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민영화 과정에서 잇단 직원 자살
“회사, 공포 분위기 제도적·시스템적 조성”
CEO 징역형·법인에도 7만5000유로 벌금
프랑스 법원, 회사의 괴롭힘 인정 첫 사례
“회사, 공포 분위기 제도적·시스템적 조성”
CEO 징역형·법인에도 7만5000유로 벌금
프랑스 법원, 회사의 괴롭힘 인정 첫 사례
디디에 롱바르(오른쪽) 전 프랑스텔레콤(지금의 오랑주) 최고경영자가 2000년대 민영화에 따른 구조조정 과정에서 직원들에게 모욕감을 주고 직장 내 따돌림을 부추기는 등 정신적 학대를 가한 혐의로 재판을 받기 위해 20일 파리 법원에 출두하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프랑스 국영통신회사였던 프랑스텔레콤(지금의 오랑주)의 경영진들이 2000년대 민영화에 따른 구조조정 과정에서 직원들에게 모욕감을 주고 직장 내 따돌림을 부추기는 등 정신적 학대를 가한 혐의가 인정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프랑스 법원이 ‘회사에 의한 괴롭힘’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노사 관계의 기념비적 판결이 될 것이라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보도했다.
프랑스텔레콤의 디디에 롱바르 전 최고경영자(CEO)와 2명의 임원이 2000년대 회사 구조조정 과정에서 직원들의 잇단 자살에 대한 책임을 인정받아 법원으로부터 각각 징역 1년(8개월 집행유예)과 함께 1만5000유로(2000만원)씩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20일 보도했다. 재판부가 밝힌 유죄 선고 이유는 “직원들의 불안을 조성하는 등 공포 분위기를 제도적·시스템적으로 조장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다른 전 프랑스텔레콤 간부 4명에게는 정신적 학대에 대한 공범 혐의를 인정해 집행유예 4개월과 5000유로씩의 벌금을 선고하는 한편, 프랑스텔레콤 법인에도 7만5000유로의 벌금형을 내렸다. 또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총 300만유로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프랑스텔레콤이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직원들의 연쇄 자살 문제가 사회적 논란으로 떠오른 지 10여년 만에 이뤄졌다. 프랑스 최대 통신회사인 프랑스텔레콤은 2004년 민영화 이후 3년 동안 2만2000명을 해고하고, 1만여명을 기존에 해오던 일과 전혀 다른 업무로 전직시키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경영진은 임금 삭감 가능성을 내비치고 자진 퇴사하라는 이메일을 지속적으로 보내 일부러 불안감을 조장하는 근무환경을 만드는 등 정리해고 대상 직원들의 안정감을 박탈하기 위한 장치들을 조직적으로 만들고 실행한 것으로 드러나 지난해 기소됐다.
“창밖으로 내던지든지 문으로 내보내든지 내년에는 어떤 식으로든 (직원들을 더 많이) 해고할 것”이라는 롱바르 최고경영자의 2006년 간부 모임 발언은 당시의 내부 압박 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공포 분위기 속에서 1년에 세번이나 전보 발령을 받은 여성 직원이 목숨을 끊었고, 회사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던 여성 직원이 동료가 지켜보는 가운데 5층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 2009년 7월 마르세유에선 51살 남성 엔지니어가 “(경영진이) 공포 경영을 했다”고 비난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법원의 사건 기록에 등장하는 피해자만도 39명. 이 가운데 19명은 세상을 떠났고, 12명은 자살 미수에 그쳤다. 또 8명은 심각한 우울증을 앓다가 결국 직장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 가족들과 노조 쪽에선 이번 판결을 노사 관계의 기념비적 “승리”라며 환영했다. 하지만 롱바르 쪽에선 “법을 완전히 잘못 해석한 것”이라며 항소 의사를 밝혔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