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유신이 일어난 지 150년이 지났다.
1868년 교토 궁궐에서 벌어진 쿠데타로 270년간 집권했던 도쿠가와막부는 허망하게 무너졌다.
새로이 등장한 유신정부는 부국강병, 문명개화 등 ‘근대화’ 정책을 전광석화처럼 추진해나갔다. 백절불굴(百折不屈), 우회는 있어도 후퇴는 없었다. 그로부터 일본은 가히 ‘혁명적’ 변화를 겪었다. 그런데 왜 메이지혁명이나 일본혁명이 아니고 겨우(?) 유신(維新)인가. 프랑스 대혁명, 청교도혁명, 러시아혁명, 중국혁명 등등… 흔하디흔한 혁명을 왜 갖다 붙이지 않은 것일까.
혁명(革命)이란 역성혁명(易姓革命)의 준말이다. 하늘이 어떤 성을 가진 로열 패밀리에 내렸던 천명을 거둬들이고 다른 성으로 바꿔버린다는 뜻이다. 왕조교체다. 왕씨 고려에서 이씨 조선으로 바뀐 것처럼 말이다.
그 이유는 현 왕조가 민심을 배반하고 덕을 잃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성혁명은 정당하다. 조선도 중국도 베트남도 그 길을 따랐다.
일본은 어떠한가. 역성혁명, 즉 왕조교체가 한 번도 없는 나라다. 태곳적부터 지금의 천황가가 왕 노릇하고 있다고 믿고 있고, 학문적으로 검토해 봐도 적어도 고대국가가 성립된 이래 ‘혁명’은 없었다. 오히려 역대 일본의 지식인들은 일본에 역성혁명이 없는 걸 큰 자랑으로 여겼다. 감히 만세일계(萬歲一系) 천황가를 역성하여 혁명하다니…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긴 천황가에는 성이 없으니, 바꿀(易) 일도 없을 것이다(!).
이러니 일본에서 혁명을 말하는 것은 금기에 가까웠다. 대신 다른 말을 찾아야 했다. 유신이라는 말의 출전은 <시경(詩經)> 대아편(大雅篇)이다. “주나라는 비록 오래된 나라이지만, 그 천명은 새로운 것이다(周雖舊邦, 其命維新).” 은나라에서 주나라로 천명이 옮겨진 것을 말한다. 혁명이란 말을 피하면서도 그에 버금가는 용어를 채택한 것이 유신이다.
막말유신기(幕末維新期·1850~1870년대)에는 유신과 함께 ‘일신(一新)’이라는 용어도 많이 쓰였다. 그러다가 유신으로 정착되었다.
혁명은 아니고 유신이다. 주도권은 기성세력 중 일부분, 주로 그 하위세력이 쥔다. 메이지유신 때는 하급 사무라이들이었다. 반체제는 아니고 체제 내 개혁이다.
그러나 그 변혁의 폭은 혁명에 버금갔다. 변혁을 주도한 하급 사무라이는 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사무라이 신분 자체를 없애버렸다. 수백년간 내려온 번(藩)도 일거에 철폐했다(廢藩置縣). 농업 국가였던 일본은 반세기 만에 세계 유수의 공업국이 되었다. 단 7년 만에 음력은 양력으로 바뀌었다.
이 어마어마한 변혁은, 그러나 질서 있게 진행되었다. 구체제의 집권자였던 쇼군 도쿠가와 가문을 비롯한 유력 다이묘(大名)의 가문은 생존을 보장받았다. 막부가 추진해 온 대내외 정책은 대체로 계승되었다. 격렬한 계급투쟁도 민중의 대봉기도 없었다. 덕분에 그렇게 큰 변혁을 수행하면서도 메이지유신 과정의 희생자 수는 3만명 정도에서 멈췄다. 프랑스혁명 때는 70만명이나 됐다. 가능한 한 코스트를 적게 하고 광범한 변혁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유신형 변혁은 가벼이 볼 게 아니다.
그런데 질서 있는 변혁은 자칫 구체제와 타협하거나 철저한 개혁 앞에서 주춤거리기 쉽다. 이걸 돌파하는 관건은 기성체제의 일부였던 변혁주체가 얼마만큼 자기부정과 자기혁신을 할 수 있느냐에 있다. 메이지유신은 사무라이의 신분적 자살이며, 사무라이를 배신한 사무라이정권이었다.
칼 차는 걸 금지시키는 조치에 반항하는 사무라이들을 신정부는 총을 들이밀며 주저앉혔다. 이걸 추진한 오무라 마스지로(大村益次郞),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는 성난 사무라이들에게 암살당했다. 그러나 대의멸친(大義滅親), 근대국가를 세우기 위한 반사무라이 정책은 물러설 줄 몰랐다.
1987년 이후 한국 현대사는 혁명보다는 유신에 가깝다. 변혁을 밀어붙인 핵심세력은 반체제가 아니라 체제 내 비주류세력이었다. 예비엘리트인 대학생들, 야권정치세력과 사회세력, 합리적 사회를 바라는 광범한 시민, 노동자들이 그들이다.
커다란 변혁을 달성했으면서도 사회질서가 붕괴되거나 대규모 폭력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 ‘질서 있는 변혁’, 그것도 메이지유신보다는 훨씬 시민의 힘에 기댄 바가 크다. ‘위로부터의 질서 있는 변혁’이 아니라 ‘아래에 기댄 질서 있는 변혁’.
이 미증유의 실험의 한가운데에 386이 있다. 그들은 당연히 기성체제의 핵심이다. 그것도 장기간 그러했다. 영화 <1987>에 대한 386들의 나르시시즘적 반응은 자기도취다.
386세대는 너무 많은 것을 너무 오랫동안 누리고 있다는 것을 칼바람 맞듯,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혁신, 자기연마 해야 한다. 역사는 아직 386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386에게는 유신의 길밖에 없다. 만약 우리 사회에 정말 혁명이 일어난다면, 그들이 대상이 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