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
1. 2020년은 임금피크제로 기억될 것이다. 코로나19로 쑥대밭이 된 세상에서 뭔 소리냐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내겐 그렇다. 많은 상담이 있었다. 일부는 조합원이고, 대부분은 비조합원이다. 극히 일부는 생산직, 현장기능직이고, 거의 대부분은 사무관리직이다. 그리고 그들은 정규직이었다. 간혹 그들 중 비정규직도 드물게 있다. 하지만 과거 그들은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이었다. 그런 그들이 내 앞에서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임금피크제가 부당하다.” 일반사업장이든 공공기관이든 그들이 어디서 일했건 한결같이 그렇게 말한다. 무엇이 그들을 이구동성으로 임금피크제를 말하고, 한결같이 부당하다고 말하게 할까. 주로 사용자를 탓하지만 노조를 탓하기도 한다.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임금을 삭감해 지급한 사용자에 분노하지만 노조를 원망하기도 한다. 제도를 도입한 사용자를 비난하지만 그걸 동의해 준 노조를 비난한다. 연봉의 수십 퍼센트를 빼앗았다며 취업규칙인 회사 임금피크제 규정을 탓하지만 아주 드물게는 노사합의, 단체협약을 탓하기도 한다. 탓하는 그들 중에는 회사가 하라는 대로 임금피크제 적용 동의서를 작성해주고 임금피크제에 따른 연봉계약서에 서명하기도 했으니 때로는 자신이 한 동의서, 계약서를 향하기도 한다. 이렇게 취업규칙과 단체협약, 심지어 근로계약까지 탓해야 할 근거와 사용자와 노조, 자신까지 탓해야 할 대상은 다양하지만 그것이 무엇이건 그들에겐 임금피크제가 부당하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찾아와 임금피크제를 상담하고, 나의 2020년을 가득 채우고 있다.
2. 무엇이 부당한 것일까. 그들이 ‘임금피크제가 부당하다’고 말하면, 나는 무엇이 부당한 것이냐고 물었다. 회사가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인 임금피크제 규정을 도입해서? 그렇다면 과반수노조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 것이냐고 나는 물었다. 회사가 노사합의하고서 임금피크제를 적용해서? 그렇다면 노조의 조합원 범위에서 배제된 비조합원이냐고 나는 물었다. 회사가 임금피크제 적용 동의서, 연봉계약서를 작성하게 해서? 그렇다면 그걸 거부할 수가 없는 사정은 무엇이었냐고 나는 물었다. 그들은 임금피크제가 부당하다고 하는데, 나는 무엇이 부당하냐고 물었다. 임금피크제가 부당하다는데 취업규칙의 법리, 단체협약과 근로계약의 법리 속에서 나는 물었다. 자신의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가 부당하다는 것인데, 나는 무엇이 부당하냐고 묻고 있었던 것이다. 과반수노조가 동의한 것인지, 노조가 합의한 것이고 그들이 그 노조의 조합원인 것인지, 그들이 어떤 사정으로 동의서나 계약서에 서명한 것인지를 살펴 이 나라에서 기존 법과 판례의 법리에서 답을 찾고자 물었던 것이다. 자신의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가 부당하다는데 무엇이 부당하다고 물었던 것이니 그들은 분명히 답답했을 것이다. 그렇다. 사용자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고 말해야 한다. 과반수노조의 동의로, 노사합의로, 동의서를 받고서 사용자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적용한 것이라고 해도 근로자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는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3. 2020년이 임금피크제의 해로 기억되게 된 것은 사실 지난해 11월 선고된 대법원 판결 때문이다. 지방공기업 문경레저타운을 상대로 해서 임금 및 퇴직금을 청구했던 사건이었다. 임금피크제를 적용해 임금을 삭감해 지급한 사용자에 대해 근로계약(연봉계약)을 체결하지 않고서 한 것이라서 부당하다는 내 상고이유 주장을 대법원이 인정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 판결이 있고부터 과반수노조 등의 집단적 동의 여부만으로 임금피크제 적용의 합법성을 판단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노동자들이 임금피크제의 효력을 따지며 상담해 왔다. 얼마 전에 문경레저타운 사건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원심법원에서 그 파기환송심 재판을 진행했고, 재판부의 적극적인 합의 권고에 따라 회사가 청구금액을 해당 노동자에게 지급하고서 사건이 마무리됐다. 비록 노동자 한 명의 사건이었지만 그 사건의 파장은 대단했다. 그런데 그 대법원 판결을 ‘임금피크제는 부당하다’는 일반 법리로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 노동자들은 임금피크제를 상담하고 소송하는 것이겠는데, 어떻게 ‘임금피크제는 부당하다’고 법원에 주장해야 할지 오늘도 나는 궁리하기에 바쁘다.
4. 이 나라에서 임금피크제란 정년을 몇 년 앞두고서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것이다. 그래서 ‘임금피크제는 부당하다’. 정년을 몇 년 연장해 주고서 연장된 기간의 근로에 대해 연장 전의 임금보다 낮은 수준을 지급하는 임금피크제가 아닌 것이다. 거의 대부분 사업장에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상 60세를 정년으로 하면서도 그 정년을 앞두고서 임금을 삭감하기 위해 사용자는 임금피크제를 도입·적용하고 있다. 법이 정한 60세를 정년으로 하면서 임금을 삭감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너무도 당연하게 이 대한민국에서 사용자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 법은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거의 대부분 사업장에서 60세를 정년으로 하고 있고, 60세를 넘겨 정년을 정한 사업장은 찾아보기 어렵다. 혹 있다 해도 60세 넘은 기간에 한해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는 경우는 더더욱 찾을 수가 없다. 사실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해서 근무하는 노동자에 있어서 정년이란 근로계약의 기간을 정하는 것이고, 그러니 그 정당성조차 의문이다. 오히려 정년제도가 정년에 도달한 노동자를 사업장에서 내쫓는 것이라서 그 본질은 해고제도인 것이고, 일정한 연령의 도달만으로 해고하는 것이라서 그 해고는 부당하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정년제도의 정당성을 의심한다면 고령자고용법이 60세 정년을 규정하고서 노사에 임금 체계개편 등의 노력을 하도록 규정했다고 해서 그것이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의 도입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읽어야 할 것이다.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정규직 노동자에게 정년 60세로 정해 퇴직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 사용자가 임금인상 등으로 보상할 사안이지 결코 임금을 삭감하고자 임금피크제를 도입·적용할 것은 아닌 것이다. 이렇게 법을 살펴보더라도 정년 60세를 위해서 임금을 삭감하는 이 나라에서 ‘임금피크제는 부당하다’.
5. 그럼에도 우리 사업장에서는 사용자가 취업규칙인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정년을 앞둔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해 왔던 것이고, 이에 대해 ‘임금피크제는 부당하다’는 법적 판단을 받기는 어려웠다. 노동자가 부당하다고 주장해도 사건은 번번이 근로기준법이 정한 대로 과반수노조 등 집단적 동의를 거쳐 적법하게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으니 임금을 삭감할 수 있다고 판단되고 말았다. 분명히 근로기준법에서도 근로계약 당사자인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 임금 등 근로조건의 결정 자유가 있노라고 규정하고 있건만, 사용자의 취업규칙 앞에서 그 규정은 힘을 쓰지 못했다. 사용자는 그저 근로기준법대로 과반수노조 등 집단적 동의를 거쳤노라고 주장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 정당성을 변명해도 사용자가 작성 및 변경 권한을 가진 취업규칙은 근로계약관계에서 노사의 합의를 대체할 순 없다. 도대체가 당사자가 합의하지 않은 것을 두고서, 당사자 일방인 사용자가 작성 및 변경하는 것을 두고서 근로계약관계의 내용으로 적용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단지, 근로기준법이 정한 바와 같이 그 취업규칙 기준에 미달하는 근로계약 기준 부분만 취업규칙 기준에 따른다고 보면 그만인 것이고(97조), 어떠한 경우라도, 즉 과반수 동의를 거친 경우라도 그 취업규칙 기준을 상회하는 기존 근로계약상 기준을 대신할 수 없으며, 그 노동자와 그 취업규칙 기준을 근로계약 기준으로 합의를 통해서 할 수 있을 뿐이라고 봐야 한다. 이것이 근로계약의 일방 당사자인 사용자에게 작성 및 변경 권한을 갖도록 한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제도의 본질에 부합하는 해석일 것이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 ‘임금피크제는 부당하다’고 읽고 나니, 이제는 단체협약과 근로계약의 체결을 통해서 도입하게 되는 경우 어떻게 그 부당성을 주장해야 할지 걱정되기 시작한다. 근로조건의 자유결정 원칙에 따라 당사자 간 합의로 체결한 것이니 정당하다고 사용자가 주장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논의를 하기에는 오늘은 이 나라 노동자들에겐 사치로 보인다. 취업규칙 법리에 압도당하고 있는 처지에서는 그 법리 극복에 집중해서 ‘임금피크제는 부당하다’고 외쳐야 할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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