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예산 받아 출범 작업 지원
법원 “임태희 불기소 적정성 의심”
< 한겨레21>이 12일 확보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등의 국고손실 혐의 재판기록을 보면, 2011년 11월 제3노총인 ‘국민노총’ 출범에 이명박 정부 청와대와 국정원, 고용노동부가 초기 단계부터 깊숙이 개입된 것으로 확인된다. 2018년 검찰은 임태희 당시 대통령실장은 빼놓고 이채필 당시 고용노동부 차관 등만 기소했으나, 지난 2월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례적으로 임 전 실장의 불기소 처분에 의문을 제기했다.
국정원은 민주노총 반대 성향을 띠었던 서울지하철노조, 케이티(KT)노조 등이 2010년 3월에 만든 ‘새희망노동연대’에 주목하고 이 단체를 “강성 노동계 분열 촉매제”, “민주노총 견제세력으로 육성”하겠다고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후 새희망노동연대가 2011년 3월부터 제3노총 출범 움직임을 본격화하자 고용부와 국정원은 이를 돕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
2011년 3월 이채필 당시 고용부 차관은 국정원의 고용부 담당 ㅂ정보관에게 “최근 대통령께서 민주노총을 뛰어넘는 제3노총 출범을 지시한 바 있는데, 고용부 예산은 철저히 감사를 받아 지원이 어려우니 국정원에서 3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한다. ㅂ정보관은 검찰에서 “(내가) 어렵다고 말했지만, ‘통치자금도 국정원에서 주지 않느냐’고 이 전 차관이 말했다”고 진술했다. 이 전 차관은 국정원의 태도가 시원치 않자, 노동부 장관으로 함께 일했던 임 전 실장에게도 같은 취지의 부탁을 한다. 이에 따라 임 전 실장이 민병환 국정원 2차장에게 이 전 차관의 요청을 전달한 것으로 재판부는 판단했다. 임 전 실장은 검찰에서 이를 극구 부인해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 됐으나 재판부는 “민 차장이 임 실장으로부터 제3노총 설립에 관련된 국정원 예산에 관한 요청을 받았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으므로, 검사의 (임태희 실장의) 불기소 처분이 적정했는지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제기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국정원은 2011년 4월부터 매달 1570만원씩 케이티노조 위원장 출신인 이동걸 당시 고용부 정책보좌관에게 10번에 걸쳐 지급했다. 이 전 보좌관은 애초 국정원의 지원 목적이었던 국민노총 사무실 마련에 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무실 책상 서랍에 현금을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썼다. 노동계 인사들에게 술과 밥을 샀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재판부는 “국가정보원이 제3노총 설립에 관여한 행위는 종국적으로는 헌법상 보장된 민주노총과 그에 소속한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침해할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개별 노조의 자주적·자율적 의사결정에 터잡아 진행돼야 하는 제3노총의 설립 과정에 국가기관이 직접 관여한 것으로서 위법성이 중대하다”며 다른 혐의로도 기소된 원세훈 전 원장에게는 징역 7년, 민병환 전 2차장은 징역 3년, 이 혐의로만 기소된 이채필 전 장관은 징역 1년2개월, 이동걸 전 보좌관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