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검찰, ‘횡령’ 구현모 전 KT 대표에 벌금 500만원 구형
작성자: 최종관리자 | 조회: 258회 | 작성: 2023년 8월 12일 11:15 오전검찰, ‘횡령’ 구현모 전 KT 대표에 벌금 500만원 구형
- 김용수 기자(yong0131@sisajournal-e.com)
- 승인 2023.08.12 08:50
구 전 대표 “심부름꾼일 뿐”···김인회 전 사장, 증인 출석해 CR부문 질타
[시사저널e=김용수 기자] 검찰이 ‘상품권 깡’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구현모 전 KT 대표이사(CEO) 사장에게 약식명령과 동일한 500만원의 벌금형을 구형했다.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박종욱 KT 경영기획부문장 겸 CEO직무대행 사장과 강국현 KT 커스터머부문장 사장에게도 기존과 같은 500만원형이 구형됐다. 이에 구 전 대표 등은 당시 대관(CR)부문으로부터 협조 요청을 받아 단순 ‘심부름꾼’ 역할을 했을 뿐 횡령 혐의의 주관적요건인 ‘불법영득의사’가 없었다고 항변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김인회 전 KT 경영기획부문장 사장도 CR 부문 임원들에 책임을 돌렸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11일 구 전 대표와 박 사장, 강 사장, 김영술 KT 국회대관담당 상무 등 전·현직 KT 임원의 ‘업무상 횡령’ 혐의 관련 결심 공판기일을 열었다.
이번 재판은 KT 법인과 전·현직 임원이 2014년 5월~2017년 10월 국회의원을 불법 후원한 혐의를 가리기 위한 것이다. KT는 상품권을 매입한 뒤 되팔아 현금화하는 ‘상품권 깡’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국회의원을 불법 후원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비자금 규모는 11억5000만원으로 이중 4억3790만원이 19·20대 여야 국회의원 99명에게 제공됐다.
구 전 대표는 당시 황창규 전 KT 회장의 비서실장(전무)과 경영지원총괄(부사장)로 근무하며 대관 담당 임원에게 자금을 받아 자신의 명의로 국회의원 13명에 1400만원을 후원한 혐의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박 사장은 국회의원 12명에게 1200만원을, 강 사장은 15명에게 1500만원을, 김 상무는 3명에게 600만원을 후원한 혐의를 받는다.
◇ 김인회 전 KT 사장 “맹수호 전 사장과의 사전 논의·승인 없어”
이날 공판기일은 구 전 대표 측 증인으로 출석한 김 전 사장에 대한 증인 신문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김 전 사장은 황 전 KT 회장과 같은 삼성전자 출신으로, 2014년 황 전 회장 취임 직후 재무실장 전무로 영입돼, 2018년 경영기획부문장 사장까지 초고속 승진한 황 전 회장의 최측근이다. 특히 황 전 회장의 초대 비서실장인 구 전 대표에 이어 황 전 회장의 2대 비서실장으로 근무했다.
앞서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한 맹수호 전 KT CR부문장 사장은 쪼개기 후원을 실행한 경위와 관련 2016년 5월경 ‘20대 국회 대응 방향’이란 제목의 문건을 작성, 같은해 8월경 황 전 회장과 구 전 대표, 김 전 사장 등에 국회의원 후원 계획을 보고한 바 있다고 진술했다. 맹 전 사장은 2015년 12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KT의 대관(CR) 부문을 이끌었다. 특히 그는 당시 CR부문의 후원 예산이 부족한 탓에 구 전 대표 등이 참석한 임원 간담회에서 다른 부문 임원들의 명의를 빌려 후원하는 방식으로 자금 마련을 논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전 사장은 맹 전 사장으로부터 해당 내용을 보고받은 적 없으며, 쪼개기 후원 방식의 불법 후원을 승인한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맹 전 사장이) 본인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사전 협의했다고)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맹 전 사장이 2017년 11월 17일 처음 상품권 깡을 얘기했지만 당시 심각하게 못 느꼈는데, 같은달 24일 정치자금법 위반 가능성이 있단 얘기를 듣고 심각성을 깨달았다”며 “맹 전 사장이나 전인성 전 CR부문장 사장 등은 사법리스크를 잘 아는 사람들인데, 동료 임원들에게 명확하게 고지를 하지 않아서 이런 사태가 발생한 점이 안타깝다. 그럼에도 계속 논의했다고 하는 건 너무 비겁하다”고 했다.
◇ 검찰 “기부, 회사 위한 것인지 납득 어려워”vs 구 전 대표 “횡령죄는 억울”
증인 신문 종료 후 검찰은 “불법영득의사와 관련 피고인들은 회사를 위한 행동이었다고 하지만, 회사나 주주, 또 소비자 입장에서 정치자금 기부가 어떤 면에서 회사를 위한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며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정상적인 경영활동의 일환이라 보기도 어렵다. 또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회사 자금을 집행한 것으로 평가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이어 “피고인들은 단순히 사자의 역할을 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지만, 피고인들은 단순 고용인이 아니라 회사에서 많은 것을 누리고 책임이 있는 임원들이었다”며 “피고인들의 죄에 상응하는 형벌을 선고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에 구 전 대표와 박 사장, 강 사장에겐 각각 500만원을, 김 상무에겐 300만원의 벌금형을 구형했다.
구 전 대표 법률대리인은 “횡령죄는 기수시기가 문제가 된다. CR부문 임직원이 부외자금을 조성했을 때 일반적으로 기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부외자금 조성, 정치자금 후원 계획에 있어서 피고인들은 관여한 바가 전혀 없다. 관여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공동정범에 대한 죄를 물을 수 없다”며 “가장 당황스러웠던 점은 정치자금법 위반죄와 횡령 죄가 나뉘어 너무나 동일한 재판이 동시에 진행됐던 점이다. 하나의 재판에서 처리했어야 할 것을 두개로 나누는 바람에 소송경제적으로 굉장히 소모가 컸고, 피고인들이 동일한 재판을 두 번씩 받게 된 고통도 따랐다. 검찰의 잘못된 기소란 점을 판단해달라”고 강조했다.
구 전 대표 등은 최후진술에서 CR부문의 업무 협조요청에 응했을 뿐, 위법한 행위인지는 몰랐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구 전 대표는 “회사생활을 오래 하면서 정치자금법을 위반하게 된 점에 대해 후회도 많이 하고 그것을 왜 미리 알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도 많이 했다”며 “그러나 횡령죄까지 이어진단 점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그 돈으로 착복한 것도 아니고, CR부문에서 요청한 것을 심부름했을 뿐이다. 정말 억울하다”고 했다.
박 사장은 “당시 CR부문에서 문제점을 하나도 말하지 않고 업무협조만 했다. 불법적인 요소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동료들에게 배신감을 많이 느낀다. 직장인으로서 살아왔는데, 이 하나로 처참하게 무너져 힘이 많이 든다. 선처 바란다”고 했다.
강 사장도 “CR부문에서 정치자금 후원을 부탁했을 때 정치자금법 위반이란 말을 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며 “법을 위반한 것에 대해 반성하지만, 업무상 횡령까지 하면서 개인적인 이득을 얻은 게 없다”고 했다.
선고 공판은 오는 10월 11일로 예정됐다.
구 전 대표 등은 지난해초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0만원, 업무상 횡령 혐의로 벌금 5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그러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관련 1심 재판부는 지난달 5일 구 전 대표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박 사장과 강 사장은 각 400만원, 김 상무에겐 300만원이 선고됐다. 다만 이후 검찰과 구 전 대표 측 쌍방이 항소함에 따라 해당 사건은 2심으로 이어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