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노조가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고용안정과 관련해 정리해고 절차·대상을 명시한 단협안을 요구해 뒷말이 나오고 있다. 노조가 먼저 정리해고 조항을 단협에 명시하자고 회사에 요구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굳이 왜 요구하나” vs “정리해고 막기 위해”
25일 노조에 따르면 지난 22일부터 시작된 올해 임단협에서 노조는 △임금 7% 인상 △고용안정 △안식년 의무휴직 △복지기금 500억원 출연 등을 회사에 요구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고용안정 부문이다. 노조는 단협에 정리해고 조항을 신설하면서 “회사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 또는 부득이한 사유로 인원을 감원하고자 할 때는 최대한 자구책을 강구한 후 그 사유를 최소한 90일 전에 조합에 통보하고 노사합의를 거쳐 결정한다”는 문구 명시를 요구했다.
노조가 요구하는 노사합의 대상은 △정리해고의 필요성과 긴박성 △감원 인원의 수·범위 △정리기준과 적용방법 및 해당자 △정리해고 해당자에 대한 보호조건(해고예고제·보상·재고용 특권)이다.
일반적으로 노동계는 고용보장과 관련해 ‘조합원에 대한 고용보장’ 또는 ‘노조와 합의 없는 인위적 구조조정·사업조정 금지’를 요구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제한’ 규정보다 까다롭게 하거나 해고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다.
KT노조처럼 근기법에 있는 정리해고 조항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사례는 드물다. 권영국 변호사는 “정리해고는 노동자 귀책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노조 입장에서는 거부해야 한다”며 “KT노조의 요구안은 고용안정협약이 아니라 정리해고를 하도록 절차를 규정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노조 조합원 사이에서도 "집행부가 불필요하게 정리해고 조항을 요구안에 넣어 고용불안을 조장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KT 노사는 지난해 4월 8천300여명의 명예퇴직에 합의한 뒤 분기별로 실시하게 돼 있는 명예퇴직 제도를 폐지했다. 위로금을 부담하는 명퇴제도를 없애는 대신 비용부담이 덜한 정리해고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것이 반대하는 조합원들의 걱정이다.
한 노조 조합원은 “저성과자 퇴출제도를 시행하는 상황에서 정리해고까지 하면 명퇴와는 달리 돈 안 들고 해고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해고계획 통보기간을 근기법(50일 전)보다 많은 90일 전으로 하고, 노조와 협의가 아닌 합의로 명시하는 등 근기법보다 해고요건을 엄격하게 했다"고 반박했다. 노조 관계자는 “최근 법원이 미래 경영상 불안까지 정리해고 사유로 인정하면서 고용안정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했고 다른 노조에도 사례가 있는 조항”이라며 “근기법을 웃도는 내용이기 때문에 회사도 요구안을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조합원 우선 해고 … “합의해도 효과 없어”
그럼에도 전체적으로는 근기법보다 정리해고를 완화하는 단협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노조는 긴박한 경영상 필요 외에 ‘부득이한 사유’까지 정리해고 요건에 포함시켰다. 안 그래도 긴박한 경영상 필요에 대한 법원 판례가 완화되는 추세인데, 해석 여지가 많은 모호한 문구를 넣어 회사의 인력감축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게다가 “감원시 우선순위는 연령·근속연수·부양가족수 등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희망자·회사 중징계자(업무상 과실 제외)·조합 탈퇴자·조합 징계자·비조합원 순으로 한다”는 요구안도 논란이 되고 있다. 노조활동을 이유로 회사 징계를 받거나 현재 노조에 반기를 드는 조합원들, 소수노조 조합원들이 우선해고 대상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강문대 민변 노동위원장은 “조합원 여부는 정리해고 대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극단적인 예로 ‘태권도 3단 자격이 없으면 정리해고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형동 변호사(한국노총 법률원)는 “근기법보다 상회하는 요구안이 일부 있긴 있지만 부득이한 경우까지 해고요건에 넣고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차별한 것은 근기법을 밑도는 것”이라며 “노사가 합의하더라도 노동부가 시정명령을 내려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노조 관계자는 이에 대해 “냉정할 수 있지만 조합원을 먼저 보호할 수밖에 없다”며 “다른 복수노조 조합원들도 우선보호 대상에 포함시킬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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