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뉴스분석 – ‘대우일렉 매각’ 이란 기업 손 들어준 영국 법원
ㆍ“한국 채권단인 자산관리공사 잘못, 730억원 지급하라” 중재판정 확정
ㆍ론스타 등 수조원대 소송 줄이어…“한·미 FTA 독소조항, 개정 시급”
한국과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시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꼽힌 ‘투자자·국가 간 중재’(ISD)의 위협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이란 다야니 가문에 730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ISD 판정이 확정된 것이다. ISD에서 패소가 확정된 첫 사례로 대기 중인 다른 ISD 소송에 악재가 될 수 있어 범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영국 고등법원은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합병 사건의 ISD 패소 판정을 취소해달라는 한국 정부의 청구를 지난 20일(현지시간) 기각했다. 유엔 산하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중재판정부는 2010년 대우일렉 매각 과정에서 한국 채권단(한국자산관리공사)의 잘못이 있다며 이란 가전업체 소유주 다야니 가문에 계약 보증금과 이자 등 약 730억원을 지급하라고 지난해 6월 판결했다.
한국은 이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며 중재지인 영국 고등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냈지만, 중재판정부는 다야니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는 외국 기업이 낸 ISD에서 한국 정부가 패소한 첫 사례다.
문제는 앞으로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 승인 지연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제기한 5조3000억원 규모의 배상 요구를 비롯해 미국계 펀드 엘리엇과 메이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시 정부 개입으로 손해를 입었다면서 각각 제기한 8600억원, 2000억원 규모의 배상 요구 등 ISD가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ISD 관련 청구액만 9조원을 웃돈다. 이미 정부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쓴 ISD 변호사 비용 등을 위해 4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다. 향후 소송 결과도 불투명해 ISD가 ‘세금 먹는 하마’가 될 가능성이 크다. ISD는 외국인 투자자(기업·개인)가 투자한 국가의 부당한 조처나 대우로 손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한 제도다. 민간 투자자들이 협정 상대국 국가의 공공정책과 조치가 자신들에게 불이익을 초래한다고 판단할 경우 국제중재를 걸어 배상금을 받아낼 수 있게 보장하는 제도로, 경제주권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한국은 외국과의 투자보장협정 대부분에서 ISD를 포함시켜왔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ISD 조항을 점검해 개정하고 철저히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10년 전부터 경고한 결과가 이제 나타났다”며 “유엔에서 나온 세계투자 보고서를 보면 ISD는 기업과 정부의 승소 가능성이 7 대 3으로, 정부가 이길 가능성이 매우 낮아 하루빨리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노주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통상위원회 변호사는 “한국뿐만 아니라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ISD의 폐해를 겪는 사례가 많아져 양국 간 투자협정이나 FTA에서 ISD를 빼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본다”며 “폐지가 가장 좋은 답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 협정문에 있는 투자자의 정의와 투명성 조항을 강화하거나 ISD 대신 상설법원을 설치하자는 국제 흐름에 동참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 현실화 되는 ‘ISD 공포’…국제사회는 ‘폐기’ 등 개혁 모색 중
현재 국제사회에서는 ISD 폐기를 포함한 근본적 개혁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외국인 투자자의 중재신청이 매년 수십건씩 쏟아져 100여개 국가가 분쟁에 휘말린 가운데 ISD의 룰 자체가 국가에 불리하게 만들어졌다는 문제의식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배상금에 대해 “채권단과 다야니 측에 지급해야 하는 비용 문제를 협의할 예정”이라며 “판결문 등은 모든 절차가 종료된 이후, 관련 법령 등에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상세한 내용을 공개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