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ILO 기본협약 비준 않는 한국, 연대의 원칙 반하는 행동”

“ILO 기본협약 비준 않는 한국, 연대의 원칙 반하는 행동”

등록 :2019-06-03 08:42수정 :2019-06-03 10:10

[더 나은 사회]
인터뷰 알랭 쉬피오 콜레주드프랑스 교수
디지털 혁명이 불러올 미래의 노동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지배
프랑스 정신질환 5년간 7배로 늘어
불평등·부정의 확산 세계평화 위협
“ILO, 사회정의·생태문제 적극 나서야”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이 알랭 쉬피오 콜레주드프랑스 교수(오른쪽)를 인터뷰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프랑스 법학자인 쉬피오 교수는 국제노동기구(ILO) 탄생 100주년을 맞아 노동연구원이 주최한 국제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이 알랭 쉬피오 콜레주드프랑스 교수(오른쪽)를 인터뷰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프랑스 법학자인 쉬피오 교수는 국제노동기구(ILO) 탄생 100주년을 맞아 노동연구원이 주최한 국제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올해는 국제노동기구(ILO)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아이엘오는 사회 불평등과 불의가 세계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는 분위기 속에서 1919년 만들어졌다. <한겨레>는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이 주최한 ‘사회정의를 향한 국제사회의 꿈: 아이엘오 백년의 도전과 동아시아의 경험’이라는 국제 학술대회 기조강연을 위해 서울에 온 세계적으로 저명한 프랑스의 법학자 알랭 쉬피오 콜레주드프랑스 교수를 만났다. 1994년에 이어 25년 만의 한국 방문이다. 쉬피오 교수는 아이엘오 ‘100주년 선언’의 밑그림으로 지난 1월 공개된 ‘일의 미래 보고서’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쉬피오 교수는 한국이 아이엘오 기본협약 8개 중 4개를 비준하지 않은 문제로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는 것에 대해 “특정 나라에 대해 말하는 것은 조심스럽다”면서도 “연대의 원칙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한편으론 한국에 대한 기대도 나타냈다. 그는 “아이엘오가 서양 중심으로 움직인다면 미래가 없다”며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룬 한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이뤄진 인터뷰는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이 진행했다.

■ “다른 지역에서 주체 돼야”

장지연(이하 장) 교수님 저서에 자주 나오는 열쇳말은 ‘정의’ 또는 ‘사회정의’입니다. 아이엘오 헌장(1919)도 ‘사회정의 없이는 평화도 유지될 수 없다’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는 사회정의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알랭 쉬피오(이하 쉬피오) 정의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곳에서나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은 다양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세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비례적 정의, 교정적 정의, 호혜적 정의입니다. 사회정의와 관련 깊은 것은 호혜적 정의라고 생각해요. 이것은 많이 받는 사람이 많이 돌려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사회정의는 기존에 있는 규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 부정의를 없애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답변하고 있는 알랭 쉬피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답변하고 있는 알랭 쉬피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올해 아이엘오 100주년이 됐습니다. 한국은 1991년에 가입했지만, 아직 기본협약 8개 중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등 4개 항목의 협약을 비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엘오 협약 비준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한국에서는 해고자, 실업자, 특수고용 형태 노동자 상당수는 노조에 가입할 수 없고, 교사들은 해고자들이 노조에 가입돼 있다는 이유로 노조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국의 노동 현실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쉬피오 어떤 특정한 나라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하기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기본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는 것은) 연대의 원칙에 반하는 것입니다. 아이엘오 헌장에는 ‘어느 한 나라라도 진정으로 인간적인 노동 체제를 채택하지 않는 것은 다른 나라들에서 노동자의 지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돼 있습니다. ‘일부의 빈곤이 전체의 번영을 위협한다’는 필라델피아 선언에서도 보듯 이 문제는 반드시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룬 한국이 이런 시기에 굉장히 역동적이면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아이엘오가 계속 서양 중심으로 움직인다면 미래가 없다고 봐요. 다른 지역에서 주체가 돼야 하고, 중국과 일본, 남미는 솔직히 우려스러운 상황입니다.

■ 정신까지 지배되는 미래의 노동

전세계적으로 공론화가 많이 되고 있는데요. ‘노동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최근 디지털 혁명으로 노동과정과 노동조직은 또 한 번 커다란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플랫폼 노동’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데요. 디지털 기술이 초래하는 ‘일의 미래’는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쉬피오 디지털 혁명의 특징을 보면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지배하고 있어요. 요즘은 노동자를 컴퓨터의 연장선으로 보는 것 같아요. 굉장히 스마트한 기계여야 하고 실시간 반응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노동자의 모습입니다. 노동을 프로그램화해 목표를 제시하고 달성하도록 피드백을 반복하는 등 정신적으로 복종하게 합니다. 프랑스 통계를 보면, 2010~2015년 산업재해 수는 비슷했지만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정신질환 건수는 7배로 늘어났습니다. 정신적 고통 속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이들에 대한 보호도 방해를 받고 있어요. 유럽을 보면, 플랫폼 회사들이 이들을 임금 노동자가 아니라며 노동법에서 제외하려고 판사에게 로비하고 있습니다.기계의 부품처럼 작동했던 인간의 노동이 디지털 기술 발달로 컴퓨터 프로그램의 일부로 들어가면서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종속되는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엘오가 최근 100주년을 맞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일’(Work for a Brighter Future)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에 대한 교수님의 평가를 듣고 싶습니다.(※아이엘오 산하 ‘일의 미래 위원회’는 지난 1월 평생학습 강화, 양성평등 추진 등 각 국가가 실천해야 할 10가지 권고문이 담긴 ‘일의 미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미국·유럽·아시아 등의 노사정과 시민단체, 전문가들이 참여했고 이달 중 발표될 ‘아이엘오 100주년 선언’의 밑바탕이 된다.)쉬피오 국제노동기구, 세계무역기구, 국제통화기금 등 국제적 차원의 다자주의 조직체계가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가치 충돌을 하고 있어요. 노동과 의약품, 문화와 천연자원을 시장에서 경쟁하는 상품으로 취급하는 무역·금융의 논리가 지배하는 기구가 있고, 사회정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도 있어요. 무역과 투자에 관한 협정의 규정보다 인권상의 의무들이 우선한다는 점을 지키는 일을 아이엘오가 온전히 수행하려면 새로운 게임규칙이 필요합니다. 이런 부분이 보고서에 담기지 않아 실망스럽습니다.

한국노동연구원 장지연 부원장이 알랭 쉬피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국노동연구원 장지연 부원장이 알랭 쉬피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노동이 환경 위해 행동 나설 때미래의 노동을 이야기할 때 디지털 혁명과 마찬가지로 생태위기의 심화는 노동의 조건만이 아니라 노동의 의미와 내용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쉬피오 지금의 경제 및 기술 발전은 환경적으로 봤을 때 견딜 수가 없는 수준이에요. 생태적 문제에 대해 어떤 다자기구도 완전한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는 만큼, 아이엘오가 이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동과 환경은 서로 헤어질 수 없는 분야입니다. 예를 들어 근무, 생산 방법, 환경 리스크 등 일을 하는 사람이 그 제품으로 환경이 파괴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노동법 개혁 요구가 많은데, 생태적인 측면도 반영해야 해요. 요즘 젊은 사람들 환경 문제에 굉장히 민감하죠? 그들의 의견이 노동을 통해 표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회정의예요. ‘일부의 빈곤이 전체의 번영을 위협한다’는 필라델피아 선언의 문구는 여전히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제3세계의 경우 (일자리, 노동기본권 등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한) ‘노동의 피폐’로 비자발적인 이주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쉬피오 불평등의 급속한 증가, 빈곤에 내몰린 청년 등 부정의가 지속하면 폭력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요. 분노가 생기고 과격하게 행동하게 될 겁니다. 신자유주의의 중심인 미국과 영국을 봐도 외국인 혐오가 퍼지고 있어요. 적을 계속 만들려고 하는 등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사회정의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 알랭 쉬피오는 누구?푸코 등 최고 지성 거쳐간 콜레주드프랑스의 석학 알랭 쉬피오 콜레주드프랑스 교수는 1979년 프랑스 보르도대학에서 ‘판사와 노동법’이라는 논문으로 국가박사 학위를 받았다. 푸아티에대학과 낭트대학을 거쳐 2012년부터 콜레주드프랑스 교수로 일하면서 ‘사회국가와 세계화: 연대에 관한 법학적 분석’ 강좌를 맡고 있다. 그가 몸담고 있는 콜레주드프랑스는 1530년 개교한 고등교육기관으로 롤랑 바르트, 피에르 부르디외, 미셸 푸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등 프랑스 최고 지성들이 교수로 일했다. 쉬피오 교수는 법학, 인류학, 사회학 등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주요 저서는 <노동법비판>(1994), <고용을 넘어>(1999), <필라델피아 정신>(2010), <숫자에 의한 협치>(2015) 등이 있다.

정리 김소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dandy@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896371.html#csidx36e6a0e18999f25a354288c38a6aba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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