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철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자는 1940년생, 우리 나이로 72세다.
나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정보통신부 차관에서 물러난 지 16년이나 지났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에 인물이 없긴 없는 모양”이라는 관측과 함께 “그나마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할 만한 청렴결백한 인물을 골랐다”는 평가가 나돌았다. 승용차가 없어서 분당 자택에서 광화문 청사까지 대중교통으로 출근하는 바람에 의전이 흐트러졌다는 푸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 후보자의 수상쩍은 이력을 돌아보면 그가 과연 청렴결백한 인물인지, 방송·통신 산업의 온갖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중재하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인지 의문이 든다. 미디어오늘이 이 후보자의 건강보험료 납부 내역을 확인한 결과, 이 후보자가 2000년 KT 사장에서 물러난 직후 KT 관계회사에서 급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 후보가 재직한 애니유저넷은 KT의 투자를 받아 국내 최초로 인터넷 전화 서비스를 시작한 회사다.
이 후보자는 이밖에도 인터넷진흥원(옛 정보보호진흥원) 이사장과 방송통신전파진흥원이사장 등을 맡고 있으면서 글로발테크, 에이스앤파트너스와 에이스테크 등에서 고문이나 사외이사 등의 직책을 겸직하기도 했다. 이 기업들은 정통부나 정보보호진흥원 등의 허가 또는 인증·진단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 있다. 이 후보자가 이 기업들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인사 청문회의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특히 글로발테크라는 회사는 KTF에 뇌물을 건넨 혐의로 대주주가 구속되기도 했던 회사다. 정통부 차관과 KT 사장 출신인 이 후보자가 고문이라는 직책을 맡으면서 브로커나 메신저 역할을 했을 거라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이 후보자는 “신문을 보고서야 알았다”는 믿기 어려운 해명을 내놓았다. 이 후보자는 이 회사에서 4년여에 걸쳐 받은 3억여원의 급여를 신고하지 않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미디어오늘 단독 보도 이후 방통위는 “인터넷진흥원과 전파진흥원 등의 정관에 비상임 이사의 겸임을 금지하고 있지 않아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지만 기획재정부가 제정한 공기업·준정부기관 비상임이사 직무수행 지침에는 “비상임 이사가 이사회의 승인 없이 기관의 영업 부류에 속하는 거래를 하거나 동종 영업을 하는 다른 기관의 무한책임사원이나 이사에 취임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기업들이 어마어마한 연봉을 지급하면서 퇴임한 고위 공직자들을 모셔가는 건 이들의 경륜 보다는 전관예우의 영향력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공직자의 겸임을 금지하고 퇴임 직후 전직을 제한하는 것은 이들이 공직에서의 지위를 활용해 사적 이익을 챙기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이 후보자가 결백을 주장하는 것과 별개로 애초에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부적절한 자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결격 사유가 된다.
이 후보자의 겸직 논란은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이 후보자가 방통위원장에 임명된다면 그가 재직했던 기업들의 이해관계와 무관한 공명정대한 정책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이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도 시작하기 전에 이미 믿음을 잃었다. 이 후보자 임명 강행은 방송·통신업계에 잘못된 학습효과를 불러일으켜 가뜩이나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렸던 방통위를 로비 창구로 변질시킬 가능성이 크다.
청렴결백하다던 이 후보자는 이명박 정부의 여느 고위 공직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력을 드러냈다. 재산 취득 과정의 불법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밥 먹듯이 겸직을 했다”는 세간의 평가에는 이권과 연줄, 특혜와 꼼수, 뒷거래의 의혹이 함께 떠돈다. 불법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고위 공직자가 될 수는 없다.
16년 만에 공직 복귀를 노리는 이 후보자는 도덕성에 치명적인 결격 사유를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