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쪼개기 후원’ 검찰 수사기록 2만4천쪽 입수
‘상품권 깡(현금화)’으로 마련한 부외자금 수억원을 국회의원 99명에게 쪼개기 후원한 케이티(KT) 전직 임원들이 지난 16일 1심 재판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들은 골프, 식사, 술 접대 등으로 국회의원실 보좌진 등과 친분을 맺은 뒤 가족과 지인 등 명의로 정치후원금을 전달했다. 후원 대가는 법안 처리와 국정감사 등 의정 관련 편의 제공이었다. <한겨레>가 27일 케이티노동인권센터로부터 입수한 2만4천여쪽 분량의 쪼개기 후원 수사기록은 불법과 탈법의 경계에서 현금을 매개로 이뤄진 대관 로비의 실태 보고서에 가까웠다.
케이티 대외협력지원실은 회사 현안과 관련한 국회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임원별로 고등학교, 대학교, 출신 지역을 따져 접근 루트를 개발한 뒤 후원금 기부 계획을 세웠다. 대관담당 임직원들은 1주일에 3~4차례 국회의원실을 돌며 차담을 나누면서, 점차 식사·술자리를 마련했다. 얼굴을 튼 뒤에는 현금을 전달했다. 회사 예산으로 상품권을 주문한 뒤, 3.5~4% 할인된 현금으로 돌려받는 ‘상품권 깡’ 방식으로 11억5100만원 상당의 현금을 마련했다. 2014년 7월~2015년 11월, 2016년 1월~2017년 9월 집중적으로 정치후원금을 냈다. 임원 본인 명의는 물론, 부인과 가족·지인 등이 동원됐다. 1인당 후원한도 500만원을 넘기지 않기 위한 조처였다. 후원금을 낸 뒤에는 후원자 이름과 연락처, 주소 등을 국회의원실에 넌지시 알렸다. 단순한 개인 후원자가 아니라 ‘전주’인 케이티가 명의만 빌린 이들이란 사실을 의원실에 알려준 셈이다.
국회의원실의 은근하면서도 노골적인 후원금 요구도 쪼개기 후원을 가능케 했다. 케이티 경쟁사와 대놓고 비교하며 후원금 기부를 부추기는 경우도 있었다. 수사기록을 보면, 국회의원실 보좌진들은 뒷면에 후원금 계좌가 적힌 명함을 주며 ‘뒷면을 잘 보세요’ 등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경쟁사를 언급하며 ‘OO회사는 이만큼 하는데 케이티는 왜 안하냐’며 노골적으로 후원금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대관임원들은 검찰에 진술했다. 케이티 임원들은 “솔직히 소액후원을 해달라는 문자가 오면 무시하기 어렵다” “의원실 요청이 오면 윗선에 보고해 현금을 만들어 입금했다” “경쟁업체도 관행적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만 안하면 찍힐 수 있다”고 진술했다. 쪼개기 후원이 꼭 자발적인 것만은 아니었다는 취지의 진술이지만, 그간 풍문으로만 떠돌던 정치권과 재계 사이 ‘후원금 이심전심’이 작동하는 구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케이티는 후원금 외에도 국회의원 지역구 행사 협찬, 관련 단체 기부 등 다양한 요청도 들어줬다고 한다. 의원실이 요청한 협찬·기부 등을 정리해 회사 재무실과 전략기획실에 보고하면 ‘사회공헌 예산’으로 이를 집행했다는 것이다. 협찬·기부 규모는 통상 3000만원 수준이었다. 참고인 조사를 받은 케이티의 한 직원은 “케이티에 우호적인 입장인지 등을 참고해 1년에 1∼2건 정도는 기부나 협찬을 해줬다”고 진술했다.
케이티 대관담당 임직원들은 직급별 법인카드 한도가 월 200만∼3000만원 수준이다. 개인별로 연간 1500만원~1억원에 달하는 현금 활동비도 받았다. 현금은 국회의원실 보좌진, 연구용역을 수행한 대학교수 등에게 골프·술·식사를 접대할 때 쓰였다. 국회의원 보좌관 등의 경조사도 빠짐없이 챙겼다고 한다. 국회의원 경조사의 경우, 회장 명의로는 50만~100만원, 부사장은 30만~50만원, 전무는 20만~30만원 정도를 담은 봉투를 냈다고 한다. 보좌관 경조사는 회장은 챙기지 않았다. 대신 부문장 30만원, 전무 20만원 선에서 지출했다고 진술했다. ‘쪼개기 경조사비’로도 볼 수 있는 행태다. 한 대관임원은 검찰 조사에서 “회사 전체로 보면 경조사비로만 상당히 큰 돈이 들어가는 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