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이명박 정부 당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기존 노동조합을 와해하고 ‘제3노조’를 만들기 위해 국가정보원 예산을 지원한 혐의로 기소된 국정원 관계자 등이 재판에서 엇갈린 진술을 내놨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관련 혐의를 모두 부인했지만, 함께 기소된 박원동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은 지휘부인 원 전 원장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2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이순형 부장판사)는 국고에 손실을 끼친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된 원 전 원장 등에 대한 첫 공판을 진행했다. 민병환 전 국정원 2차장, 박 전 국장과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동걸 전 고용노동부 정책보좌관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원 전 원장은 변호인을 통해 “검찰이 언급하고 있는 노조 설립과 관련해 지시하지도 않았고 공모하지도 않았다”며 “회계 관련점도 없어 공소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혐의를 부인하는 원 전 원장과 달리 당시 국정원 기조와 보고체계 등을 들어 원 전 원장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박 전 국장은 “매월 1570만원씩 (제3노조와 관련해) 지출한 것은 인정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 저는 담당 국장으로서 불가하다는 의견을 냈으나, 차장이 지시해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것”이라며 “이 부분은 회계관계 책임 관련 법률 8조에 의해 (범죄사실이) 성립 안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공소 남용”이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당시 사회단체 동향을 수집하고 정보보고를 하는 일이 잦았다며 원 전 국장의 방침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좌파 척결’로 꼽았다.
박 전 국장은 “당시 지휘부의 기류, 시대의 흐름상 민주노총, 한국노총, 전교조 등을 국정원에서 주시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서도 원 전 국장의 지시로 ‘제3노조’ 설립 지원이 추진됐는지 여부는 “나중에 검찰 조사를 통해 알았다”고 진술했다.
박 전 국장은 지난 2011년 당시 고용노동부 차관이었던 이채필 전 장관이 새로 출범되는 제3노조 설립지원과 관련해 서울지역 사무실 임차료, 인건비 등을 명목으로 3억원을 먼저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이 전 차관이 고용노동부는 국회의 통과를 받아 써서 예산이 힘들지만 국정원은 가능하지 않느냐”고 접근했다며 “한번에 약 1570만원씩 모두 열 차례에 걸쳐 이동걸 보좌관에게 현금으로 (자금을) 지급했고 (이 보좌관의) 자필 영수증도 받았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추후 지출된 1억원이 넘는 특별활동비(특활비)에 대해서는 “그 정도 액수라면 국정원장을 포함한 지휘부 라인도 보고받았을 것”이라며 “저희 예산은 모든 게 특활비로 돼있고 구체적으로 어떤 항목에서 (그 금액이) 나오는지는 알 필요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전 보좌관 역시 “(고용노동부) 정책보좌관으로서 매달 1570만원을 수령한 사실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다만 “다른 피고인들은 공소제기 전까지 저와 알지도 못하는 관계였다”며 고용노동부와 국정원 사이 조직적 공모에 대해서는 부정했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장으로 재임하던 지난 2011년 4월부터 2012년 3월까지 정부 정책에 비판적이었던 민주노총 등의 활동을 방해하고 제3노조를 설립하기 위해 국정원 특활비 1억 7700여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