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스럽다.'
조태욱 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은 KT의 '노무관리기술'을 이렇게 표현했다. 업무를 위탁해 정규직 직원을 자회사로 옮기게 한 뒤 고용보장기간이 지났다며 사직을 종용하는 KT의 노무관리를 꼬집은 것이다.
특히 사직을 거부하는 직원들에게는 평균 통근시간이 왕복 3시간 50분이나 걸리는 원거리 인사발령으로 압박하는 것도 'KT스러운 사례'의 하나로 꼽힌다. 이러한 원거리 인사발령에 당사자의 동의를 구하거나 협의하는 과정이 없었음은 불문가지다.
'KT계열사 위장된 정리해고 철회와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지원대책위는 15일 KT계열사의 노동인권 실태 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이렇게 'KT스러운 노무관리'의 실체를 '고발'했다.
사직 거부하자 통근시간 4시간 원거리로 인사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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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 계열사 노동인권 실태 발표 |
ⓒ 구영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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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는 지난 2008년 9월부터 2009년 6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정규직 직원 500명을 대상으로 '자회사 전적(본적의 소재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진행했다. '3년간 고용보장, 현 임금의 70% 보장'을 조건으로 내건 전적이었다. 이를 위해 KT는 콜법인 자회사인 KTis와 KTcs에게 플라자업무와 고충처리업무(VOC)를 위탁했다.
자회사 전적 과정에서도 "위장된 정리해고" 등 논란이 있었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회사로 전적하고 3년의 고용보장기간이 지난 뒤에 일어났다. KTis와 KTcs는 ▲고용보장기간 만료 ▲VOC업무 회수 등을 이유로 '전적자들'에게 사직을 종용한 것이다.
한 직원은 "6월 중순경 이아무개 센터장이 'VOC업무를 KT가 회수하였으며 3년 약속한 근로계약 기간도 9월이면 끝나니 9월 30일자로 사직서를 제출하라'며 센터별로 돌아다니며 사직서 제출을 종용했다"고 증언했다.
게다가 KT에서 회수하지 않은 플라자 업무 담당 직원들에게도 사직을 종용했다. 플라자 업무를 담당했던 한 직원은 "제가 근무한 KT 플라자업무는 KT에서 회수하지도 않았고, 현재도 계속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사측에서는 그런 저에게 'KT에서 VOC업무를 회수해 가서 어쩔 수 없이 사표를 제출하지 않으면 100번 상담사로 근무시킨다'고 협박했다"고 전했다.
사측은 사직을 거부하는 직원들에게 '일방적인 원거리 인사발령'으로 대응했다. A씨는 "회사는 서울에 있는 사람을 군포로 보내고, 경기도에 있는 사람을 용산에 보내는 어처구니없는 발령을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B씨는 "수원쪽은 대부분 사직서를 냈고 우리(인천)는 11명이나 사직서 제출을 거부하니까 회사가 '한번 당해봐라'하는 식으로 인천에 있는 우리를 통근시간이 3시간 이상 걸리는 수원으로 발령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사직종용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한 김성호 공인노무사는 "성수교육센터에서 교육받는 36명 중 14명(39%)이 경기도 군포, 수원, 용인, 광주, 의정부, 고양, 포천, 인천 등의 원거리에서 출퇴근중"이라며 "이들 14명이 대중교통을 이용한 평균 통근시간은 왕복 3시간 50분이며 최대 통근시간은 왕복 4시간 50분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김 노무사는 "인천VOC집중센터에서 경기CS센터로 발령받은 인원의 평균 통근시간은 왕복 4시간 30분에 이르며, 그 중 최대 통근시간은 왕복 6시간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김 노무사는 "원거리 발령, 업무전환 등 근로계약의 중대한 변경이 발생하는 인사이동에서 당사자과의 협의나 동의가 없었던 점, 그러한 중대한 인사명령을 퇴근 이후 문자메시지를 통해서 통보한 점 등은 법적인 문제를 떠나 거대기업 계열사의 기업윤리상 적절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점심시간 30분...그래도 olleh kt, 사랑합니다 고객님?
또한 이날 'olleh kt, 사랑합니다 고객님'으로 시작하는 100번 콜센터'(KTis) 상담원들의 노동인권 실태도 공개됐다. '밥 먹을 권리조차 없는 점심시간'은 가장 심각한 노동인권 침해사안으로 지적됐다.
최은실 공인노무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실제 점심시간은 2010년 20분, 2011년 30분이었다. 명목상 점심시간은 40분이지만 '10-20분 대기시간' 때문에 실제 점심시간은 20-30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상담원들의 가장 큰 불만도 이렇게 짧은 점심시간이었다.
최 노무사는 "사람이 많이 밀리는 점심시간에 30분 만에 점심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 주먹밥이나 과자로 때우거나 굶고 있는 상태"라며 "30분 만에 식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허겁지겁 식사를 하기보다는 하루 중 유일한 점심시간이기 때문에 주먹밥이나 과자로 식사를 때우며 쉬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최 노무사는 "최근 점심시간 개선에 관해 본부장과 센터장, 팀장 간의 면담 논의 과정에서 '이직이 왜 많은 것 같냐?' '왜 노조에 가입하는 것 같냐?'는 질문에 팀장들이 '점심시간 때문'이라고 보고했다"며 "8월 셋째주부터는 점심시간을 한시간씩 주고 있다고 하지만 제대로 안착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권영국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장은 "사용자는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주어야 한다"며 "KTis에서 요금주기, 월말 등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실질적으로 20분 내지 30분만 휴게시간을 주었다면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점심시간문제 외에도 ▲과도한 일일콜 목표량(110콜) ▲과도한 인센티브 제도로 인한 경쟁 심화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한 높은 이직률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특히 상품판매(프로모션)에 따른 '상품·상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최 노무사는 "번호이동이나 핸드폰 개통과 관련된 상품과 상금을 걸고 판매를 강하게 강요하고 성과부진시 교육을 실시한다"며 "번호이동은 한건당 500원, 3건 달성시 '뿌셔뿌셔'(과자) 또는 '육계장'(컵라면)을 지급한다"고 말했다.
"3년 고용했으면 정규직으로 인정해야" |
KTis와 KTcs는 전적자들에게 사직을 종용하는 이유 중 하나로 '고용보장기간 만료'를 들고 있다. 전적할 때 계약했던 '3년의 고용보장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사직 종용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김성호 공인노무사는 "2008년 KT에서 자회사로 전적할 당시 근로계약서를 보면 VOC 업무자들이 최초 전적되었던 콜법인 (주)코스엔씨의 경우에는 근로계약기간이 3년이 아닌 '퇴직시까지'로 되어 있다"며 "근로계약 당시 이미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 노무사는 "KTcs의 경우에도 '기간의 제한없이 고용이 보장됨'을 약속해 근로계약기간이 종료되었다는 회사의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노무사는 "2009년 12월 KTis에 합병된 또다른 콜법인 (주)케이에스콜의 경우에는 근로계약기간이 3년으로 약정되어 있지만 이는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주장했다.
'고용보장기간 3년'이라는 사측의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3년을 고용했다면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들을 정규직('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권영국 노동위원장도 "사용자가 3년간 고용을 보장하기로 약정하고 2년은 초과하여 근로자를 사용하였다면 관련법률에 따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가 되었고 이로 인해 정당한 이유 없이는 해고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권 위원장은 "따라서 사용자가 근로계악상의 지위를 이용해 고용기간 만료를 이유로 불이익을 예고하며 사직을 강요하는 행위는 위법한 사직강요로서 형법상 협박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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