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의 일방적인 공장폐쇄를 저지할 수 있는 법을 달라

공장폐쇄를 당하는 ‘법’

  • 김기덕
  • 승인 2018.02.27 08:00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폐쇄를 통보받았다. 지난 13일 한국지엠은 올해 5월 말까지 군산공장의 차량생산을 중단하고 공장을 폐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지엠 노사가 상견례와 경영현황 설명회 등으로 2018년 임금·단체교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있을 때였다. 사측은 경영현황 설명회에서 ‘경쟁력을 개선하는 임금·비용 등 생산성에 대한 노동조합 합의’를 노조에 요구했다고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는 밝혔다. 이와 관련해 금속노조 소식지 <금속노동자>는 13일 한국지엠이 한국지엠지부와 교섭 중에 “노조의 뒤통수를 후려친 셈”이라고 평가해 보도했다. 지엠 자본이 최근 3년간 군산공장 가동률이 20%에 불과한 상태에서 이미 지난해 폐쇄를 결정하고서 정부 지원 등을 위해 지금 발표한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무엇이든 한국지엠에서 사용자 자본이 군산공장 폐쇄를 결정·통보했고, 노동자 내지 노동조합은 공장폐쇄를 당했음은 분명하다.

2. 지금 이 나라는 지엠 자본의 공장폐쇄 결정을 두고서 논란이다. 미국 지엠 본사에 지불해 온 고금리 이자와 과도한 매출원가 산정 등이 문제라고 특별감리와 세무조사를 요구하며 지엠 자본을 비난하고, 높은 임금 및 복리후생비 등 인건비 수준이 문제라며 대폭 양보해야 한다고 노조를 비난하고 있다. 특히 일본·미국 등 주요 자동자회사에 비해 임금 수준이 높다며 한국지엠뿐만 아니라 현대차·기아차 등 국내 자동차완성사 노동자의 높은 임금이 자동차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자본을 편드는 언론이 앞장서 주장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노조에 대해 투쟁을 고집하다 남은 공장마저 다 죽자는 것이냐며 노조 자유게시판에 조합원들이 글을 올렸다고 보도하면서 사측이 요구한 임금·복리후생비 등 비용절감에 대한 노사합의에 나서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이런 자본편향의 보도를 읽고 있자면, 어서 군산공장 폐쇄를 인정하고서 임금 및 복리후생비 삭감에 합의하는 것이 부평·창원 등 나머지 공장을 유지하면서 한국지엠이 생존하는 길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렇다고 지엠 자본에 비판적이라고 해서 군산공장 폐쇄가 잘못이라거나, 그 폐쇄를 반대한다고 외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늘 이 나라에서 발생하는 논란은 한국지엠에서 노동자들이 군산공장 폐쇄를 당하는 데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건 당연한 사용자 자본의 일이고 권한이라고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3. 지난 21일 청와대 농성장 앞에서 하이디스 정리해고 투쟁을 마무리하는 집회가 있었다. 대만 자본의 생산부문 폐지 방침에 따라 2015년 1월7일 공장이 폐쇄된 이후 3년간의 투쟁이 이 마지막 집회로 정리됐다. 정리해고 소송의 대리인 변호사로서 나는 이날 집회에서 발언을 해야 했다. 투쟁해 온 해고노동자들만큼은 아니겠지만,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하지만 공장폐쇄를 저지하는 ‘법’에 관해서는 꼭 말하고 싶었다. 이런 취지로 말이다. “하이디스에서 공장폐쇄하고 정리해고할 때 이 세상은 우리 노동자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이 나라의 법은 하이디스 자본의 공장폐쇄를 막아 주지 못했습니다. 공장폐쇄는 사용자 자본의 권한이라고 묵인했습니다.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이 세상의 법에 의해서 추방됐습니다. 오늘 이 나라에서 노동자들은 법적으로 같은 처지에 있습니다. 공장폐쇄 등 기업 구조조정은 감히 노동자가 간섭할 수 없는 사용자 자본의 권한이라고 법원은 수많은 판결을 통해 선언해 왔습니다. 한국지엠 등 오늘도 많은 사업장에서 이런 법과 판례에 의해서 노동자는 사용자의 처분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법, 노동자의 운명을 사용자 처분에 일방적으로 맡긴 법을 당연한 것이라고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이 세상이 자본의 세상이라고 해도 노동자들의 투쟁에 의해서 노동자의 운명을 노동자가 참여해서 정할 수 있는 법이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 나라에서 노동자투쟁은 아직 그것을 쟁취해 내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공장폐쇄·정리해고로 추방돼 지금까지 투쟁해 왔습니다. 그러니 지난 투쟁을 되돌아보는 이 자리에서 우리는 외쳐야 합니다. 사용자의 일방적인 공장폐쇄를 저지할 수 있는 법을 달라.”

법원의 강제조정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도 하이디스 해고노동자들을 대리해서 나는 말하고 싶었다. 이렇게 말이다. “공장폐쇄하고 정리해고하고서 하이디스에서는 공장시설을 철거하고 공장건물까지 매각처분했습니다. 해고소송을 승소해도 우리 해고노동자들이 돌아가서 일할 작업장은 없어졌습니다. 생산사업부문은 폐지하고서 하이디스는 정관에서도 사업목적에서 삭제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이 자리가 해고소송의 승소판결을 기념하는 자리가 아니라 법원의 강제조정결정에 따라 투쟁을 마무리 짓는 자리로 만들었습니다. 하이디스 해고노동자들은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법원의 강제조정 결정을 받는 것이 더는 하이디스와의 근로관계가 유지되지 않는다고 확인하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노동자가 매각된 공장을 되찾고 철거된 공장을 다시 설치할 법이 없기 때문에 법원의 결정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노동자들은 이 자리를 투쟁승리를 기념하는 자리로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여 말했다. “그러나 저는 감히 말합니다. 하이디스 조합원 동지들, 여러분은 승리자입니다. 누가 뭐래도 오늘 이 자리는 지난 3년여 해고투쟁으로 마련된 자리입니다. 여러분의 투쟁이 없었다면 오늘 이 자리는 없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

4. 하이디스 투쟁을 마무리 짓는 집회에서 이렇게 하고 싶었던 말을 다 말했던 것인지 촬영된 동영상을 돌려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공장폐쇄를 당하는 이 나라 노동자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말이었다. 결코 사용자 자본의 처분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었다. 아무리 이 세상이 자본의 세상이라고 법이 선언하고 있어도, 공장폐쇄를 저지하는 ‘법’은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199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서 대규모 기업 구조조정이 몰아치던 때에 이 나라 노동운동의 첫 번째 요구는 일방적인 구조조정 중단과 고용안정 보장이었다. 당시 금속노동자를 중심으로 금속연맹 등 노조투쟁은 이 요구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공장폐쇄 등 사용자 자본의 기업 구조조정을 저지하는 노동자를 위한 ‘법’은 없었다. 투쟁하지 않아도 되는 ‘법’이 없으니 사용자 자본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맞서 노동자는 일자리 등 생존을 지키기 위해서는 투쟁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투쟁은 불법이 돼 징계와 형사처벌 등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20년.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이 나라 노동자의 요구·투쟁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공장폐쇄 등 기업 구조조정은 사용자 자본의 권한, 감히 노동자가 침해할 수가 없는 경영권이라고 법원의 판결을 통해서 이 나라 법은 선언하고 있다. 그래서 노동자는 공장폐쇄를 당해야 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공장폐쇄 등 기업 구조조정에 노동자가 관여하는 ‘법’이 존재할 수 없다는 법은 없다. 노동자(대표)의 참여를 보장하고서도 얼마든지 이 자본의 세상은 저세상이 아니다. 노동자평의회가 공장폐쇄 등 기업 구조조정에 관해 사용자와 협의하고, 우리 상법상 이사회의 이사에 해당하는 자를 선임하는 등으로 이 세상에서 얼마든지 노동자가 일방적으로 공장폐쇄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법이 있다. 독일 등 유럽 나라들에서 실제로 이뤄지고 있는 일이다. 그걸 노조를 통해서 보장할 것이냐, 아니면 별도의 노동자대표기구를 통해서 할 것이냐를 두고서 논란을 벌일 수 있을 망정, 사용자 자본의 일방적인 공장폐쇄를 저지하는 법은 이 세상, 이 나라에서 존재할 수 있다. 비록 이 나라에서 노동자투쟁이 그런 법을 폐지하지 못해서라고 해도 사용자 자본의 일방적인 공장폐쇄에 노동자는 당해야만 한다고 전제하며 하는 말은 부당하다. 사실 고용 등 노동자의 운명을 결정짓는 데 노동자(대표)가 참여하지 못한다는 법이 어처구니없다.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서 이 세상에서 권력과 자본이 행하는 노동자에 대한 처분은 정당할 수가 있다고 봐야 한다. 노동자를 사용자의 일방적인 처분에 복종해야 하는 노예가 아닌, 사용자와 동일하게 자기결정권 등 인권이 보장된 인간이라고 취급한다면, 사용자 자본의 일방적인 공장폐쇄에 노동자가 당해야 한다는 ‘법’은 폐지해야 한다. 그럴 수 있다면, 노동자를 대리해 온 노동변호사로서 나는 정말 행복할 텐데 아직은 아니다. 우리 노동자들은 당당히 외쳐야 한다. “사용자의 일방적인 공장폐쇄를 저지할 수 있는 법을 달라.”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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