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 독점청구권 깨질까 우려
檢, 경찰 신청에 과거보다 관대”
“경찰은 수사력 부각시켜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행보”
문무일(왼쪽) 검찰총장과 이철성 경찰청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검ㆍ경 수사권 조정을 의식해 대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 수사에 집중하는 것 아닌가.”
삼성, 한진그룹에 이어 대림산업과 KT 그리고 신연희 서울 강남구청장과 김기현 울산시장 측근 등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권력층 수사에 주력하는 경찰이 최근 자주 받는 질문이다.
경찰 수사력을 부각시켜 수사권 조정 국면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광폭 행보라는 풀이가 깔려있다. 반면 과거와 달리 경찰의 영장 신청을 검찰이 순순히 받아준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독점 보유한 영장청구권 일부가 경찰로 넘어갈 것을 우려한 검찰의 선제전략이라는 것이다.
새 정부 들어 경찰이 ‘검찰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대기업 등 권력층 수사에 부쩍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성과도 도드라진다. 지난해 5월부터 삼성 총수 일가 자택 공사비 비리를 수사하면서 2008년 삼성 특검이 발견 못한 4,000억원대 차명계좌(260개)를 찾아내는가 하면, 지난해 9월에는 회삿돈을 유용해 자택 공사비에 쓴 혐의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경찰 포토라인에 세웠다. 경찰의 재벌 총수 소환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보복폭행 사건) 이후 10년 만이다. 최근에는 하청업체에 도 넘은 갑(甲)질을 한 대림산업 전ㆍ현직 임직원을 입건했고, KT 전ㆍ현직 임원들의 국회의원 불법 후원 의혹과 관련해 황창규 회장의 소환 시기를 저울질하는 중이다.
지방자치단체장 관련 수사도 파죽지세다. 횡령과 직권남용 혐의로 신연희 강남구청장을 구속하는가 하면, 직권남용과 아파트 시행업자에게 금품 요구 혐의 등으로 김기현 울산시장 비서실장 및 친동생 수사에 본격 착수하기도 했다. ‘수사권 조정’이라는 시험을 앞두고 벼락치기하는 수험생과 흡사하다는 경찰 안팎의 비유가 전혀 낯설지 않을 정도다.
경찰은 이런 진단을 애써 경계하는 눈치다. 수사 경력 20년이 넘는 경찰 고위 간부는 “경찰이 신청하는 영장에 대해 검찰이 관대해진 이유가 더 크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권력층 수사 관련해 경찰이 압수수색영장이나 체포영장 등을 검찰에 신청하면 검찰이 반려(재지휘)하거나 묵살해 수사를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엔 큰 하자가 없으면 곧바로 법원에 영장을 청구해 수사가 신속하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헌법에 명시된 유일한 영장청구 주체인 검찰은 경찰의 영장 신청을 거부하는 방법으로 수사를 무력화시키는 일이 종종 있었다. 2013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접대’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출석 요구에 불응하는 김 전 차관의 체포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법률적 소명이 부족하다”고 영장을 반려했고, 이후 무혐의 결론 냈다. 같은 해 경찰은 A 국회의원이 공공기관 재직 당시 공사 수주 청탁 명목으로 4,2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포착, 검찰에 체포ㆍ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이 묵살하는 바람에 무혐의로 송치해야 했다.
물론 최근 한진그룹 수사 과정에서도 경찰이 신청한 조양호 회장 구속영장이 검찰 단계에서 반려되긴 했다. 그래도 “특수 사례일 뿐, 수사에 비협조적인 과거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졌다”는 게 경찰 시각이다.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괜히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놓고 까다롭게 굴었다가 ‘검찰이 독점한 영장청구권을 경찰에게도 주자’는 여론이 확산될까 봐, 그런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린다.
검찰은 과도한 억측이라는 입장이다. 서울 지역 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검사는 영장 신청이 오면 법적 요건 여부를 충족하는지, 적법절차상 하자는 없는지 살펴 심사해 문제 없으면 반려하지 않고 수사 진행하도록 하는 거지, 수사권 조정 국면 등 그때그때 상황이나 분위기 따라 달리 판단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