4차선 도로 중 2개 차로는 통행이 제한됐고 그 부근에서의 집회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재용 부회장은 석방 직후 서초사옥을 방문했는데, 대형화분 설치와 이재용 부회장의 석방 직후 방문은 우연이었을까?

풍경 3. 같은 날인 8월13일 법원은 7·3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해 ‘방역지침’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죄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리고 9월2일 새벽을 틈타 경찰은 구속영장 집행 명목으로 노동자들의 심장부인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에 들어가 위원장을 체포·연행·구속했다. 그런데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인정했듯이 정작 위 집회를 통해 코로나19 감염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무엇을 위한 구속인지 이유조차 궁색해졌다.

풍경 4. 9월3일 오후 3시 세종시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고 김용균 3주기를 앞두고 공공운수노조 주최로 ‘문재인 정부 정규직화 이행하라’는 내용의 발전 비정규직 결의대회가 열렸다. 필자도 이 결의대회에 연대사를 위해 참가했다. 세종시는 3단계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행 중인데, 경찰은 결의대회 도중 집회참가 인원이 49명을 초과한 52명이라며 ‘방역수칙’을 위반한 불법집회라고 경고방송을 했다. 1미터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을 철저히 하고 있음에도 3명 초과로 방역수칙 위반이 되고 불법집회로 전락했다.

풍경 5. 경찰은 수도권 4단계 사회적 거리 두기와 ‘방역수칙’ 준수를 이유로 국회 앞 인도에 철제 펜스로 둘러쳐서 기자회견 장소라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 안에 한 사람만이 서서 발언하도록 제한하고 사람이 겹치는 경우에는 집회금지를 경고했다. 새장 안에 갇힌 앵무새처럼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경찰이 쳐 둔 철제 펜스 안에 갇혀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집회에 대한 인식은 방역을 위태롭게 만들어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반사회적 행동이라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여론에 바탕해 이제 코로나19 방역을 내세운 행정조치는 옥외집회를 제한하거나 금지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하면서도 손쉬운 수단이 되고 있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르면 질병관리청장·시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 그리고 보건복지부 장관은 감염병 예방을 위해 흥행·집회·제례 또는 그 밖의 여러 사람의 집합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누구든지 위 금지조치를 위반하면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법은 규정하고 있다. 행정청의 장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이 집회를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조치를 내리면 그 조치가 내려진 지역 전역에서 집회 및 시위는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집회로 간주돼 제한되거나 금지된다. 경찰서장은 이를 근거로 이유를 불문하고 집회 및 시위를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 있다. 결국 행정청의 조치에 따라 집회 및 시위의 개최 여부가 좌우되는 현실이 굳어지고 있는 셈이다. 집회 및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헌법상의 기본권 보장 규정에도 행정청의 조치가 헌법을 압도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우려 때문에 지난해 4월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위기가 일반적인 권리 또는 평화적 집회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억압하는 구실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특별보고관이 발표한 ‘공중위생 위기 상황에서의 집회 및 결사의 자유에 대한 체크리스트’에는 “코로나19 관련 위협을 다루기 위한 긴급조치는 필요하고 비례적이어야 한다. 부과된 제한이 최대한 덜 침해적이고 적절하고, 그 보호적 기능을 달성하기 위해 면밀하게 맞춰졌으며, 해당 상황에 대해 대응 범위 내에서 비차별적인 방식으로 엄격하게 제한돼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재난 시기에 피해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집중된다. 그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하는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와 공간은 보장돼야 한다. 코로나19가 근절될 수 있는 감염병이 아니라 함께 공존해야 하는 독감과 같은 존재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제 감염병 방역을 위해 어떻게 기본권을 제한하거나 금지할 것인지가 아니라 방역과 함께 어떻게 기본권을 보장하고 증진할 것인지가 방역당국의 과제가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방역을 내세운 방역경찰국가의 도래를 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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