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의 직원퇴출프로그램 [ 2013.01.28 ]

[여성소비자신문=고승주기자] “피고 KT는 고의적으로 사회통념이나 사회상규 상 용인될 수 없는 인사권과 징계권을 남용해 원고에게 손해를 끼쳤기에 피고는 이러한 불법행위에 대해 정신적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지난 1월 8일 청주지법 제1민사부(부장판사 이영욱)는 한모(53·여)씨가 KT와 이석채 회장을 대상으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청주지법은 KT가 불법적인 수단으로 직무스트레스를 유발해 직원을 강제 퇴출했다고 보고 정신적 손해배상을 할 것을 판결내렸다. 이번 판결은 직원에 대한 회사 측의 조직적인 불법행위를 인정한 첫 판결로 향후 KT의 직원가해 실태에 대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KT, 외국인 투자자 유치위해 인건비 줄여 고배당으로 퍼줘
법원 "불법적인 직무 징계로 인해 중증 정신질환…손해배상 하라"

“한**씨, 당신이 뭘 더 잘 하겠어.” KT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냈다가 항소심서 승소한 한 씨는 아직도 KT가 자신에게 한 행위를 생각하면 아직도 무서워서 잠이 오지 않는다고 전한다.

한 씨는 KT가 민영화되기 전의 회사였던 한국통신에서 20년간 114 전화번호 안내업무를 맡고 있었다. 2002년 한국통신에서 사기업으로 변한 KT는 조직내 각 부문을 떼어 계열사를 만드는 분사 작업을 했다. 6만3000여명에 달하는 비대한 조직을 축소하기 위해서였다. 

KT는 114 직원들에게 전화안내 업무를 계속하고 싶으면 분사하는 계열사 케이티스(KTis)로 가야한다고 지시했다. KT에 그대로 남게 되면 다른 일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IMF 때 대량의 정리해고가 있었던 것을 본 다수의 114 직원들은 다른 업무를 하더라도 본사에 남길 원했다. 한 씨도 KT에 남았던 114 잔류자 중 하나였다.

한 씨는 2002년 청주에서 상품판매직을 맡다가 2006년 돌연 충북 제천의 고객기술서비스팀으로 파견발령을 받았다. 한 씨가 부여받은 업무는 현장 개통업무로 일반전화 개통 및 인터넷 전용선 설치 등 이었다. 일반전화 개통업무는 전신주를 오르고 지붕을 타야 하는 업무인 반면, 인터넷 전용선 설치업무는 실내에서 모뎀을 연결하면 간단히 끝나는 업무였다.

한 씨는 다섯 번에 네 번 꼴로 고되고 위험한 일반전화개통업무를 부여받았다. 24년간 내근직이었던 그녀가 쉽게 할 수 없는 업무였다. 반면 서비스팀은 대부분 인터넷 전용선 설치업무를 부여받았다.

한 씨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근무실적을 올릴 수 없는 업무배치였다. KT는 인사평가에서 일반전화업무엔 0.5점, 인터넷 전용선 개통업무엔 2점을 줬다. 40대 중반의 한 씨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4명 몫의 실적을 올릴 수 없었다.

인사고과가 낮아지자 KT는 거의 매일 한 씨를 지적했다. 팀장은 밤 12시 30분까지 일을 시키고 다음날 7시 50분까지 출근하도록 지시했고, 불시에 주관식으로 쪽지시험을 보게 해 0점을 주기도 했다. 심지어 겨울날 장시간 창문을 바라보고 앉도록 지시해 동상에 걸리게 했다.

한 씨가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 중 하나는 고립감과 외로움이었다. 가족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고, 팀원들도 자신을 외부인 취급하며 회식에도 교육에도 참가시키지 않았다. 그 사이 남편이 사망했고, 자녀는 홀로 집에 남겨지게 됐다.

두 어깨에 자녀의 생계가 걸리자 한 씨는 필사적으로 버텼다. 퇴직한 직원에게 돈을 주고 일반전화 개통업무를 배웠다. 질책이 있을 때마다 내가 부족한 탓이라며 되뇌었다.

그러나 지사장은 전 팀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한 씨를 질책했고, 회사는 매주 업무지시서와 업무촉구서를 보내 왔다. 결국 KT는 거짓 고객민원을 빌미로 한 씨를 2008년 10월 31일 고객불만 유발 및 직무태만으로 해고했다.

   
 

배부른 외국인 주주
내몰리는 직원

한 씨에 대한 이러한 조치는 KT 내부의 직원퇴출프로그램에 근거하고 있다. KT는 2002년 민영화가 되면서 높은 배당률을 조건으로 투자자들을 모집하려 했다. KT는 수익을 높이기 위해 사업규모는 유지하면서 인건비 비중을 20%로 낮추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114 직원들은 법에 의해 정년이 보장되는 직원들이었다.

조태욱 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은 "그래서 직원퇴출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고 전했다. 다수의 퇴출 직원 명단을 만들고, 이들에게 기존 경력과 무관하고 무리한 업무를 맡겨 인사고과가 낮아지면 질책 등 직무스트레스를 줘 직장에서 버티지 못할 때까지 정신적 가해를 가하는 것이다.

퇴출 직원들은 실제로 실적 부진자 외에도 민영화 과정에서 KT에 남았던 114 잔류원 및 노조 활동을 한 사람들로 구성됐다. 이는 2011년 4월 퇴출프로그램의 실행자였던 반기룡 씨의 양심선언, 2011년 12월 퇴출명단 1002명 공개, 2012년 9월 퇴출프로그램 제작자였던 박찬성 전 팀장의 폭로 등 다수의 증언들과 증거가 공개된 바 있다.

권혜원 동덕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KT가 공기업에서 민영화로 바뀌면서 지배구조가 공공성에 취약한 체제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투자자 중 상당수가 장기적 경영성과 보다는 KT의 고배당에 근거한 단기 수익 펀드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2년 기준 ‘국내 주요 회사 배당성향’을 보면 KT의 배당성향은 국내 1위(60.6%)로 2위인 SKT(46.3%)와 큰 격차를 보였다. ‘2011년 외국인 배당금 총액 상위 10개사’ 중에서도 6위를 차지했다. 권혜원 교수는 KT의 고배당 경영이 임직원들에게는 수해로 돌아갔으나, 직원들은 실질임금이 하락하는 등 불균형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KT 임원의 경우 2010년 연봉의 44.4%나 인상되면서 업계 최고수준에 달했고, 2006~2011년 사이 임원 보수 한도액도 35억에서 65억으로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직원 평균임금은 1인당 15.6% 인상되는 것에 그쳤다.

현재 한 씨는 KT에 재직 중이다. 해고를 당한 후 노동위원위에 부당해고로 인한 복직 신청을 냈다. 자녀의 생계문제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복직 과정에서 청주노동인권센터는 한 씨에게 그간 받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낼 것을 제안했다. 복직이 돼도 보복이 가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KT는 한 씨가 복직하자마자 감봉 처분을 내렸다.

한 씨는 2009년 6월 KT와 이석채 회장을 상대로 5000만원 상당의 정신적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들어갔다. 한 씨는 소송이 진행되고 나서야 자신이 퇴출인력으로 낙인 찍혀 있었으며 지금까지 받은 고통이 모두 회사에 의해 지시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씨는 그 때의 일에 대해 “내가 미친 줄 알았다. 다 미친 거 같았다. 끔찍했다. 세상이 무서웠다”고 전했다. 한 씨는 KT로부터 받은 직무스트레스로 인해 심각한 우울증 및 강박증세를 앓고 있다. 아직도 약과 병원치료를 병행하고 있지만, 자주 불안에 휩싸이며 정신적 외상 증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씨는 아직도 중증의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오가며 약을 먹고 있다. 그녀는 소송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잔인한 일이 없어지는 것을 원한다. 지금도 그 프로그램은 있다.”

KT는 이번 항소심 판결에 대해 “지사장이 개인적으로 실시한 것이지 본사 차원에서의 프로그램은 없었다”며 이 건을 대법원에 상고했다. KT는 지난해 9월 다우존스지속가능경영지수에서 세계 1위 통신기업 선정을 받았다. 같은 달 이석채 KT 회장은 한국경영인협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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