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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8일 6:53 오후
KT 대리점 사장 자녀 명의로 '장진수(사찰자료 파괴한 총리실 주무관) 대포폰' 만들어
조선일보 전수용 기자
이메일jsy@chosun.com
입력 : 2012.05.14 03:07
서유열 KT 사장이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의 부탁으로 개설해 준 것으로 드러난 문제의 대포폰(차명전화)은 그간 민간인 사찰의 실체를 규명해 줄 핵심 물증으로 여겨졌지만, 누가 어떻게 개설했는지가 의문에 싸여 있었다.
이 대포폰은 검찰이 1차 민간인 사찰 수사를 하던 2010년 7월 7일, 공직윤리지원관실(총리실 산하)의 장진수 주무관이 경기 수원의 IT업체로 지원관실 컴퓨터 하드디스크 4개를 들고가 여기 담긴 불법사찰 자료를 파괴(증거인멸)할 때 사용된 '범죄 도구'다. 증거인멸을 들키지 않기 위해 대포폰을 개설해 연락을 취하도록 한 것이다. 그해 7월 5일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한달가량 이 대포폰의 존재를 몰랐다.
그해 8월 검찰이 진경락(구속·45) 당시 지원관실 총괄과장의 집을 압수수색할 때 진씨가 자신의 부인에게 몰래 뭔가를 건네주는 것을 수사관이 목격했다. 수사관이 "당신 뭐해"라며 달려가 빼앗은 것이 바로 문제의 대포폰이었다.
당시 검찰은 대포폰을 KT 대리점에서 받아온 청와대 여직원을 조사해 "최종석 행정관이 받아오라고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하지만 최 행정관이 "장진수씨에게 빌려준 것"이라고 발뺌하고, 장씨 역시 "그 말이 맞다"고 입을 맞추면서 수사는 더 이상 나가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서 민간인 사찰 사건을 재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KT 서유열 사장이 이영호 전 비서관 부탁으로 대포폰을 만들어줬다'는 점을 밝혀내게 된 건 장씨의 뒤늦은 폭로와 이 전 비서관의 자백 때문이다. 장씨는 최근 "대포폰은 최종석 행정관이 'EB(이영호)가 쓰던 것'이라고 말하며 내게 줬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사실을 더 이상 감추기 어려워진 이 전 비서관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은폐는 내가 몸통"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과연 이 전 비서관이 실제로 '몸통'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포폰 문제만 봐도, 이 전 비서관이 만들었다는 대포폰 외에도 이번 사건 관련자들이 사용한 대포폰이 더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재수사팀은 이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총리실 국무차장(차관급)을 하던 시절(2009년초~2010년 8월) 비서였던 이모씨가 만든 대포폰을 박 전 차관이 사용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 대포폰도 이 전 비서관이 KT 서유열 사장에게 부탁해 대포폰을 개설한 시점과 비슷한 때(2010년 7월초) 개설됐다. 총리실은 이때 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문제 자체조사를 벌였고, 조사결과를 7월 5일 검찰에 넘겨 수사의뢰했다. 박 전 차관은 비서가 개설한 대포폰으로 최종석 전 행정관과 7월 7일 통화한 사실이 검찰수사로 밝혀졌다. 이날은 바로 장진수씨가 최 전 행정관의 지시를 받고 경기 수원의 IT업체로 찾아가 지원관실 하드디스크를 파괴한 날이다. 박 전 차관도 '증거인멸'에 가담했거나 보고받았을 것으로 의심해 볼 수 있는 충분한 단서가 되는 것이다.
대담한 증거인멸과 그 후로도 계속된 관련자들에 대한 입막음 시도까지, 검찰이 이번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밝히려면 대포폰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