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현 HJ중공업)의 마지막 해고 노동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36년 만에 영도조선소로 출근한다.
23일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에 따르면 금속노조와 HJ중공업이 이날 오전 부산 영도조선소에서 해고 노동자 김진숙의 이달 25일 명예복직과 퇴직에 합의했다. 1981년 한진중공업 전신인 대한조선공사 용접공으로 입사한 김 지도위원은 노조민주화 운동을 하다 1986년 7월 해고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986년 2월 노조 대의원으로 당선된 후 노조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유인물을 제작·배포했다는 이유로 세 차례에 걸쳐 부산 경찰국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했다”며 “사측은 이 기간 김 위원이 ‘무단 결근’을 했다는 이유로 그를 해고했다”고 지난해 2월 이례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부당한 해고였다는 사실은 인권위 성명 이전 이미 국가기구에 의해 밝혀졌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2009년 김 지도위원의 부당해고와 민주화운동 사실을 인정했다. 위원회는 회사에 복직을 권고했지만 회사는 이행을 거부했다. 2020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도 전체회의를 열어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을 권고하는 의견서를 냈지만 마찬가지였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은 복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인권위는 2월 성명에서 “김진숙의 복직은 단순히 개인의 명예회복을 넘어서는 인간 존엄성의 회복이자 우리 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이라고 했다. “노동자에게 해고는 단순히 경제적 관점에서 일자리를 잃는 고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개인과 그 가족을 포함한 사회구성원의 생존과 존엄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며 “그의 복직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인권과 생명을 존중하는지, 그 수준을 가늠하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해고를 겪은 노동자들도 그를 바라봤다. 두산중공업 해고자인 김창근 전 금속노조 위원장은 본지 기고에서 “김진숙의 복직은 개인의 명예만이 아니라 이 땅에 아직도 존재하는 무수한 해고 노동자가 반드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신호”라고 표현했다.
김 지도위원은 언제나 거리에서 복직투쟁을 하는 동료의 편에 섰다. 2011년 영도조선소 35미터 높이 크레인에 올랐고 한진중공업 해고자 복직합의를 이끈 뒤 309일 만에 내려왔다. 2019년 영남대의료원 해고자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의 227일 고공농성 때는 부산에서 대구까지 일주일 동안 ‘보도장정’을 했다.
만 60세 정년 나이가 되던 2020년 김 지도위원은 복직 투쟁은 본격화됐다. 암투병 중인 김 지도위원은 동료들과 함께 복직을 촉구하며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동료와 함께 걸었다.
수십년 동안 풀리지 않던 복직 논의는 지난해 말 동부건설 컨소시엄이 한진중공업을 인수한 뒤 급진전됐다. HJ중공업쪽은 주인이 바뀐 뒤 새출발하는 만큼 해묵은 갈등을 털고 노사가 함께 회사 재도약에 집중하자는 취지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금속노조는 “영원히 김진숙과 함께, 해고 없는 세상, 차별 없는 세상,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겠다”고 복직을 축하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행사는 25일 오전 HJ중공업 사내 단결의 광장에서 열린다.
“어떤 싸움이든 끝은 있으니 용기 잃지 마세요”
금속노조와 HJ중공업이 23일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명예복직에 전격 합의했다. 이 합의로 이달 25일 김 지도위원은 36년 만에 영도조선소로 출근한다. <매일노동뉴스>는 이날 오후 김진숙 지도위원의 소감을 듣기 위해 전화 인터뷰를 했다.
– 36년 만에 복직 축하드립니다. 소감이 궁금합니다.
“실감은 안 나는데(웃음) 여기저기서 축하를 해 주시니 기쁘죠. 막상 복직이 이뤄지니 멍하기도 하고 그래요.”
– 현재 몸 상태는 어떠신가요.
“괜찮지는 않습니다. 지난해에도 연달아서 수술을 하고 해서…. 건강이 별로 좋지는 않지만, 가장 큰 숙제를 풀었으니 이제 이 문제도 풀어야죠.(웃음)”
– 지난해 복직을 요구하며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400킬로미터를 걸었어요. 함께 걸었던 동료들에게 나누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그분들의 힘이 컸죠. 누군가가 하여튼 계속 관심을 가지고, 그 문제에 관해서 놓지 않고 있던 건 저한테도 힘이었어요. 그런 힘들이 여기까지 오게 한 것 같아요.(웃음)”
– 아직도 거리에서 싸우는 해고 노동자들이 많이 있어요. 그들에게 해 줄 말이 있나요.
“제가 36년 만에 복직을 해서….(웃음) 면목이 없기는 해요. 열심히 싸워라, 끝까지 투쟁하라, 이런 말을 하면은 36년이 걸리라는 말처럼 들릴 것 같아서요. 그래도 어떤 싸움이든 끝은 있으니까 용기를 잃지 마시고 잘 걸어가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우리 사회에는 아픔이 있잖아요. 군사독재 시절에 해고된 노동자들요. 저는 뭐 아직 공장도 남아 있고 조합원들도 있고 조합원들이 또 저를 기억하고 있고 하니 오늘같이 복직이라는 결실이 맺어질 수 있었지만 동일방직·원풍모방·YH무역·청계피복노조, 그리고 또 부산에 수백 개 신발공장·고무공장 노동자들이 있는데 그 노동자들은 더 어렵게 싸우고 힘들게 싸웠지만 돌아갈 공장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분들이, 최소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은 분들만이라도 명예복직을 할 수 있는 법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 앞으로 활동 계획이 있나요.
“계획이요? 지금은 건강문제 때문에 병원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벅차요. 병원 치료에 집중하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