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 검찰의 석연치 않은 불기소, KT와 황창규
작성자: 최종관리자 | 조회: 113회 | 작성: 2022년 6월 27일 6:58 오후검찰의 석연치 않은 불기소, KT와 황창규
KT 불법 정치자금 후원, 검찰이 편향적으로 해석한 증거들
- 홍민철 기자 plusjr0512@vop.co.kr
- 발행 2022-06-27 17:27:46
- 수정 2022-06-27 17:23:37
KT 불법 정치자금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당시 최고경영자 관련 증거를 편향적으로 해석한 정황이 최근 확인됐다.
사건엔 KT 사장, 부사장급 고위 임원 대부분이 조직적으로 가담했다. 하지만 검찰은 유독 최고경영자였던 황창규 회장만큼은 ‘증거가 없다’며 재판에 넘기지 않았다. 황 회장이 사실상 지시·승인했다고 본 경찰 입장과는 정반대 결정이었다.
결국, 사건은 불법 정치자금 제공 실무를 맡은 대관 담당 임원 4명이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상관까지 동원해 저지른 일’이라는 비상식적 결론이 내려졌다.
27일 민중의소리가 확보한 당시 검·경 수사 자료에는 황 회장이 불법 정치자금 사건에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다수 확인된다. 황 회장은 불법 정치자금 조성 방법을 보고 받았을 가능성이 높고, 정치자금 규모를 정기적으로 확인했다. 황 회장은 보고받는 자리에서 “수고했다”라며 담당 임원을 치하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그들이 법을 어기기 위해 한 일들
KT 불법 정치자금 제공 사건은 고위 임원과 임원 가족 등이 국회의원 99명에게 4억여원을 후원한 사건이다. 정치자금법은 KT와 같은 회사가 회사 자금으로 국회의원에게 후원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KT 고위 임원들은 법을 우회하기 위해 회삿돈으로 불법 자금을 조성하고, 조성된 자금을 임원 개인 명의로 의원 후원 계좌에 입금하는 수법을 썼다. KT는 후원 금액과 후원자 명단을 정리해 해당 국회의원실 관계자에게 전달했고, 명단을 전달 받은 일부 국회의원실 관계자는 KT에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사건의 발단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KT는 임원들에게 성과급을 부풀려서 지급하고, 부풀린 금액을 돌려받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 조성된 비자금은 법인카드로 공식 지출할 수 없는 현금성 비용에 쓰였다. 국회의원들을 불법 후원하고, 의원 및 보좌관들과 골프 치고 주점에 드나드는 접대 비용으로 사용했다.
2013년, 검·경 수사로 KT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 방식이 드러났다. 당시 이석채 회장은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됐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KT는 성과급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할 수 없게 됐다.
2014년 1월, 이석채에 이어 KT 회장에 선임된 사람이 황창규다. 황 회장은 취임 이후 현금성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KT 내부 보고 문서에는 이런 정황이 자세히 나타난다. 2014년 2월, KT 인재경영실이 작성한 ‘임원 대외활동 비용 지급 방안 검토 회의’ 회의록에는 황창규 회장이 “대외 활동비는 필요하다. 회사 목적 사용에 대한 확인 등 사전 대응 방안을 마련하라”라거나 “타사 사례를 참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적혀 있다.
황 회장의 지시에 따라 관련 임원이 여러 차례 회의를 진행한다. 당시 회의에선 임원에게 성과급을 부풀려 주고 이를 대외 활동 비용으로 사용하게 하자는 방안과 회사 자금으로 상품권을 구매한 뒤 이를 현금화하는 방안(이른바 상품권 깡) 등이 구체적으로 검토됐다.
회의 참석자들은 ‘성과급 부풀리기’가 사회적 문제가 돼 회장이 물러난 마당에 같은 방법을 또 써먹기는 부적절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하지만 마땅한 대안은 찾지 못했다. 어떤 형태로든 회사 자금을 현금화할 경우 세무(법인·소득세 부과)·형법(횡령)상 위법 소지가 다분했기 때문이었다.
2개월 뒤 작성된 ‘임원(현금성) 대외활동 비용 운영 방안’ 문서에는 “적법한 절차와 정상적 활동을 통해 현금화하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라고 적혔다. 결국, KT는 ‘현금이 필요할 경우 각 부서에서 알아서 마련하라’는 모호한 결론을 내렸다.
국회와 정부 로비를 담당하는 KT 대관 부서가 선택한 현금화 방안은 상품권 깡이었다. 협력업체에 상품권을 주문하고 대금을 입금하면, 업체는 상품권을 납품하는 대신 3~5% 정도 수수료를 뗀 현금을 인출해 KT에 가져다주는 수법이다. 경찰 수사 결과, KT 대관 부서는 황 회장이 취임한 2014년부터 이후 4년간 총 26억8천만원 가량을 불법으로 현금화했다.
핵심은, KT 대관 부서가 불법 자금을 조성하는 데 있어 황창규 회장의 명시적 지시가 있었는지로 모아진다. KT 대관 부서와 황 회장의 주장이 엇갈리는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황 회장은 검·경 심문에서 “현금성 대외 활동비 사용을 양성화하라고 지시한 것이지, 상품권 깡을 승인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자신의 지시를 오해한 대관 부서가 독단적으로 판단하고 회장 몰래 위법한 비자금을 조성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반면, 2014년 당시 상품권 깡을 실행에 옮겼던 전모 부사장(대관 담당 부문장)은 “(황 회장에게)직접 보고는 없었으나 당시 황 회장 비서실장(구현모 현 KT 대표이사)과 박모 윤리경영실장과 협의했고 이 협의 과정을 황 회장이 보고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경 수사 자료를 보면 상당수 KT 임원은 전 모 부사장의 입장을 두둔했다. “회사의 자금을 사용하는 것인데 사전에 허락받지 않고 부사장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일”(최모 전무)라거나 “불법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 자기 이름으로 국회의원을 후원하는 게 가능하겠나”(조 모 상무)라는 등의 증언이 여러 차례 반복됐다.
반면, 전 모 부사장이 협의했다는 비서실장과 윤리경영실장은 “한 차례 협의한 사실은 있지만, (상품권 깡을 하자고) 결정을 내린 적은 없다. 알았다면 전 모 부사장을 징계하는 등 조처를 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명확한 증거가 없었다. 양측 주장이 엇갈렸다. 둘 중 한쪽은 명백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경찰은 황창규 회장을 구속해 압박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황 회장과 구현모 비서실장 등 4명에 대해 ‘증거인멸 우려’ 등의 이유를 들어 두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검찰은 모두 반려했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3부, 양석조 부장검사)는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구속 영장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전 모 부문장은 회장 지시를 오해하고, 독단적으로 회삿돈을 불법으로 빼돌려(횡령), 국회의원 후원 계좌에 입금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가 인정돼 지난 16일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반면, 검찰은 황창규 회장을 기소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검찰이 작성한 황창규 회장 ‘불기소 결정문’을 보면 2014년 전 모 부문장이 당시 황 회장의 핵심 측근들과 상품권 깡을 논의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① 핵심 측근들이 황 회장에게 보고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자료가 없고, ②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공식 문서에 구체적 지시 정황이 확인되지 않았으며, ③ 전 모 부사장도 직접적으로 불법 정치 후원을 보고하지 않았으므로 “피의자(황창규)가 상품권 깡을 통환 자금 조성을 인식하고, 승인 내지 묵인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2년 뒤, 더 대담해진 KT…“하지만 나는 몰랐다”는 황창규
KT의 불법 정치자금 후원은 2016년 더 대담해졌다.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던 그해, KT는 평소보다 2배 많은 비자금을 상품권 깡으로 확보했다. 이렇게 확보한 비자금 3억1천여만원은 여야 국회의원 83명의 후원 계좌에 꽂혔다.
범죄에 가담하는 고위 임원도 대폭 늘어났다. 당초 대관 담당 임원 몇몇이 자신의 이름으로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으나, 2016년에는 사장과 부사장 등 고위 임원 20여 명이 조직적으로 불법에 동원됐다.
조직적 동원의 시작은 2016년 4월, 황창규 회장의 지시였을 가능성이 있다. 2016년 4월, ‘14차 임원간담회’ 속기록에 따르면 황 회장은 “대관 담당만 대응하는 게 아니라, KT 내와 그룹사까지 확대해야 한다. 그룹사까지 확대해서 미션을 줘라. 그래야 대응이 된다”고 지시한다.
황 회장의 지시에 따라 KT의 정치권 대응이 확대된다. 국회의원과 KT 고위 임원, 그룹사 대표의 1대1 매칭이 시작됐다. 의원과 고향이 같거나, 출신 학교가 같거나, 같은 회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지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 작은 인연이라도 있다면 해당 국회의원의 ‘대응 파트너’로 매칭됐다.
A 의원과 매칭된 B 고위 임원이 대관 대응(국회의원과 미팅을 갖는 일 등)하면 황창규 회장에게 실적이 보고되고, 보고된 실적은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시스템이 신설됐다.
황 회장의 “미션을 주라”는 지시는 비공식적인 방향으로도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그 해, 불법 정치자금 후원 규모가 대폭 늘었다. 일부 대관 담당 임원들이 하던 후원은 KT 8개 부문 부문장(사장, 부사장급 고위 임원) 대부분이 동참했다.
불법 정치자금 실무는 전 모 대관담당 부문장 바통을 이어받은 맹 모 부문장이 맡았다. 맹 모 부문장은 상품권 깡을 통해 조성한 현금을 자신의 휘하에 있는 이 모 상무보에게 전달했다. 현금다발을 받은 이 모 상무보는 불법 정치자금을 후원할 고위 임원들에게 직접 전달했다.
수억원의 현금은 1천만원에서 1천500만원씩 나눠 담겨 임원들에게 전달됐다. 돈을 받은 임원들은 각각 배정된 국회의원 후원 계좌에 100~500만원으로 쪼개 입금했다. 정치자금법상 규정된 후원 한도를 넘지 않으려는 꼼수였다. 불법 후원에는 KT 임원 배우자까지 동원됐다.
2014년과 마찬가지로, 핵심은 2016년 대폭 확대된 불법 정치자금 후원에 황창규 회장의 지시 혹은 묵인이 있었는지로 모아진다.
전임 부문장과 마찬가지로, 후임 맹 부문장 역시 황창규 회장에게 불법 정치자금 후원을 보고했고, 승인받았다고 주장했다.
맹 부문장 주장은 더 구체적이었다. 2016년 3월, 자신이 직접 황 회장에게 불법 정치자금 후원 현황을 보고 했다고 밝혔다. KT는 6개월에 한 번, 회사 이름으로 시민단체와 정치인 등에 ‘기부’한 현황을 황 회장에게 보고하는데, 당시 보고 자료에 기록이 남아있다는 것이 맹 부문장의 주장이었다.
검·경 수사 과정에서 맹 부문장 주장을 뒷받침 할 보고자료가 확보됐다. A4 용지 2장으로 정리된 해당 문건은 ‘기부금 관련 참고 자료’였다. 문건에는 KT가 지역 복지단체나 시민사회단체 등 비영리단체에 기부한 내역이 나열돼 있다.
문건에서 주목할 부분은 끝부분에 있는 간단한 표였다. 기부, 협찬, 후원 등 형태에 따라 지난 2년간 집행한 예산 내역이 적혀 있다. 이중 ‘후원’ 부분 비고란에는 ‘정치 후원금’이라고 명시돼 있다. 맹 부문장은 “이 정치 후원금이 바로 불법 정치자금 후원 내역”이라고 주장했다.
황창규 회장은 전면 부인했다. 보고받은 기억이 전혀 없고, 때문에 불법 정치자금 후원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제의 보고 자리엔 맹 부문장과 함께 최모 실장이 동석했다. 참고 자료를 출력해 황 회장 앞에서 직접 읽었던 사람이 최모 실장이었다. 그는 검찰과 경찰 수사 과정에서 “황 회장은 보고서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수고했다’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검찰도 문제의 보고가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황 회장이 불법 정치자금 후원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보고 내용이 구체적인지는 않다고 봤다.
자료에 통상적인 기부와 협찬이 정치후원금과 혼재되어 있어 짧은 보고시간(약 10분) 동안 황 회장이 파악하기 힘들 수 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었다. 검찰은 ‘불기소 사유서’에서 불법 정치자금 후원이 “명확하게 보고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적었다.
당시 정황을 감안하면 검찰 판단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불법 정치자금 후원에 동원된 임원이 너무 많았다. 임원 중에는 맹 부문장보다 직급이 높은 임 모 사장도 포함돼 있었다.
경찰에 관련 사건을 처음 알린 제보자는 조사 과정에서 “맹 부문장은 부사장에 불과했다. 불법 정치자금 후원 사건을 독단적으로 일으켜 그 상급자까지 관여시킬 수는 없다. 결국, 사장급을 포함해 대다수 임원을 관여시킬 수 있는 사람은 황창규 회장밖에 없다. 최소한 황창규 회장의 지시나 묵인하에 이뤄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 본다”고 강조했다.
똑같은 결론이 나왔다. 2014년 전 모 부문장처럼, 2016년 맹 부문장도 ‘독단적 판단으로 회사 자금을 횡령해 불법 정치자금 후원을 했다’는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KT노동인권센터는 검찰의 황 회장 불기소 결정에 반발해 재정신청(검사가 고소나 고발 사건을 불기소하는 경우, 고소인 또는 고발인이 법원에 그 결정이 타당한지 판단을 받는 절차)을 진행 중이다.
노동인권센터 조태욱 집행위원장은 “검찰의 판단은 ‘황창규가 몰랐다고 했으니 몰랐던 거 아니겠는가?’라는 황당한 논리에 다름아니”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검찰의 불기소 결정을 뒤집기는 힘들어 보인다. 서울고법 형사30부(재판장 배광국)는 지난 5월, “검사의 불기소 처분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고, 불기소 처분이 부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자료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센터는 법원 판단에 불복해 재항고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한편, 불법 정치자금 사건을 주도한 대관 담당 주요 임원 4인은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받았고 항소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관 담당 임원들에게 돈을 받아 직접 입금한 고위 임원들은 검찰로부터 500~1000만원의 벌금형 약식 명령 처분을 받았지만 이에 불복하고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고위 임원들은 “대관 담당 임원들이 준 돈이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했고, 후원을 하는 행위가 불법인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린 황창규 전 회장은 KT 관례에 따라, 연 3억원 가량의 연봉을 받으며 상근자문역을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