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례] 소비자끼리 무한경쟁…‘호갱님’ 누구한테 털렸나

소비자끼리 무한경쟁…‘호갱님’ 누구한테 털렸나

등록 : 2014.09.26 01:39 수정 : 2014.09.26 12:10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역 인근에 위치한 전자상가 내 휴대전화 판매점.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휴대전화 잦은 교체 지원금, 바꾸지 않은 사용자가 부담
통신사, 단말기 보조금 등 가이드라인 어기고 ‘펑펑’
법인세 비용·투자보수 과다계산해
소비자 통신원가에 고스란히 전가

미래부·방통위는 관리·감독 안해
국민 1인당 월 1만2500원 추가 부담

지난해 9월부터 7개월 동안 진행된 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한 감사원 감사는, 통신 3사의 과도한 요금원가 부풀리기와 기준을 넘은 마케팅비 사용을 국가기관이 공식 조사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감사원이 이번 감사 과정에서 문제삼은 부분은 모두 23조원으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통신 3사가 원가를 부풀리거나 과다한 마케팅비로 사용한 금액이다. 미래부가 제대로 관리·감독을 했다면 고객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게 감사원의 애초 감사 방향이었다.
 

우선, 이번 감사에선 외부에서 추측만 하던 통신사들의 ‘원가 부풀리기’의 일단이 드러났다. 통신사들은 해마다 미래부에 통신요금의 총괄원가(적정원가+적정이윤)를 보고하는데, 미래부는 이 총괄원가를 검토해 통신사들이 신청한 통신요금을 인가한다. 업체로선 총괄원가를 높여야 높은 요금을 받을 수 있다.
 

통신사들은 이를 위해 법인세, 투자보수율을 높게 잡았다. 법인세는 적정 수익에서 계산해야 하는데, 초과 수익에서 발생하는 법인세까지 총괄원가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높였다. 감사원 계산에 따르면, 이렇게 과다계상된 법인세 비용이 에스케이텔레콤 1조3300억원, 케이티 9400억원, 엘지유플러스 -1200억원 등 모두 2조1500억원에 이른다. 감사원은 이외에도 통신사들이 투자에 대한 기회비용인 ‘투자보수율’도 통신사에 유리하게 설계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공기업의 투자보수 기준을 적용해 재계산한 결과,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과다계상된 통신 3사의 투자보수 금액은 에스케이텔레콤이 7900억원, 케이티 1조1800억원, 엘지유플러스 6100억원 등 모두 2조5767억원”이라고 밝혔다.

통신 이용자 부담을 결정적으로 높인 것은 과다한 단말기 지원보조금 등 늘 문제가 됐던 마케팅 비용으로, 자신들이 정한 가이드라인보다 18조원을 더 지출했다고 감사원은 평가했다. 앞서 2010년 통신 3사는 단말기 보조금과 가입자 유치와 유지를 위해 대리점에 지급하는 지급수수료 등 마케팅비의 한도를 매출액 대비 22%, 2011년부터 20%로 낮추기로 하는 ‘마케팅비 가이드라인’에 방송통신위원회와 함께 합의했다. 그러나 이번 감사에서 알 수 있듯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를 관리해야 할 미래부와 방통위는 개입하지 않았다. 이 금액은 그대로 원가에 반영돼 통신요금으로 전가됐다. 결국 단말기를 자주 바꾸는 사람의 단말기 지원금을 단말기를 바꾸지 않는 소비자들도 물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감사원은 마케팅비 과다사용에 대해 “법적인 근거가 아닌 업계가 자율적으로 정한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은 것이어서, 감사보고서상에는 지적사항에 포함하지 않고 검토의견으로만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이동통신 요금은 해마다 올라갔다. 지난해 통계청이 조사한 가구당 월평균 통신서비스 비용은 14만3000원으로, 2006년 12만7000원에서 1만6000원가량 올랐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가구당 월평균 이동통신 요금도 우리나라는 115달러로, 국토가 6배 넓고 국민소득은 2배인 프랑스(34달러)보다 3배 이상 높다.
 

감사원이 미래부 감사에서 지적한 통신 3사의 ‘부당요금 전가액’ 22조8000억원을 우리나라 전체 인구 5000만명으로 환산하면 1인당 평균 45만원, 연간 15만원, 월평균 1만2500원꼴이다. 통신사들이 요금 원가를 제대로 책정하고 정부가 철저하게 감시·감독한다면 최소한 통신요금을 이 정도는 더 낮출 여지가 있는 셈이다. 대신 단말기 교체 지원금은 지금보다 크게 줄어들고, 단말기 교체 수요도 지금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시민단체들은 2011년부터 통신 3사에 대해 통신요금 원가 자료 공개를 요구해왔다. 올해 2월에는 참여연대가 제기한 통신요금 원가 공개 소송에서 법원이 소비자 쪽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와 함께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조형수 변호사는 “통신사들이 통신요금 원가를 부풀리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감사원 조사에서 이런 사실이 상당 부분 확인됐다”며 “미래부와 방통위는 지금이라도 통신요금 원가 자료를 공개해 통신요금이 투명하게 책정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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