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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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는 지난 2002년 민영화된 이래 꾸준히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 정권 교체 후에도 연임에 성공했던 남중수 전 사장은 2008년 11월 납품비리 의혹 등으로 구속되며 불명예 퇴진했고, 이석채 전 회장은 임기 중 1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데 이어 2019년 채용비리 청탁 의혹 사건으로 구속됐다. 황창규 전 회장 역시 국회의원을 상대로 이른바 ‘쪼개기 후원’을 했다는 이유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런 KT가 또 다시 수사당국의 타깃이 됐다. 검찰은 이번에도 최고위급 인사들을 겨냥하고 있다. 지난 3월 7일 시민단체 ‘정의로운 사람들’이 구현모 전 대표를 검찰에 고발한 게 시작이었다. KT텔레캅이 시설 관리 등 일감을 KDFS에 몰아주는 데 구 전 대표가 관여했다는 것이다. 당시 KT그룹은 “KT는 사옥의 시설 관리와 미화, 경비 보안 등 건물 관리 업무를 KT텔레캅에 위탁하고 있으며, KT텔레캅의 관리 업체 선정과 일감 배분에 관여한 바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진행될수록 수상한 정황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단순히 ‘일감 몰아주기 의혹’에서 시작된 이번 사건은 어느새 KT그룹 내부의 ‘이권 카르텔’ 의혹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처음에 검찰은 KT텔레캅이 KDFS에 일감을 몰아주기 위해 품질평가 기준을 변경한 사실을 포착하고 공정거래 사건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진행했지만, 이후 기준이 변경될 당시 KT그룹 본사가 관여한 정황이 확인됐다. 이제 검찰은 구 전 대표 등 윗선을 겨냥해 수사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KT, 품질평가 기준 변경…KDFS 매출 10배 늘어나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이정섭)는 지난 3월 시민단체의 고발장을 접수한 뒤 기초 조사를 거쳐 KT 법무실 장모 전무와 이모 전 KT 경영관리부문장(부사장)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작년 12월 KT텔레캅을 대상으로 실시한 현장조사 자료도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했다.

참고인 조사와 공정위의 현장조사 자료를 검토한 검찰은 이달 초 장지호 KT텔레캅 대표와 이번 일감 몰아주기 사건의 피해 기업 관계자들도 불렀다. 그 결과, 검찰은 KT텔레캅이 KDFS에 일감을 몰아주기 위해 물량을 배분하는 기준을 변경한 정황을 파악했다.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KT텔레캅은 2020년 KDFS에 일감을 몰아주고 그동안 KT그룹 거래액 기준 최상위 업체이던 KFnS의 물량을 차감하겠다는 계획을 통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KT텔레캅과 시설관리업체 사이 계약서에는 ‘품질평가 점수가 90점 이상일 경우 물량을 조정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지만, 상호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계약 조건을 변경한 것이다.

결국 물량을 차감 당한 업체의 반발이 나오자 KT텔레캅이 기존에 사용하던 품질평가 기준을 2021년 변경한 정황도 파악됐다. KT텔레캅이 KDFS에 일감을 몰아주기 위해 기준을 바꿨다는 게 검찰 시각이다.

새 기준의 평가 점수는 기존 100점 만점에서 1000점 만점으로 바뀌었다. 900점 미만인 경우 구간에 따라 물량을 조정할 수 있도록 변경됐다. 1~4점에 불과했던 점수 차는 100점 이상으로 벌어졌고, 이 기준에 따라 KDFS는 최고 점수를, KFnS는 최하 점수를 받았다. 검찰은 이 같은 기준 변경이 특정 사업자에 일감을 몰아주기 위한 것이라고 의심한다.
KT.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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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등장한 남중수 이름…검찰, 자금 흐름 추적

이처럼 최근까지만 해도 검찰은 KT텔레캅과 KDFS 두 법인에 대해서만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KT텔레캅이 품질평가 기준을 변경하는 과정에 KT 본사가 관여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수사 범위가 급격히 확대됐다. KT텔레캅이 품질평가 기준을 변경하기 위해선 본사와의 협의가 필수적이다. 또 KT에스테이트가 담당하던 시설관리사업이 KT텔레캅으로 이관된 시기는 공교롭게도 구 전 대표가 취임한 해였다.

이에 검찰은 지난 16일 KT 본사와 KDFS 등 10여 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아울러 검찰은 황욱정 KDFS 대표가 월급 명목으로 거액의 회삿돈을 현금으로 인출한 사실도 확인해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KT텔레캅이 KDFS에 일감을 몰아줬을 무렵 황 대표의 월급은 이전에 비해 4~5배 가량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일감 몰아주기에 남중수 전 사장을 중심으로 구 전 대표, 황 대표 사이의 ‘이권 카르텔’이 작용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KDFS에 몰린 수익이 황 대표를 거쳐 구 전 대표나 남 전 사장에게 흘러갔다는게 검찰 시각이다.

참여정부 시절 KT를 이끈 남 전 사장은 과거 인사 청탁과 뇌물 수수 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았고, 최근 KT 동우회장으로 단독 출마해 당선됐다. 일감 몰아주기 의혹의 수혜자인 황 대표와 구 전 대표는 남 전 사장과 매우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KT 내부 출신으로 정치적 입지가 흔들렸던 구 전 대표는 남 전 사장에게 의지하며 가까워졌고, 황 대표는 KDFS 초대 사장을 지낸 남 전 사장이 2008년 납품비리 사건으로 구속된 당시 옥바라지까지 한 최측근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검찰은 황 대표가 소유한 KDFS 지분 42.25%가 남 전 사장의 자금이 들어간 ‘차명 주식’일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KDFS는 2010년 8월 KT의 영업 부문을 분할하는 방식으로 설립됐는데, 지분 대부분이 개인에게 몰린 정황이 수상하다는 게 검찰 시각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공정거래 이슈를 넘어 과거 KT그룹 최고위직 사이의 비리가 등장한 상황에서, 이권 카르텔로 형성된 이익이 정치권으로 들어간 것은 아닌지 검찰이 자금 흐름을 면밀하게 살펴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