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불법 농성’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김종구 칼럼] ‘청와대 불법 농성’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등록 :2016-11-21 18:08수정 :2016-11-22 10:32

김종구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이마에 ‘검찰 타도’ ‘수사 거부’ 등의 구호가 적힌 빨간 머리띠도 질끈 동여맸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비장한 결의와 표독스러운 오기가 넘쳐난다.
청와대 문밖에서는 국민이 촛불시위를 하고,
안에서는 대통령이 드러누워 농성을 벌이는 기막힌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박 대통령의 말 바꾸기와 거짓말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검찰 수사를 거부하고 특검을 받겠다면서도 굳이 “중립적인 특검”을 들먹이는 것부터 수상쩍다.
막상 특검 수사를 받을 때가 되면 “중립적인 특검한테 수사를 받겠다고 했지
언제 편향적인 특검한테 수사를 받겠다고 했느냐”며 오리발을 내밀 가능성도 짙다.
박 대통령의 혼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면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박 대통령이 장기 농성전에 돌입한 이상 대응책도 달라져야 한다.
우선 법을 무시한 불법 농성은 단호히 응징해야 한다.
검찰이 그동안 입에 달고 살아온 것이 법치주의 확립이고, 갈고닦은 게 농성 해산 능력 아니던가.
지금이야말로 그 솜씨를 보일 때다.
특검 수사를 할 때 하더라도 검찰은 소환장 발부, 체포영장 청구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법의 존엄성을 보여야 한다.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에 대한 압수수색은 물론 중요한 범죄 피의자인 만큼
출국금지 조처를 내리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안면 몰수하고 덤비는 범죄인한테는 안면 몰수 대응이 제격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국정 마비니 국정 공백이니 하는 말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사실 국정 마비보다 더 나쁜 것은 정신이 마비된 대통령이 나라를 통치하는 것이고,
국정 공백보다 더 위험한 것은 텅 빈 머리의 지도자가 국민을 가르치려 드는 것이다.
‘박근혜 게이트’가 본격화하기 전까지 이 정권의 국정운영이 그랬다.
요즘 검찰과 경찰의 태도가 조금씩 변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국정이 정상화되는 측면마저 있다.
국정 공백 장기화를 무기로 몽니를 부리는 사람에게 맞서려면
국정 공백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혼란을 창조적으로 승화시키고,
그 공백에 의미 있는 내용을 채워 넣는 ‘국정 공백의 창조적 활용’이다.
사실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은 역사의 고비마다 청산과 근절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 크다.
반민특위의 실패에서부터 시작해 때로는 죄지은 자들의 반격에 밀려서,
때로는 화해와 통합의 미명 아래 어정쩡한 봉합을 해온 것이 지금의 결과다.
제때에 짜내지 못한 고름이 나라를 썩어 문드러지게 했다.
그 정점에 박 대통령이 있다.
이제는 단순히 ‘박근혜 게이트’ 수사 차원을 넘어서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고름을 완전히 제거할 때다.
모처럼 맞은 기회를 또다시 무위로 흘려보낼 수는 없다.
같은 맥락에서 조기 대선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박 대통령이 장기 농성에 돌입한 이상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데다,
공백의 창조적 활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바람직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
정권 교체가 이뤄질지 장담할 수도 없지만,
야당이 정권을 잡아 과거 청산에 나서도 마찬가지다.
한풀이니 정치보복이니 하는 비판과 화해·통합 따위의 말이 난무하면서
다시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지금은 조기 대선이나 개헌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라
국민의 열기를 몰아 역사의 고름을 짜내는 일에 집중할 때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추진은 이제 불가피한 선택이 된 듯하다.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지금부터 10개월이나 걸릴 수 있고,
헌재가 탄핵 기각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그리 걱정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그 시간은 제대로 청산 작업을 하기에는 부족할 수도 있다.
헌재의 판단이 나올 무렵이면 탄핵의 실효적 의미도 약해진다.
임기가 끝나는 대통령을 기다리는 것은 형사처벌이며,
헌재가 기각 결정을 내린다면 그 앞에는 헌재 해체론과 국민의 심판이 기다릴 것이다.
새로운 총리의 선출과 그의 역할은 이런 맥락에서 매우 중요하다.
새 내각은 중립 관리내각이 아니라 ‘청산 내각’이 되어야 마땅하다.
총리 역시 무난한 관리능력을 뛰어넘는 배포와 추진력,
과거 청산에 대한 사명감이 충만한 인물이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이제 와서는 새 총리 지명마저 거부할 우려가 있지만
정치권이 그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
야당이 그 정도의 실력도 없이 그저 촛불의 힘에만 의존하려 해서는 안 된다.
사족 : 총리 문제에 대해 엉뚱한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시키면 박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고,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법상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대행한다는 포괄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연히 인사권도 포함될 것이다.
그렇다면 황 총리는 여야가 합의한 국무총리 후보자를 지명할 권한도 갖고 있지 않을까.
말하자면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그가 차기 총리를 자기 자리에 앉힌 뒤
스스로 물러나는 ‘셀프 인사’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너무 엉뚱하고 터무니없는 생각인가?
헌법학자 등 전문가들한테 물어보지 않아서 이 주장이 법리적으로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혁명적인 상황에서는 보다 혁명적인 발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박 대통령의 ‘꼼수와 오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런 법리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해도 황 총리가 호락호락 물러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는 또 다른 촛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 힘으로 그를 총리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새 총리(대통령 권한대행)를 앉히자는 촛불!
논설위원 kjg@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1319.html#csidxcda023c051045ad950164bb360fd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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