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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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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7일 10:34 오전
민초의 노래 인권의 멜로디
등록 : 2015.01.06 18:47수정 : 2015.01.06 18:47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조효제의 인권 오디세이
오늘날 누에바 칸시온은 저항과 사회정의를 노래한 운동가요의 범주를 넘어 확대된 장르로 발전해 있다. 랩이나 힙합과도 결합했고, 대중의 일상 정서와 삶을 표현한다. 중남미에서 누에바 칸시온은 저항과 서정의 전통이 담긴 중요한 역사적 유산으로 존중받는다.
누에바 칸시온의 진화를 보면 문화든 노래든 인권이든 결국 보통사람들의 삶, 그 한복판에서 함께 기뻐하고 슬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혁명의 노래로만 일관했다면 오래전에 역사의 유물로 전락했을지 모른다.
길을 걷다 보면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라틴음악이 들리곤 한다. 그 순간 아, 정말 중남미에 와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한국에선 인터넷 사이트를 일일이 찾아 들어야 했지만 이곳에선 그냥 라디오를 틀기만 하면 하루 종일 라틴음악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탱고, 살사, 보사노바는 기본이고 마리아치, 바차타, 반다, 쿰비아, 메렝게, 란체라 등 이곳 과일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음악들이 귀를 즐겁게 한다. 알다시피 라틴음악은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카리브의 정서가 독특하게 버무려진 진정한 세계음악의 성격을 띠고 있지 않은가.
생각난 김에 중남미 여러 나라 방송국들의 프로그램을 찾아보다 약간 놀랐다. 누에바 칸시온이 아직도 건재하기 때문이었다. 독립 프로그램으로 편성해 놓은 곳도 있고, 포크뮤직으로 분류해 놓은 곳도 있지만 어쨌든 나름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 방면 지식이 얕은 탓에 누에바 칸시온을 남미판 운동가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늘날 누에바 칸시온은 저항과 사회정의를 노래한 운동가요의 범주를 훨씬 넘어 확대된 장르로 발전해 있다. 형식상으로 보면 발라드나 서정시풍을 넘어 랩이나 힙합하고도 결합했고, 내용적으로는 대중의 일상 정서와 삶을 표현하는 차원으로 발전했다.
예를 들어, 작년 브라질월드컵 때 8강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던 코스타리카 축구팀을 위한 응원곡도 누에바 칸시온으로 만들어졌다. 국가대표팀 별명인 ‘라 셀레’를 따서 ‘여기 셀레가 있다’는 곡이었다. 알레한드로 아를레이라는 언론인이 아마추어 수준으로 작사한 곡인데 대표팀이 의외로 선전하면서 폭발적인 국민가요로 떠올랐다. “여기 셀레가 있네, 셀레만 있으면 가슴이 터질 듯/ 여기 셀레가 있네, 우린 무조건 셀레의 서포터스/ 우릴 꿈꾸고 노래하고 웃고 탄식하게 하는 건 오직 셀레뿐/ 코스타리카 만세, 셀레여 세계를 휩쓸어라….”
누에바 칸시온을 잘 모를 수도 있는 요즘 세대를 위해 약간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우선 누에바 칸시온은 스페인 말로 ‘새로운 노래’라는 뜻이다. 20세기 후반 칠레를 위시한 라틴아메리카 각국에서 혁명의 불길을 태우는 음악으로 유명해졌다. 부르는 명칭도 나라마다 약간씩 차이가 난다. 칠레에선 라 누에바 칸시온으로 처음 알려졌지만 1973년 피노체트의 쿠데타 뒤 강한 탄압을 받으면서 엘 누에보 칸토라고 불렸다. 아르헨티나에선 누에보 칸시오네로, 쿠바에선 누에바 트로바, 스페인에선 노바 칸소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누에바 칸시온 하면 다 통하는데, 단순히 음악 장르를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고 뚜렷한 목표를 지닌 ‘새노래 운동’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비올레타 파라, 메르세데스 소사, 빅토르 하라, 인티일리마니 같은 전설적인 가객들이 다 이런 지향을 공유하고 있었다.
누에바 칸시온이 등장했던 배경이 무엇인가. 독재정권에 저항하여 인권을 외쳤던 것 뒤에는 더 깊은 역사적 맥락이 있었다. 문화제국주의의 문제를 예리하게 비판하는 의식이 오랫동안 라틴아메리카 사람들 사이에 존재했다. 토착음악 전통이 외래음악, 상업적 음악에 의해 위협받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다. 대중음악을 민중의 관점에서 재정의하고 다시 부흥하자는 결기도 만만치 않았다. 인권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움직임을 통틀어 ‘음악의 자기결정권’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깨어 있는 의식을 강조한 음악답게 현대식 가사를 쓰면서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곡조와 토착 악기들을 연주에 대거 등장시킨 점도 특이하다. 더 나아가 전통 포크음악의 선율을 한 단계 승화시킨 것도 누에바 칸시온의 공헌이었다. 이들은 인권, 정의, 민주주의, 평화, 저항, 혁명, 전통문화와 같은 주제를 즐겨 다뤘다. 이 때문에 누에바 칸시온을 단순히 운동가요로 도식화하는 오해가 생겼다. 하지만 사회·정치적 메시지가 없거나 적은 곡들도 많았다. 독재정권의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은유적 표현을 많이 활용했던 점도 한몫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참여음악과 순수음악이 함께했던 ‘참순음악’이었다고나 할까.
외견상 서정적이지만 의미상 강한 연대의 정신을 전달하는 방식이 누에바 칸시온의 국제화를 도운 측면이 있다. 예컨대 2004~2005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 당시 키예프 시민들은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비올레타 파라의 ‘삶에 감사해’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삶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걸 준 그 삶에/ 삶은 샛별 같은 눈동자를 주었지/ 빛과 어둠을 구분할 수 있는/ 저 창공 위엔 무수한 성좌들/ 인파의 물결 속엔 사랑하는 임의 모습…”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에서 누에바 칸시온은 거의 문화재 비슷한 대접을 받는다. 저항과 서정의 전통이 담긴 중요한 역사적 유산으로 인정하고 존중한다. 민간 차원에서 누에바 칸시온이 계속 진화하고 발전 중인 장르라는 점이 그것을 증명한다. 공식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코스타리카 국립도서관의 누리집에 들어가 음악 분야를 찾아보면 누에바 칸시온 항목을 따로 분류하여 대표적인 곡들의 음원 파일을 띄워 놓았다. 이런 식의 공공 서비스가 대중의 인문교양과 시민교육 창달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겠는가.
직접 관련은 없지만 노래 이야기가 나온 김에 ‘님을 위한 행진곡’을 생각해 본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이 정도면 정말 세계적 수준의 민중가요이자 연대의 음악인데 이런 자랑거리를 두고 논란이 벌어진 상황 자체가 안타깝다. 혹시 공식석상에서 부르기엔 너무 과격하고 품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지. 그렇다면 다음 가사는 어떤가. “가자 조국의 자식들아, 영광의 날이 밝았다!/ 우리 적 폭군의 피묻은 깃발이 날린다…/ 그들이 우리 코앞에 닥쳤다, 우리 처자식의 목을 따러 온다…/ 대오를 지어 나아가자 전진하자/ 저들의 더러운 피로 우리 밭고랑을 적시자!” 너무 섬뜩한가. 다름 아닌 ‘라 마르세예즈’, 프랑스의 국가다. 그렇다고 이 나라의 품위가 떨어지는가. 자유, 평등, 연대의 존중과 역사의식이 프랑스의 국격을 세계사적 차원으로 드높인 게 아니던가.
코스타리카 출신의 작가, 문화운동가 겸 가수였던 에밀리아 프리에토가 누에바 칸시온의 초기 형태를 다듬었던 사람이었음을 이곳에 와서 알게 되었다. 그녀는 1929년 대공황이 났을 때 문화가 민중의 현실을 가감 없이 반영하고 변화시키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며 그것을 평생 실천했다. 그녀가 남긴 명언이 있다. “비정치적이라는 건 태어나지 않았다는 말이고 죽었다는 말이고 미쳤다는 말이다!” 이 웅변을 새기노라면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순 없다”고 하신 어느 분의 목소리가 다시 우리 곁을 울리는 듯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출을 기뻐한 아르헨티나 음악가 호르헤 헤안데트가 교황을 기리는 누에바 칸시온을 만들기도 했다. 이름하여 ‘프란치스코의 노래’. 가사가 음미할 만하다. “겸손하고 어진 사람/ 예수회 신부, 정의롭고 청빈한 이/ 광야의 예수 같은 끈기와 성정/ 우리 형제 라틴아메리카인…/ 프란치스코, 촌동네 교황/ 노동자와 함께 울고 함께 싸우는/ 그 이름 프란치스코, 촌동네 교황/ 하늘같이 끝없는 양떼들의 목자…/ 소박한 행보에 강철 같은 신앙/ 가난한 자에게서 길을 구한다네/ 탱고와 축구 광팬/ 산로렌소 팀을 응원한다지/ 하지만 이제 바티칸에/ 베드로의 자리에 가게 됐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누에바 칸시온의 진화를 보면 문화든 노래든 인권이든 결국 보통사람들의 삶, 그 한복판에서 함께 기뻐하고 슬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누에바 칸시온이 혁명의 노래로만 일관했다면 오래전에 역사의 유물로 전락했을지 모른다. 저항이 필요한 자리, 연대가 필요한 자리, 사랑이 필요한 자리, 열광이 필요한 자리를 가리지 않고 함께했기에 오늘까지 뿌리를 이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점에서 누에바 칸시온은 민초들과 함께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는, 영원히 새로워지는 노래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