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평택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서 청년노동자 고 이선호님의 장례식이 시민사회장으로 거행됐다. 고인이 숨진 지 59일 만이었다.
아버지는 참았던 울음을 쏟아냈다. 컨테이너 날개에 깔린 아들을 보고 혼절했던 아버지. 그 황망한 죽음 앞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어떠할까? 구의역 김군과 고 김용균의 죽음이 겹쳐졌다. 아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동방의 책임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며 두 달 동안 아버지는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해 싸웠다. 국가보안시설 혹은 국가중요시설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져 있던 항만에서의 위험한 노동 실태와 불법인력공급의 일단을 드러냈고 마침내 합의를 이끌어냈다. 아버지는 유족인사에서 “제 아이는 비록 23년 살다 갔지만 이 사회와 세상에 많은 숙제를 주고 떠난 것 같아 대견하다는 생각도 든다”며 “마냥 슬퍼하는 것보다 아이의 죽음이 잘못된 법령을 다시 고치는 초석이 됐다는 자부심으로 다시 살아가려 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합의가 갖는 의미,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처럼 선호님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첫째, 고 이선호님의 실질적인 사용자인 ㈜동방은 합의 과정에서 집요하게 법인과 사고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상 면책 조항을 포함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대책위와 유족은 합의의 범위를 민사상 합의로 제한했다. 구의역 김군과 고 김용균님 사망사고에 이어 합의내용에 형사면책 조항을 포함시키지 않는 사례를 만들었다. 그동안 사용자들은 고인을 보내야 하는 유족들의 궁박한 처지를 이용해 합의서에 부동문자처럼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다’는 면책조항을 포함시키고, 이를 근거로 형사책임을 회피하거나 가벼운 처벌을 받아 내는 관례를 만들어 왔다.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인과 경영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그럼에도 합의서에 포함된 형사면책 조항은 안전사고에 대한 엄정한 법적 책임을 묻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완전하진 않지만 이번 사안에서도 형사상 면책조항을 제외하는 합의를 함으로써 고 이선호님 유족들은 형사재판과 사후처리 과정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형사상 면책조항이란 것이 으레 합의서에 담겨야 하는 문구가 아님을 우리는 알아 둬야 한다. 금전배상은 속성상 민사상 책임에 대한 합의일 뿐이기 때문이다.
둘째, 고 이선호님의 죽음은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항만하역작업 고용실태를 세상에 드러냈다. 이선호님은 불법파견이 아닌 중간착취의 희생자였다. 그는 휴학계를 내고 2019년 12월부터 사고를 당한 날까지 아버지가 일용직으로 일하던 평택항에서 ‘우리인력’이라는 인력소개업체(직업소개소)를 통해 항만하역업체인 ‘㈜동방’에 투입돼 정해진 일당을 받으며 일했다. 누구와도 고용계약을 체결한 적이 없었으며 누구의 피고용인인지 자체도 모호했다. 하루 정해진 일당은 11만5천원이고, 그 중 이선호님을 공급하고 있는 인력소개업체는 매일매일 1만2천원씩 알선수수료 명목으로, 그리고 5천원은 식사대 명목으로 떼어갔다. 8년 전부터 평택항에서 일용직으로 일해 온 이선호님 아버지 이재훈씨는 4년여 전 일당 9만5천원 중 매일 알선수수료 2만원과 식사대 5천원을 떼인 적도 있다. 잔업을 해 하루 일당이 높아지면 그에 비례해 추가로 수수료를 떼였다고 한다.
㈜동방과 우리인력이 체결한 인력공급계약서를 보면 “계약의 목적은 동방에 투입할 인력공급에 대한 제반사항을 규정함”이라고 적시하고, “동방은 자신의 용역 수행에 필요한 인력 급별 인원을 우리인력에 요청”하고 있다. 또 “우리인력은 동방의 인력 요청에 따라 투입인력의 명단을 동방에게 제출”하도록 돼 있다. 전형적인 인력공급계약, 즉 근로자공급계약이다. 근로자공급계약은 쉽게 말하면 사람장사다. 도급계약이란 당사자 일방이 일(업무)을 완성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도급인)은 그 일(업무)의 결과에 대해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정하는 계약이다. 반면에 근로자공급계약은 일(업무)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인력을 공급하고 공급한 인원에 대해 수수료를 받기로 하는 계약이다. 근대법은 이러한 사람장사를 금지하고 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노동력을 상품화해 노동력을 팔고 사는 것을 업으로 해 이윤을 취하는 인신매매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제3자가 취업에 개입해 노동자가 받아야 할 임금의 일부를 소개료(수수료)라는 명목으로 이익을 취하는 것을 ‘중간착취’라고 하는데 근로기준법과 직업안정법에서는 엄히 금지하고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근로자공급사업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국내근로자공급사업의 경우에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동조합만이 고용노동부 장관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노조가 아닌 민간인이 국내근로자공급사업을 하고 있다면 이는 ‘100% 불법근로자공급’이다.
평택항에서 ㈜동방에 인력을 공급하는 인력소개업체로는 우리인력 이외에도 서부두인력과 서평택인력 등이 더 존재한다. 이를 유추해 보면. 항만에서 일하고 있는 일용직 노동자들 중 상당수가 민간 인력소개업체에 의해 불법으로 공급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5대 항만에서 인력공급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 일용직 노동자 전체에 대해 전수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그럼에도 노동부는 이달 7일 ㈜동방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중간발표에서 우리인력과 ㈜동방 사이에 불법파견 가능성이 있어 이들만을 대상으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 혐의로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동부의 발표는 고 이선호님의 죽음으로 드러난 불법인력공급에 대한 조사의지가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노동부는 생뚱맞게도 ‘불법파견’ 가능성으로 실체를 호도하거나 수사의 범위를 축소할 것이 아니라, 5대 항만 전체에 대한 불법인력공급 및 중간착취 문제로 조사의 방향과 범위를 전환해야 한다. 그것이 고 이선호님이 우리에게 해결과제로 남긴 숙제 중의 하나를 제대로 푸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