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한국공장과 KT는 공기업화시켜야 한다

지엠 사태, 그리고 자본 물신숭배(Fetishism)

  • 김승호
  • 승인 2018.02.26 08:00

▲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중앙일보 2월21일자 사설 제목은 “분수령 맞은 GM 사태, 경제논리로 풀어야 한다”, 소제목은 “정치권 관심 갖되 간섭은 말아야”였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GM 회생의 첫 시금석은 현재 진행 중인 노사 간의 원만한 임단협 타결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지금 단계에서 칼자루를 쥔 쪽은 GM이다. (…) 정부와의 협상이 단시간 내 마무리되기 어렵다는 것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진전’은 노조의 현명한 대처에서 찾는 것이 현실적이다. (…) GM은 군산공장 폐쇄에는 철회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어렵다는 뜻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정치권의 지나친 개입과 간섭이다. 지역경제와 일자리가 걸려 있는 문제에 정치권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정치논리로 경제논리를 왜곡시켜 버리면 문제는 더 꼬여 버린다. 공장 폐쇄로 인한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고통은 안타깝지만, 생산성 낮은 공장을 계속 가동하는 것은 경제에 두고두고 부담이 될 수 있다.”

독점재벌 대변지인 이 신문이 내놓는 GM 사태 진단·처방에 대해 시시콜콜 따져서 비판하기 전에 이들이 경제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비판하고자 한다. 스스로는 매우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집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실은 상품과 자본에 대한 물신숭배에 깊이 절어 있으며, 스스로는 아주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언론이라고 자처할지 몰라도 실은 자본의 인격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경제문제는 경제논리로 풀어야 한다”는 말은 얼핏 들으면 매우 합당하다. 어떤 사물의 문제를 그 사물의 속성에 맞게 대처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주장은 경제문제에 대한 매우 빈약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오늘날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와 정치는 확연하게 분리돼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또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는 경제와 정치는 확연하게 분리돼 있지 않았다. 예컨대 봉건 지배계급은 농노와 예농에게서 지대를 착취했는데, 그 착취는 봉건 지배계급의 경제적 지배력이 아니라 정치적 지배력에 근거했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 어느 단계에서나 정치와 경제가 확연하게 분리돼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식의 소치일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에서는 이런 경제외적(정치적) 강제에 의한 경제적 착취행위는 사라졌다. 생산자는 더 이상 농노나 예농이 아니다. 임금노동자는 신분적으로 자본가의 종이 아니다. 그래서 ‘자유로운’ 임금노동자다. 그리고 정치권력이 곧 경제권력을 가지지도 못한다. 이런 측면만 보면 다른 사회구성체는 몰라도 최소한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에서는 정치와 경제가 확연하게 분리돼 있으며, 경제는 사람들의 정치적 행위와는 독립적으로 굴러가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이에 정경유착은 이런 자본주의 원리의 위반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실은 매우 피상적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상품들은 노동생산물 자체로서 다른 노동생산물과 교환될 수 있는 신비한 속성과 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인간들의 사회적 관계와 독립해 자기들끼리 교환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인식하는 것이 상품 물신숭배다. 그러나 쌀은 수천 년 동안 인간에게 가장 유용한 노동생산물이었음에도 오늘날처럼 그 대부분이 상품으로 된 것은 자본주의 생산양식 때문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 아래서는 거의 모든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되는데, 이렇게 노동생산물을 상품으로 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생산자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다. 생산자들이 각자 자신의 생산물을 자급자족하거나 선물 또는 예물로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으로 서로 교환하기로 암묵적으로 약속하고 있기 때문에, 즉 생산을 둘러싸고 맺어진 특정한 사회적 관계 때문에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되는 것이다. 이런 내적인 관계를 보지 못하고 외적인 관계만 보면서 상품이 스스로 상품으로 교환되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 상품 물신숭배다. 원래부터 돈이 돈을 버는 것으로 보는 자본 물신숭배도 마찬가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사회적 관계가 정치적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농민들이 상품생산자로 서로 관계한 것은 봉건 지배계급에 맞서 투쟁으로 쟁취한 성과물이다. 가장 먼저 농노제를 타파한 1381년 영국 농민반란에서 농민들은 농노제 폐지와 더불어 잉여생산물을 시장에 나가 팔수 있는 자유를 요구했다. 이처럼 농노제가 폐지되면서 상품생산이 발달했다.

자본의 존재는 또 어떤가. 공장 자체가, 토지 자체가 자본인가? 토지와 공장이 자본으로 되는 것은 생산수단이 소수 사적 개인의 배타적 소유물로 인정되는 사회적 관계 아래서다. 이런 사회적 관계는 소수 지배계급이 농민들이 경작권과 이용권을 가지고 있던 경지와 산림을 법과 국가폭력을 동원해 수탈하고 자신들의 배타적 소유물로 만들었기 때문에 생겨났다. 그 연장선에서 공장과 기계도 그들의 배타적·독점적 소유물로 됐다. 이로써 직접생산자들의 생산수단에 대한 권리 일체가 박탈됐다.

“정치권은 관심은 갖되 간섭은 말아야”라고 하는 것은 이런 자본주의 소유관계·생산관계를 신성불가침으로 받들라는 말이다. 자본의 소유·지배권에 대해 일체 손대지 말라는 얘기다. 그러나 자본의 경제행위는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고, 그 사회적 관계를 최종적으로 밑받침하는 것은 정치권력이다. 그러므로 경제에 큰 문제가 생겼으면 사회적 관계, 다시 말해 소유·지배관계를 바꿔야 하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 정치권력이 적극 개입해야 한다. 지엠이 철수하겠다고 하면 초국적자본 소유 공장과 기업을 국가소유로 바꿔야 한다. 동시에 대우조선해양 사태 같은 부정·비리와 노사담합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운영을 관료들에게만 맡기지 말고 사회화해야 한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김승호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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