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소액주주 기회 뺏는 ‘상호주’…KT 이어 네이버에도 문제제기”

“소액주주 기회 뺏는 ‘상호주’…KT 이어 네이버에도 문제제기”

등록 :2023-02-20 05:00수정 :2023-02-20 08:06

KT에 ‘주주제안’ APG 박유경 전무 인터뷰
주식 교차소유로 우호지분 확보
“주총·시장기능 무력화 우려 커”
상호주 규모 많은 KT부터 공략
“주주가치 관점서 재검토” 요구
네덜란드 연금투자사 에이피지(APG Investments Asia)에서 아시아 책임투자를 담당하고 있는 박유경 전무(The Asia Pacific head)가 16일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주주총회를 요식행위로 전락시키는 상호주 문제, 한국에서는 KT가 가장 심각하다”고 말했다. 박유경 전무 제공
네덜란드 연금투자사 에이피지(APG Investments Asia)에서 아시아 책임투자를 담당하고 있는 박유경 전무(The Asia Pacific head)가 16일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주주총회를 요식행위로 전락시키는 상호주 문제, 한국에서는 KT가 가장 심각하다”고 말했다. 박유경 전무 제공
네덜란드 연금투자 회사 에이피지(APG Investments Asia)가 새 대표이사 후보 선임과 정기주총을 앞두고 있는 케이티(KT)에 경영진의 우호지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 ‘상호주’를 견제하는 방향으로 정관을 변경해달라고 주주제안을 했다. 이런 사실은 지난 16일 에이피지 위임을 받은 경제개혁연대 발표로 국내에 알려졌다. 케이티가 구현모 대표를 차기 대표이사 후보로 확정했다가 ‘셀프 연임’ 내지 ‘밀실 추천’ 논란을 받아 백지화하는 상황을 연거푸 만든 데 이어 이번에는 ‘주주 행동주의’와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에이피지는 그동안 삼성전자 백혈병 사태와 에이치디씨(HDC)현대산업개발의 공사 중인 건물 붕괴 사고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한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주주 자격으로 적극적인 질의와 제안을 해왔다.에이피지에서 아시아 책임투자를 담당하고 있는 박유경 전무(The Asia Pacific head)는 지난 16일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마치 시험을 보기도 전에 백점을 주기로 약속한 것처럼 주주총회를 요식행위로 전락시킬 수 있는 ‘크로스 쉐어홀딩’(상호주) 문제는 일본에 이어 한국 시장의 자정 기능까지 망가뜨릴 수 있다”며 “현재 한국의 선도 기업 중 케이티의 상호주 규모가 가장 크기에 먼저 문제 제기를 했고, 이후 네이버 등으로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상호주란 상장 기업이 자신의 주식을 상대 기업이 소유하게 하고, 그 대가로 상대 기업의 주식을 소유하는 경우의 주식을 뜻한다. 국내 주요 기업 중에선 최근 케이티의 상호주 증가가 가장 두드러진다. 케이티는 지난해 9월 7459억원 규모의 자사주(7.7%)를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에 넘겼고, 현대자동차(4456억원)와 현대모비스(3003억원) 역시 같은 규모의 자사주를 케이티에 매각했다. 당시 케이티와 현대자동차그룹은 모두 “사업 제휴 강화” 목적이라고 공시했다. 또 지난 1월에는 케이티가 신한금융지주 주식 4375억원어치를 취득했고, 신한금융지주 자회사 신한은행은 케이티 우호 주주 구실을 해오던 일본 엔티티도코모 소유 주식을 4375억원에 인수했다. 케이티는 신한금융 쪽과 상호주를 형성할 때도 사업 제휴 강화를 내세웠다.경제개혁연구소는 지난달 “2011~2022년 사이 상장회사의 자사주 거래를 통한 우호지분 확보 현황을 분석한 결과, 네이버와 케이티의 거래규모가 가장 컸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를 쓴 이은정 연구원은 “케이티는 과거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돼 지배주주가 존재하지 않고 국민연금이 최대주주(9.95% 보유)여서 경영진이 상호주 보유를 통한 우호지분 확보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현재 대표이사인 구현모가 오는 3월 임기가 만료되므로 대표이사 재선임을 위한 우호지분 확보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전무는 “일본은 ‘상호주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상호주가 주식 시장에 팽배해 문제가 됐었는데, 한국은 최근 살금살금 상호주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며 “친구들끼리 서로 주식을 나눠갖고 주주총회 가서 너도 나한테 찬성하고 나도 너한테 찬성하는 과정에서 시장이 망가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에이피지의 주주제안에는 케이티가 이번 정기주총에서 자사주의 보유 목적과 소각 계획 등을 보고하고, 나아가 자사주 교환 등을 통해 이른바 ‘상호주’를 형성할 때는 주총 승인을 받도록 정관을 변경해달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사항에 관한 권고적 주주제안권을 도입한 뒤, 현재 보유 중인 현대자동차·현대모비스 등의 ‘상호주’ 필요성과 향후 계획을 주주가치 관점에서 재검토해달라고 제안했다.박 전무는 “주총이라는 한정된 통로를 통해서만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소수 주주들이 그 기회마저 잃게 되는 것이 상호주의 문제”라며 “이 문제에 대해 케이티 경영진이나 이사회와 충분히 소통을 하고자 하며, 주총에도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케이티는 20일 새 대표이사 후보 접수를 끝내고, 이후 공개 경쟁 절차를 거쳐 최종 후보를 확정한 뒤, 오는 3월 말로 예정된 정기주총 승인을 받아 새 대표이사를 확정할 예정이다.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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