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MB 국정원, KT노조 민주노총 탈퇴 ‘깨알 공작’

MB 국정원, KT노조 민주노총 탈퇴 ‘깨알 공작’

등록 :2021-07-16 20:45수정 :2021-07-16 22:23

신다은 기자

경영진이 다단계 판매식 설득”
“지지 조합원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식 격려”

해고노동자, 국정원 내부문건 공개
회사 손잡고 탈퇴 주도 정황 담겨
KT “민노총 탈퇴 관여 안해” 해명

서울 강남구 내곡동의 국가정보원 전경.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서울 강남구 내곡동의 국가정보원 전경.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민주노총 탈퇴를) 경영진이 다단계 판매 식으로 직원들에게 설득해야 함. 지지하는 글을 쓴 조합원에겐 ‘라이언 일병 구하기’ 식으로 격려 이메일을 무차별 발송 요망.”

케이티 해고노동자 조태욱(60)씨가 지난 5월 국가정보원에 정보공개 청구해 최근 받아낸 내부 문건에 담긴 내용이다. 16일 <한겨레>가 이 문건을 살펴보니, 국정원은 케이티(KT)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 경과를 주기적으로 케이티 회사 쪽으로부터 보고 받았고 관련 조언도 회사 쪽에 적극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9년 통신기업 케이티 노동조합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에서 탈퇴하게끔 만들기 위해 케이티 회사 쪽에 이른바 ‘공작’을 하도록 구체적인 조언을 했다는 것이다. 앞서 당시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이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케이티를 비롯한 21개 노동조합에 관여해 민주노총 탈퇴를 종용했던 사실은(관련기사▶[단독] MB 국정원, 21개 노조 상대 민주노총 탈퇴 관여) 이미 드러났던 터다.
국정원이 이런 움직임을 보인 건 “케이티 노조가 민주노총 대의원 가운데 5%를 차지하고 조합원 수 기준 국내 3위여서 탈퇴 시 민주노총 세력 약화에 크게 기여”(‘케이티 노조 민노총 탈퇴 추진 실태 및 가속화 방안’·2009년 4월 작성)한다고 보아서다. 국정원은 “산하조직의 민노총 탈퇴 촉발 등 긍정적 파장이 기대되므로 치열한 이면관리가 필요하다”고 썼다. 이는 케이티에프와 회사를 통합하면서 대규모 인력·사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려던 케이티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졌다.
국정원의 지시는 민주노총 탈퇴 관련 조합원 투표를 앞둔 2009년 7월 본격화한다. 당시 국정원은 “7월10일 총투표 공고일부터 7월17일 총투표까지 매일 케이티 노조 및 케이티 노사협력팀과 비상연락망을 유지”(‘케이티 노조의 민노총 탈퇴 추진 관련 활동 내용’)하고 있었다.
국정원은 총투표 전날인 7월16일 ‘케이티노조 민노총 탈퇴 관련 경영진 대상 지원 당부’라는 내부 문건을 만들어 “케이티 경영진이 보안 유지 하에 다단계 판매 식으로 직원들을 설득하는 게 필요”하고 “사내 홈페이지 게시판에 민주노총 탈퇴 지지 성명을 올린 조합원에게 ‘라이언 일병 구하기’ 식으로 격려 이메일을 무차별적으로 발송토록 요망”한다고 적었다. 조합원의 지지 성명서 역시 케이티와 국정원이 미리 기획한 것이었다. 국정원은 곧이어 민주노총 탈퇴를 지지한 조합원에게 격려 전화가 56건, 탈퇴 지지 게시글이 110건 지원됐다는 케이티의 보고를 받았고, 이튿날 케이티 노조는 조합원 총투표를 거쳐 민주노총에서 탈퇴했다.
국정원이 지난 2009년 7월 작성한 ‘KT 노조 민노총 탈퇴 관련 경영진 대상 지원 당부’에 적힌 내용. 문건 갈무리
국정원이 지난 2009년 7월 작성한 ‘KT 노조 민노총 탈퇴 관련 경영진 대상 지원 당부’에 적힌 내용. 문건 갈무리

케이티와 국정원은 내친 김에 케이티 소속 계열사의 민주노총 탈퇴도 주도했다. 국정원은 2009년 8월 ‘케이티노조 민노총 탈퇴에 따른 케이티계열사 노조 탈퇴 여건 점검 계획’이라는 문건을 작성해 “케이티그룹 쪽이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민노총 소속 계열사 탈퇴를 위한 물밑 작업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이라며 “각 사업장별로 조합원 분위기를 파악해 탈퇴 추진 여건이 양호한 케이티 사업장을 선정하고 조합원 동요가 심한 사업장 실태를 집중 파악”해야 한다고 썼다.

국정원은 자신들이 케이티에 개입한 정황을 감추려 노력했다. 국정원은 내부 문건에 “노조로 하여금 기자회견을 열어 민노총 탈퇴가 자발적이었음을 강조하고 정부 개입설 등을 제기하면 사법 처리 가능성을 강력히 권고하며, 메이저 언론과 협조해 민노총의 비리·폐해를 부각하는 시리즈 기사를 게재해 반민노총 분위기 확산을 유도”(‘케이티노조 민노총 탈퇴 추진 실태 및 가속화 방안’)하라고 적었다. 이 문건의 배포 대상은 대통령 실장과 사회정책수석, 기획관리비서관이라고 적혀 있었다.
조씨는 자신의 해고도 국정원의 노조 와해와 관련 있었다고 설명했다. 국정원 내부 문건에 “케이티 사측으로 하여금 민노총 탈퇴를 비난하는 민동회(민주동지회) 집행부 핵심인사를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도록 유도했다”는 문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보고자 이름이 지워져 있었지만 국정원 직원일 가능성이 컸다. 당시 조씨는 자신이 속한 케이티 조합원 조직 ‘민주동지회’ 구성원들과 함께 민주노총 탈퇴 투표 나흘 전 기자회견을 열고 ‘이석채 케이티 회장이 민주노총 탈퇴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가 케이티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고 다른 지역으로 전보당한 끝에 해고당했다. 조씨는 “국정원의 감찰 활동에 있어 통신 기업 협조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케이티에 대한 국정원의 개입이 특히 심했다”며 “당시에도 국정원이 개입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이를 문서로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케이티는 “(회사는) 케이티 노조의 민노총 탈퇴에 관여한 바가 없다”고 해명했다. 국정원은 “정보공개 청구처리 결과에 따라 해당 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나 문서 기재사항 이외의 의미나 해석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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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1003896.html#csidx0fb213642c8dbaea8e8a3c64c6fc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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