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
1. ‘그런 일이 있었구나’ 했다. 지난달 말일, 그러니까 7월31일, 고용노동부 장관이 행정절차법에 따라 입법예고를 공고했다. ‘그런 일’을 여름휴가를 다녀와 지난주 초에 알았다. 지난 8일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윤애림의 칼럼을 읽고서였다. 뭐, 입법예고이니 아직 정부 입법안으로 국회에 제출한 것도 아니라서 벌써부터 시시비비하는 것이 조금 성급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긴 했다. 하지만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정부가 마련한 법률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거였다. 입법예고 이전에 정부가 그 법률개정안을 마련할 때부터 살폈어도 감히 빠른 것이었다고 말할 수 없는, 그야말로 이 나라 노동자의 자유,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해 중요한 입법안이었다.
2.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국가 위상에 걸맞은 노동기본권 보장을 이루겠다”고 공약했다. 구체적으로 노동자의 노조 조직 및 활동에 관한 결사의 자유 협약(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 협약(98호), 강제노동 및 강제노동 철폐 협약(29호·105호) 등 노동자가 단결해서 활동할 자유,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고, 그에 따른 국내법을 개정하겠다고 공약했다(19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정책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 87면). 그동안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이에 관한 사회적 대화를 진행해 왔다. 즉 경사노위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등의 개정사항을 논의해 왔다. 그 논의는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 수준으로 합의에 이른 것이 아니니 장차 정부안으로 될 가능성이 높은 공익위원 의견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 칼럼난에서도 수차례 말했던 바와 같이 이 나라에서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는 노와 사가 주도하는 대화로 합의를 이뤄 내는 것이 아니고, 공익위원을 통한 정부 의지가 노사정 합의 내용으로 관철되는 구조이니, 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 입법예고한 정부 개정안도 지난해 11월과 올해 4월 경사노위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 공익위원 의견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서, 그 내용은 예상이 되는 입법예고안이었다. 이는 “정부는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을 위해 2018년 7월부터 10개월여간 노사정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에서 법 개정 방안을 논의해 왔으나 (…)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고 (…) 지난 4월15일 동 위원회 공익위원들이 법 개정 과제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정부의 조속한 조치를 권고했기에 정부는 공익위원 권고안을 토대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중 관련 조항의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힌 입법예고안의 개정이유를 통해서도 넉넉히 확인되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 나라에서는 경사노위 등 노사정기구의 사회적 대화란 정부, 즉 권력의 의지를 노사정 합의로 포장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괜히 민주노총 참여를 두고서 거창하게 논란을 벌일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입법예고한 것이니 이제 그 개정안을 들여다보자.
3. 정부가 입법예고한 법률개정안은 노조법뿐만 아니라 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까지 포함하고 있다. 공무원노조법 개정안은 6급 이하로 제한했던 가입범위에서 직급기준을 삭제하고, 소방공무원을 가입대상에 포함하며, 퇴직공무원도 노조 규약으로 정하면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교원노조법의 경우 고등교육법상 교원은 개별 학교 단위로도 노조를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유아교육법상 교원 가입을 명확히 규정하고, 고등교육법상 강사는 노조법을 적용하며, 퇴직교원도 노조 규약이 정하면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교원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를 규정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동안 논란이 됐던 해직 공무원 및 교원의 노조 가입이 규약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인정될 수 있게 하는 등 공무원·교원의 노조할 자유를 확대·보장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고 볼 수 있겠다.
노조법의 경우 2조4호라목 단서를 삭제해 실업자 및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들의 조합 활동을 제한했다. 즉 이들의 경우는 사용자의 효율적인 사업 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업(장)에서 노조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사업장 출입 및 시설 사용에 관한 노사 간 합의된 절차 또는 사업장 규칙 등을 준수해야 하며, 사용자는 합리적 이유가 있으면 사업장 출입 등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근로시간면제 한도,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및 쟁의행위 찬반투표 등 조합원수에서 제외하도록 했다(5조2항 내지 5항 신설). 그리고 기업별노조에서 대의원 및 임원은 “그 사업(장)에 종사하는 조합원 중에서 선출하도록” 해서 실업자 및 해고자의 대의원 및 임원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17조2항 단서, 23조1항). 이렇게 되면 실업자 및 해고자는 조합원 지위만 인정받는 데 그치고 적극적으로 노조활동을 하기 어렵다. 심지어는 사업장 출입마저도 합리적 이유를 내세워 사용자가 허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니 사업장 내에서 조합 활동이 이뤄지는 기업별노조에서 제대로 된 노조활동을 하기 어렵게 하겠다는 취지로 마련한 것임이 분명하다.
ILO는 이 나라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제도에 관해 국가가 입법할 것이 아니라며 결사의 자유에 부합하도록 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해 왔던 것이니, 문재인 정부는 ILO 결사의 자유 등 핵심협약의 비준을 위해 이번에 입법예고한 노조법 개정안에서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조항을 삭제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근로시간면제제도는 그대로 유지했다. 현행 노조법은 노조전임자의 급여지급을 금지하면서 그 예외로서 근로시간면제제도를 두고 노조전임자가 임금 손실 없이 일정한 노조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여기서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조항만 삭제한다고 하면 어찌 되는가. 그저 지금처럼 근로시간면제제도를 통해 노조전임자가 급여지급을 받고 노조활동을 하게 되는 것인데, 이건 뭐 ‘눈 가리고 아웅’이 아니면 이 나라 노동자, 노동운동을 ‘눈뜬 장님’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노조법상 근로시간면제제도는 노조전임자의 급여지급 수준을 어느 정도로 보장할 것인지 정한 가이드라인이 아니다. 그야말로 노사가 교섭해서 정한 급여지급 협약도 그 한도를 초과해서는 무효로 하는 강행법제도인 것이다. 그럼에도 마치 가이드라인인 것처럼 근로시간면제제도를 유지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이니 정말 뻔뻔하다. 그리고 단체협약 유효기간 상한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했다(32조). 유효기간 상한을 연장한 것을 두고서 특별히 노동자에게 불이익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나라 노조들이 체결한 단체협약 수준이 높지 않은 현실에서 그 유효기간의 상한을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한다는 것은 자칫 그 단체협약을 개정해야 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행사를 제한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고 말하겠다. 그 밖에 직장점거와 관련해 “생산 기타 주요업무에 관련되는 시설을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는 형태로” 이뤄지는 쟁의행위를 금지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42조). 현행 노조법은 “생산 기타 주요업무에 관련되는 시설”을 점거하는 형태로 이뤄지는 쟁의행위를 금지하는 것과 비교해서 보면 ‘전부 또는 일부’를 추가한 것이다. 이것이 현재 정당한 쟁의행위 형태로 인정되는, 부분적·병존적인 직장점거를 금지하고자 하는 취지로 입법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어째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ILO 핵심협약의 비준을 위해 이번에 입법예고한 개정안이 포함돼야 한다는 것인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4.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문재인 정부가 입법예고한 개정안을 읽어봤다. 결사의 자유 등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기 위한 노조법 등의 개정안이니 당연히 노동자의 자유,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내용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위와 같이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최소한으로 법 개정을 하겠다는 권력의 의지를 읽게 된다. 그동안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경사노위 등에서 논의하고, 각종 학술토론회 등에서 토론한 것을 접할 때면, 거기서 노사정의 대표가 한 논의도, 학자들이 했던 토론도 도대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사의 자유 등 ILO 핵심협약은 노동자가 단결해서 교섭하고 파업 등 행동할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고, 그러한 기본적인 행위는 국가가 불법·범죄로 규제하지 않고 노동자의 자유로 인정해야 한다. 아무리 노조법 위반의 불법파업이라도 단순히 노무제공 거부인 파업은 국가가 범죄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명백히 하는 것에서 출발해 노조법 전면적 개폐로 나아가야 한다.
입법예고안에 대해 사실 이렇게까지 써야 하는지 나는 고민했다. 어찌 되든지,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기만 하면, 이에 반하는 노조법 등 국내법을 개폐돼야 하는 것일 테니 괜히 긁어 부스럼을 내는 것은 아닐까, 나는 정말로 진지했다. 그리고 이렇게 이 칼럼을 마무리하면서도 일단 공약한 대로 ILO 핵심협약 비준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랄 만큼 진지하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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