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공화국’의 직장과 노동…..사회적 잔인성을 증폭시켜온 주요한 요소는?

[정동칼럼]‘자살공화국’의 직장과 노동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자살론> 저자

알다시피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나라 중 하나다. 촛불 이후 한국 사회가 부유하고 민주적이라는 자부심이 부쩍 커졌다지만, 자살 관련 지표 앞에서는 무색해진다. 자살이란 현상이 만약 사회적 비참의 어떤 결정체로 간주될 수 있다면, ‘헬조선’이라는 자조도 유효하다. 2018년엔 10대 청소년부터 80대 노인까지, 하루 평균 약 37명이 스스로 생을 중단했다. 매일 우리는 뭔가 대단히 다층적이고 잔인한 내전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정동칼럼]‘자살공화국’의 직장과 노동

한국 사회는 이 문제를 방치하지 않고 나름 대응해왔다. 지난 10년간 자살률은 대체로 낮아져왔다. 단순 비교해봐도 2017년의 자살 사망자 수는 1만2463명으로 이명박 집권기에 비해 한 해 3000여명(2009년 기준)이 줄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자살예방법의 제정(2011년)과 실천이 작지 않은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법에 따라 사상 최초로 정부는 지자체·학교 등과 함께 자살예방사업을 벌여 각급 자살예방센터가 설치되었고 보건복지부에는 자살예방정책과가 생겼다. 병원 응급실에 온 자살 기도자를 관리(?)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또 2014년부터는 중앙심리부검센터 같은 기관도 만들어져 자살 사건을 세밀하게 분석해 연령별, 성별, 직업군별 ‘자살의 경로’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그러니까 만연한 자살 현상에 대한 한국 사회의 지식과 분석력은 전과 비할 바 없이 높아진 것이다. 그저 막연할 뿐이었던 자살의 사회적 요인들에 대해 처음으로 나름 체계적이고 실제적인 지식을 갖게 된 셈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기까지다. 지난 9월 하순 발표된 통계에 의하면 꾸준히 낮아지던 자살률이 2018년에 다시 높아졌다. 내용도 나쁘다. 10대·30대·40대의 자살률 증가 폭이 커졌다. 분석이 더 필요하겠지만, 우려되는 것은 현행 자살예방법과 그에 따른 정책 실행의 효과가 한계에 다다른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추출한 74개 자살 위험 요인 중 ‘15대 중대 요인’을 들어본다. “자살 시도, 우울장애, 업무부담, 가족관계 문제(부부), 정신건강 문제와 그 악화, 상사·동료 관계, 이혼·별거, 음주 문제, 사업부진·사업실패, 직무 변화, 지속적 빈곤, 대인관계 단절·철수, 부채(도박·주식), 실업.”

개인의 정신적·심리적 고통, 가족 및 대인관계, 직장생활(노동), 그리고 경제상황 등으로 범주화될 이 요인들은 서로가 서로의 원인 또는 결과가 되는 상호성을 갖고 있고 비배타적인 관계에 놓여 작용한다. 한 인간에게 저런 고통이 서너개 이상 겹치면 삶 자체가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 중에서 정책과 타력으로 ‘예방’할 수 있는 건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사회와 개인들의 삶에 드리운 심연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연루된 구조적·문화적 한계라 할 수 있다. 자살에 작용하는 많은 요인과 문제상황은 다름 아닌 학교, 가정, 직장 그리고 일상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그중 직장과 노동에 관련된 것만 생각해보자.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유가족들에 대한 면담 연구를 바탕으로 지난 9월 발표한 103명에 대한 심리 부검 분석 결과 중엔 30~40대 직장인들이 어떤 경로로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는지가 포함돼 있다. 그 경로는 “부서배치 변화, 업무부담 가중 → 상사 질책, 동료 무시 → 급성 심리적·신체적 스트레스 → 사망”이다. 비극이 완성되는 시간은 놀랍게도 불과 5개월 미만인 것으로 조사돼 있다. 과중한 업무를 맡는 직장인은 상사의 압박이나 동료의 따돌림, 그리고 다른 부서로의 발령 같은 상황이 겹치면 곧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직장이란 어떤 곳인가? 왜 사회적 잔인성의 체계 중 직장과 노동이 최전선일까? 비극을 야기한 직장 내 따돌림이나 공격성의 거시적 배후는 자본의 논리와 경쟁의 압박일 것이다. 프로이트의 표현처럼 인간이 늑대가 되어 다른 인간을 해치는 그 같은 ‘사회적 잔인성의 체계’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도 자기도 모르게 ‘사회적 타살’에 연루된다. 이를 통해 주 52시간 근무제나 각종 직장갑질 근절 같은 미시적(?) 변화가 직장인의 사람다운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할 수 있다.

복지부는 자살예방과 지역정신보건에 올해보다 275억원이 늘어난 예산을 편성했다. 그러나 커지는 우려처럼 정부가 노동개악을 행하면 이런 노력이 헛된 것이 되지 않을까? “어차피 없어질 직업”이라든가 “획일적 주 52시간제는 국가가 개인의 일할 권리를 막는 것”이라는 식의 인식도 ‘노동 존중’은 물론 ‘사람이 먼저다’라는 명제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또 그런 식의 생각은 사회적 잔인성을 증폭시켜온 주요한 요소다.

여느 때보다 일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와 동료의 삶을 위한 연민과 단결을 깊이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0292048045&code=990308#csidxa2e1dcd0c95f31cb55bce766b097434




KT노동인권센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