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례] 기업 손빌려 통신망 구축한 정부, 비싼 통신료 눈감아줘
작성자: 최종관리자 | 조회: 1522회 | 작성: 2014년 9월 28일 12:35 오전
기업 손빌려 통신망 구축한 정부, 비싼 통신료 눈감아줘 |
그동안 정치권·시민단체·이용자 쪽과 정부·통신사들은 우리나라 통신요금이 외국보다 “비싸다”, “아니다”를 놓고 숨박꼭질과 진실 공방을 벌여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글로벌 투자은행 등이 나라별 통신요금 수준을 비교한 자료를 내놓을 때마다, 시민단체들은 “우리나라가 외국보다 비싸지 않느냐”고 주장했고, 미래창조과학부와 이동통신사들은 “요금제를 잘못 비교했다”며 반박자료를 내곤 했다.
이 과정에서 원가 대비 통신요금 수준이 적정했는지에 대한 관심은 뒤로 밀려왔다. 이번에 공개된 감사원의 미래부에 대한 감사 내용은(<한겨레> 9월26일치 1, 4면)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이전의 논의와는 차별성이 있다.
국내 통신시장이 왜곡된 데는 정부와 통신사의 ‘공생 관계’가 깔려 있다. 통신은 장치산업으로, 초기 통신망을 깔 때 투자가 집중된다. 따라서 요금도 처음에 높게 책정됐다가 감가상각에 따른 원가 감소에 따라 내리는 수순을 밟는다. 이동통신 요금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기회’ 있을 때마다 내렸다. 주로 선거를 앞두고 시민단체와 소비자들이 요금인하를 요구하면, 당시 정보통신부가 기본료·통화료·가입비·문자요금·발신자번호표시요금(CID) 등 이동통신 요금을 구성하는 항목 가운데 한 두가지 요금을 돌아가며 내렸다. 가능하면 이동통신사 매출에 영향이 적은 것들을 고르다 보니,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인하 효과가 거의 없어 늘 ‘생색내기’ 수준을 넘지 못했다. “이동통신 요금을 10% 내릴 경우, 이용자 각각한테는 월 자장면 한그릇 값 밖에 안되지만, 모으면 연간 1조원 가량 돼 산업 하나를 일굴 수 있다”는 노무현 정부 당시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의 말은 요금인하에 대한 정부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그런데 2006년 전후부터는 통신요금 인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할인’이란 방법이 동원됐다. 장기 사용 할인, 약정 할인, 가족 결합 할인 등 다양한 할인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중 할인 불가’ 탓에 이용자 쪽에서 보면 한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 할인은 다 ‘그림의 떡’이었다. 이런 상황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와 함께 정액요금제를 통해 요금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실제 2012년 엘티이(LTE) 통신망 상용화 이후 가입자당매출(ARPU)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
그렇다면 미래부는 왜 통신사들의 이런 행태를 방관하고 있을까? 우리나라는 이른바 통신망 품질 및 보급률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품질 좋은 네트워크가 풍부하게 깔려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정부의 일반 예산이 한 푼도 투입되지 않고, 통신사가 이를 다 감당했으며, 그리고 이는 대부분 통신사들이 이용자한테 받은 요금으로 충당됐다. 정부는 통신사에 요금을 비싸게 받을 수 있게 해주는 대신, 이를 통해 통신사들이 초과로 얻은 이익을 통신망 구축 확대 등에 투자하도록 해 전후방 산업의 수요를 일으키고 벤처기업 창업을 활성화하는 정책을 펴온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이를 ‘아이티(IT) 839’로 도식화해 선전하기도 했다.
이때문에 지금의 통신요금에는 ‘군살’과 ‘숨겨진 부분’이 많다. 덜 내놓기 위해서는 ‘초과이익’을 최소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숨기는 게 최선인 셈이다.
통신사들은 통신요금의 적정성을 따지는 움직임에 “정부와 시민단체가 민간기업의 사업에 너무 깊숙히 개입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제기한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이를 일축한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전기통신사업법은 ‘통신요금은 이용자가 편리하고 다양한 전기통신 역무를 공평하고 저렴하게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통신요금은 미래부 장관의 통제를 받게 돼 있고, 따라서 가계통신비 부담이 높아진 데는 미래부 책임도 크다”고 지적했다.
최현준 김재섭 기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