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요 통신국사 명단 담긴 케이티 내부 문서 입수
자체 분류 중요국사는 40곳, 정부 신고는 29곳만
강남권·정부과천청사 관할 양재국사 지난달에야 C등급 신고
강남권·정부과천청사 관할 양재국사 지난달에야 C등급 신고
지난해 11월24일 낮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에 있는 케이티(KT) 아현국사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케이티(KT)가 자체 분류한 중요통신시설과 정부에 신고한 시설 목록이 큰 차이가 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 기간통신사업자인 케이티가 정부에 중요통신시설을 허위로 신고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한겨레>는 8일 케이티 네트워크 부문이 지난해 6월 작성한 ‘중요국사 전원시설 특별점검/정비 추진계획’(중요국사 점검계획) 문건을 입수했다. 이 문건에는 케이티가 전국 7개 무선교환국과 33개 유선집중국사 등 40곳의 전원시설을 점검하는 계획이 담겨 있다. 중요국사에 전원 문제가 생겨 통신실 온도가 상승하거나 차단기 불량으로 안정적인 전원 공급이 되지 않는 사고를 막기 위한 자체 점검계획이다.
‘중요국사 점검계획’ 문건을 보면, 무선교환국 7곳은 지난해 6월19일부터 7월6일까지, 대형 중요국사는 같은 해 7월10일부터 30일까지 집중 점검 및 정비를 한다는 일정이 담겨 있다. 또 무선교환국은 관제/지역본부 마스터(Master), 프리마스터(Pre-Master)급 (기술자) 6명이, 대형 중요국사는 지역본부 마스터 및 프리마스터급 3명과 기술/운용팀 2명이 합동 점검하는 등 강도 높은 점검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케이티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신고한 29개(A~C등급) 중요통신시설 리스트에 이처럼 중요하게 관리된 총 40개의 중요국사 가운데 21개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먹구구식 신고가 이뤄진 것으로 의심된다.과기정통부는 통신사업자의 신고에 따라 중요통신시설을 A~D등급으로 나눠 관리한다. A등급은 수도권 등 넓은 권역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중요한 시설이며 D등급은 단일 시·군·구에 영향을 끼치는 시설을 의미한다. A~C등급은 2년 주기로 정부의 점검을 받지만, D등급은 사업주가 자체 관리한다. 지난해 불이 나 서울과 경기 일대 통신 대란을 일으킨 아현국사 역시 D등급으로 분류돼 정부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중요국사 점검계획’을 보면 혜화, 구로, 용인, 탄방, 우산, 효목, 송정 등 무선교환국 7곳은 케이티가 과기정통부에 신고한 A~C등급 중요통신시설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유선집중국사 33개 중 양재, 여의도, 행당, 일산, 수원, 강서 등 21개는 과기정통부에 신고한 A~C등급 중요통신시설에서 빠져 있다.특히 주목되는 곳은 양재다. 양재는 서울 서초구와 강남구 및 동작구 일부와 경기 과천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국사다. 이곳에 문제가 생기면 강남 일대에 통신대란이 일어나게 된다. 과기정통부 기준으로 봐도 3개 시·군·구 이상을 관할하는 최소 C등급 이상 국사다. 이처럼 중요한 국사지만 케이티는 아현국사 화재 이전까지는 양재국사를 과기정통부에 중요통신시설로 신고하지 않고 있다가, 화재 발생 이후인 지난달이 되어서야 양재국사를 C등급으로 분류해 뒤늦게 신고했다.
케이티에서 네트워크 부문을 담당했던 전직 임원 ㄱ씨는 <한겨레>에 “케이티가 제대로 된 기준 없이 국사 등급 신고를 했다. 점검받기 편한 시설은 A~C등급으로 과기정통부에 신고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D등급으로 신고해 점검을 받지 않으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ㄱ씨는 “특히 문제가 되는 곳은 양재다. 양재국사는 강남권 전역과 과천을 커버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주요 기업들의 통신이 마비되는 것은 물론 정부과천청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케이티가 비즈니스 센터가 몰려 있는 강남권을 점검의 사각지대로 만든 셈이다. 양재국사를 최근까지 C등급 이상으로 신고하지 않은 것 자체가 과기정통부에 신고한 내용이 모두 허위라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네트워크 부문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또 다른 케이티 관계자 역시 “양재국사는 영동·신사 국사 등과 통합이 되면서 규모가 커졌다. 양재국사에 통합된 영동국사 등이 대형 국사였기 때문에 양재국사는 자연스럽게 케이티에서 관리하는 가장 중요한 국사가 됐다. 이 통합이 마무리된 것이 아무리 늦어도 2016년 상반기였는데, 최근에야 C등급으로 신고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케이티가 정부의 점검을 받기 싫어 일부러 신고에서 누락했다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중요통신시설 등급은 통신사가 스스로 정해 신고한 것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이 때문에 케이티 등 통신사가 허위신고를 해도 과기정통부에서 적발할 뾰족한 방법이 없는 구조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과기정통부가 중요통신시설 지정과 관련해서 통신사에서 받아왔던 자료는 위치와 명칭, 등급 정도였다. 구체적인 회선이나 설비 등에 대해서는 파악하지 못해왔다. 다만 최근 중요통신시설 지정 기준을 개선하기 위해 현장에 나가 점검을 하고 있고 회선 수 등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케이티가 과기정통부 신고 내용과 별도로 중요국사를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답변했다.통신국사 등급 엉터리 신고 의혹에 대해 케이티 쪽은 “해당 문건에 나온 중요통신국사는 케이티가 임의로 정한 것이다. 올해 이곳을 점검하겠다는 취지일 뿐 이 국사들만 중요하다고 꼽은 것은 아니다. 케이티가 점검하는 중요통신국사는 매년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네트워크 부문에서 오래 일했던 한 전직 케이티 관계자는 “국사 통합 등 특별한 사정 변경이 없으면 케이티가 관리하는 중요국사가 달라질 이유가 없다. 중요국사를 임의로 선정해 매년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환봉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