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외치(外治)와 내치(內治)를 가리지 않고 최순실 씨(60·구속 기소)에게 청와대 문건을 넘긴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 추진 방안뿐 아니라 각 부처 장관, 검찰총장, 감사원장 등 주요 기관장 25명의 인선안과 같은 민감한 자료들을 최 씨는 국민 그 누구보다 먼저 입수해 봤다. 외부에 알려지는 걸 막기 위해 ‘대평원’ ‘북극성’ 등의 암호를 단 외국 순방계획 자료도 여지없이 최 씨의 손에 들어갔다.
검찰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47·구속 기소)의 공소장에 그가 2013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공무상 비밀을 담고 있는 문건 47건을 최 씨에게 넘겼다고 적시했다. 문건 유출 통로는 e메일, 팩스, 인편 등이다. 문서 종류는 외교, 장차관 인선, 국무회의 자료 등이 망라돼 있다.
박 대통령은 주요 열강들과의 정상회담 추진 내용을 최 씨에게 여러 번 넘겼다. 가장 먼저 유출된 정상회담 추진안은 2013년 5월 이뤄진 오바마 대통령과의 회담 계획이다. 박 대통령이 취임한 뒤 처음으로 갖는 정상회담이었다. 양 정상은 이를 통해 ‘한미동맹 60주년기념 공동선언’을 채택했고, ‘한미 에너지 협력장관 공동성명’도 발표하는 등 정부로서는 매우 중요한 회담이었다. 이 문서는 정상회담 2개월 전인 3월 8일 최 씨가 받아 봤다. 문서는 외교부 3급 기밀로 지정돼 있었다.
최 씨가 받은 정상회담 추진 문건 중 눈에 띄는 것으로는 세 글자로 이뤄진 암호가 붙은 4건이 있다. 대통령의 유럽 순방 계획은 ‘대평원’, 중동 순방은 ‘계절풍’, 북미 순방은 ‘북극성’, 이탈리아 순방은 ‘선인장’으로 표기됐다. 암호가 붙은 것으로 보아 소수만 공유하던 문서로 추정된다.
박 대통령이 세계 지도자들과 접촉한 내용을 최 씨가 받아 본 것도 외교적 논란거리다. 최 씨는 2013년 3월 6일 박 대통령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나눈 통화 자료와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 및 한일 간 현안 문제 문건을 받았다.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이날 오후 통화를 나눴는데 곧바로 최 씨에게 유출된 것이다.
만남만으로도 큰 화제가 되는 박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간의 면담 계획 및 그들이 나눈 통화 내용은 유독 여러 번 유출됐다. 2013년 4월 12일 최 씨가 받은 문건에는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의 통화 자료가 포함돼 있다. 취임 직후인 2013년 2월 27일 박 대통령은 반 총장에게 유엔 차원의 북핵 문제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출 문건에는 민감한 북핵 관련 문건도 포함돼 있었다. 이 문건은 북핵과 관련된 고위 관계자 접촉 때문에 언론에 배포하지 않은 기밀사안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