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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일 7:42 오후
KT 저성과자 낙인 죽기살기로 버텨낸 곽제복 씨 “비참하고 지옥같았다”
집에서 120Km 떨어진 곳에 발령내고, 20년 기술밥 먹은 사람한테 영업시키며 ‘부진인력’ 낙인
정웅재 기자 jmy94@vop.co.kr 최종업데이트 2015-10-02 14:47:18
KT 노동자 곽제복(54) 씨는 10년 넘게 가족과 떨어져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저성과자로 지목돼 비연고지로 발령받아 여기저기로 옮겨다녔기 때문이다. 곽 씨 사례는 정부가 도입하려는 저성과자 등 일반해고 요건 완화가 어떤 폐해를 낳을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KT에 기술직 입사, 선로유지 보수 업무 노조 위원장 선거 준비 중, 청주-> 충주->영동->전주로 발령 22년동안 한 기술직 아닌 생소한 업무인 영업업무 시켜
곽 씨는 1984년 한국통신(현 KT)에 기술직으로 입사했다. 서청주 전화국에서 선로시설 유지 보수 업무를 했다. 맨홀 안에도 들어가고 전신주도 타면서 전화 케이블을 유지 보수하는 일이었다. 근무하면서는 주변에서 일을 빠르게 처리한다는 칭찬도 받았다. 본인도 자신의 일을 만족스러워했고, 노동조합 지부장까지 맡아 했다. 그는 지부장 임기를 마치면서 충북본부 노조위원장 출마를 결심했다. 이때 첫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KT 부진인력 퇴출 대상자로 선정돼 지옥같은 직장생활을 경험한 곽제복 씨ⓒ곽제복 제공
"위원장 선거를 준비중이었는데, 청주에서 충주로 발령을 냈어요. 그러고 1년쯤 됐을까, 이번에는 영동으로 발령을 내더라구요. 노조위원장 선거에 출마하지 말라는 거죠. 퇴직한 모 팀장한테 직접 듣기도 했어요. 노조 위원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으면 청주로 다시 보내주겠다는 말을요. 거절하고 충복본부 위원장 선거에 출마했죠. 결과는 낙선이었죠. 회사의 그런 방해가 있었는데 됐겠습니까?"
충청북도 지도를 살펴보면 곽 씨의 집이 있는 그의 첫 일터인 청주는 충북의 가운데에 있다. 두번째로 발령을 받은 충주는 충북의 위쪽에, 세번째 발령을 받은 영동은 충북의 아래 끄트머리에 있다. 경북 김천과 맞닿아 있는 곳이다. 곽 씨는 단기간에 이런 식으로 발령을 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이라고 했다. 이런 이상한 인사발령은 "노조 활동 방해"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입사이후 줄곧 했던 기술직 업무를 그대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대로 할만은 했다. 위기는 2006년에 찾아왔다. 그해 4월 곽 씨는 전주지사로 발령을 받았다. 업무도 기술직에서 영업직으로 바뀌었다. 1984년 입사한 이래 22년 동안 기술직만 해온 그에게 전혀 다른 업무를 부여한 것이다. 또 전주는 그의 집인 청주에서 자동차로 빠른 길로 이동해도 120Km,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곳이다. 출퇴근은 엄두도 낼 수 없는데, 설상가상 회사는 사택도 주지 않았다.
"다행히 한 시민운동가의 도움으로 전북의 한 시민단체 사무실 한 켠에 얹혀서 4년을 살았어요. 드글거리는 바퀴벌레들과 함께."
KT 본사에서 마련한 인력퇴출 프로그램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악몽 시작돼... KT 주주 이익 보장 위해 인건비 비중 19% 낮추기로 하고 부진인력 퇴출 프로그램 가동
청주->충주->영동->남원->영동->남원->전주.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불과 5년여 사이에 반복되는 인사발령으로 그가 거쳐간 곳이다. 회사는 왜 그랬을까? 나중에 KT 직원들의 양심선언으로 알려지게 된 '부진인력 퇴출프로그램'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1981년 공기업으로 출발한 한국통신은 사명을 KT로 변경하고 2002년 완전 민영화 하면서 본격적인 인력구조조정에 나선다. 민영화 당시 외국과 국내 주식 투자자들을 유치하면서 이들에게 이익 확보를 약속하면서 향후 인건비 비율을 19%로 낮추겠다는 공표도 했다.
이에따라 2003년 9월 5,505명을 명예퇴직시켰고, 이후에도 직원들에게 명예퇴직을 권하고 전직 기회 등을 부여하는 등 인력 감축을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2004년 9월 KT 본사 기획조정실 인력기획부는 인건비 지출을 19%로 낮추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면서 대외비로 '중기 인적자원 관리계획'을 작성했다. 해당 계획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개요:비핵심 분야 외부화나 대규모 구조조정과는 별도로 일정수준 이하의 부진인력을 지속적으로 퇴출하기 위한 상시 인력순환 시스템 구축이 요구됩니다.
-목표:상시 인력순환 시스템 구축 및 실행방안 마련을 통해 매년 총원 2%(700명) 수준의 부진인력을 순환시킴으로써 조직의 긴장유지로 생산성을 제고하고자 합니다.
-부진인력관리:부진인력으로 선정된 대상자에 대해서는 직무 재배치, 보상 차별화, 전직지원 등 다양한 관리방안을 통해 지속적으로 퇴출을 유도해야 합니다. 면담 및 퇴직 거부자는 징계, 체임, 직위미부여 등을 통해 반드시 퇴출.
-인력분류 기준 Option 1:역량 하위 10% Option 2:성과 하위 10% Option 3:인건비 6천만원 이상 Option 4:비전문 직무 종사자 Option 5:50세 이상 Option 6:근속 20년 이상
사생활 약점까지 캐내 반드시 퇴출시키라고 지시
이같은 계획에 따라 본사 인력관리실에서는 CP(부진인력을 지칭하는 C-Player의 약칭) 대상자 1002명을 선정해 각 지사로 내려보냈다. 명예퇴직 거부자, KT민주동지회 회원, 114 외주화 당시 전철 거부자 등이 포함됐다. 곽제복 씨도 이 명단에 포함됐다. 본사의 지시로 각 지사는 '부진인력 퇴출 및 관리방안'을 수립해 시행했다. 그 내용 중 일부는 아래와 같다.
-개인별 시나리오:가족사항, 경제상황, 사생활 약점, 직장내 약점 등을 파악해 최종 목표 및 달성 예상 시기 등 시나리오 작성 -정확한 목표 부여와 엄격한 실적관리로 소송 등에 대비한 자료 축적 -일반 직원들의 퇴출인력으로 인한 피해의식 확산 -일반 직원과의 격리로 소외감 유발 (온정주의 절대 금지)
관리방안에서는 인력을 핵심관리대상, 중점관리대상 등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핵심관리대상은 '반드시 퇴출시켜야 할 인물'로, 중점관리대상은 '핵심관리대상 퇴출 실패시 1순위로 거론될 대상'으로 적시돼 있다. 시행절차도 자세하게 나와있는데, 우선은 대상자에게 평가가 용이한 '단독업무'를 부여하고, '업무지시서'를 발부한 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업무촉구서'를 발부하고, 수행이 부진할 경우 1차 서면주의를 주도록 돼 있다. 이후 업무지시서를 발부한 뒤, 수행이 부진하면 서면 경고를 하도록 돼 있다. 서면경고 3회 누적시 징계 후 타지역으로 발령낼 수 있도록 돼 있다. 이것이 한 사이클인데 45일동안 하도록 돼 있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반복한 후에는 직위 미부여 및 파면조치하도록 돼 있다.
이런 비인간적인 인력관리로 대상자 1002명 중 601명이 퇴사했다. 곽제복 씨는 끝까지 버텨서 살아남았지만, 그 과정은 정말 지옥과도 같았다.
KT 곽제복 씨가 받은 업무촉구서. 그는 출근하면 내 책상에 업무촉구서, 경고장 등이 붙어 있었다면서 정말 비참했었다고 말했다.ⓒKT노동인권센터
영업직으로 발령내면서 담당 구역도 주지 않고 사내 시스템 접근도 못하게 해 업무 부진 이유로 퇴근 시간 이후 자습시키고 시험도 보게 해 결국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산재 요양
20년 넘게 선로유지보수 업무 등 기술직만 해온 곽 씨는 연고도 없는 전주로 발령받아 생전 처음 영업일을 하게 됐는데, 회사는 그에게 제대로 된 지원도 하지 않았다. 곽 씨와 함께 전입한 A씨는 담당 관할구역을 받았는데, 곽 씨는 담당 관할구역도 받지 못했다. 또 회사 마케팅 시스템인 e-kmss에 등재할 수도 없었다.
e-kmss는 판매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마케팅에 필요한 정보가 입력된 사내 마케팅 지원시스템이다. 마케팅에 필요한 정보는 물론이고 담당자 본인이 수행한 업무내용을 입력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회사는 곽 씨에게 window98이 깔린 노트북을 지급했는데, window98에서는 e-kmss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곽 씨는 "다른 모든 직원들은 window XP 기종 노특북을 받았고, window 98 기종을 받은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고 말했다.
영업직으로 발령을 내면서 제대로 된 영업활동은 불가능하도록 손발을 묶었던 셈인데, 이후 곽 씨는 실적 부진으로 업무지시서-업무촉구서-주의/경고장 등을 계속 받았다. 회사의 지시로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밤에는 혼자 남아 자습을 해야 했고, 반복적으로 시험도 봤다. 회사는 목표점수를 70점, 80점, 90점 식으로 높여가면서 시험을 보게했다.
"남들은 다 퇴근하는데 시험이나 보고 있고, 내 책상에는 만날 업무촉구서, 경고장이 붙어 있고, 상상해보세요. 그것같이 비참한 게 없습니다. 사람 피를 말리는 거예요. 웬만한 사람들은 거기에서 다 떨어져 나갑니다. 자기 발로 회사를 나가는 거예요."
회사측은 곽 씨만 빼놓고 지리산 직원 워크샾을 가기도 했는데, 곽 씨는 워크샾 당일까지도 직원들이 워크샵을 간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했다. 곽 씨는 팀장 및 지사장에게 건의서 사유서 등을 지속적으로 보내며 문제제기를 했다. 전주지사에서 열심히 근무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까지 했는데, 회사는 묵살했다.
결국 곽 씨는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고, 2007년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업재해 승인을 받아 3년간 산재요양을 하고 다시 회사에 복귀했다.
그는 현재 직원 강제 퇴출기구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업무지원단'에 소속돼 일을 하고 있다. KT 인터넷 등을 이용하다 해지하는 고객들의 단말기 등을 회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원래 외주를 줬던 일인데, 작년 4월 업무지원단을 만들면서 업무지원단에서 이 업무를 하고 있다.
"폐인 다 되고 가정도 망가졌는데 누가 책임지나요? 기업에 칼자루 주겠다는 건데 그 칼자루에 배겨날 사람이 누가 있나요? 대한민국 근로자라면 다 해당되죠."
인터뷰 도중 곽 씨는 종종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말을 했다. "충격으로 기억력이 많이 상실됐다"고 했다. 그는 일반해고 요건을 완화해 저성과자 해고 등을 쉽게 하도록 해주면 누구나 다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룰렛 게임이 있잖아요. 말 그대로 누가 걸릴지 모르는 거예요. 상대평가든 절대평가든 누구는 걸리는 거예요. 해고는 살인이라고 하잖아요. 살인할 수 있는 칼자루를 기업한테 주겠다는 거죠. 그럼 기업주들이 어떻게 하겠어요? 당연히 휘두르지 않겠어요? 그 칼자루에 배겨날 사람이 누가 있나요. 대한민국 근로자라면 누구나 다 해당되는 거죠."
곽 씨는 일반해고 요건 완화는 "양수겸장"이라고 말했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 사람을 자르는 걸 보는 직원들은 어떨까요? 위압감을 느끼겠죠. 주눅이 들겠죠. 한 사람을 때려잡으면 그 효과가 얼마나 큰데요. 니들도 잘못하면 저 꼴 난다. 그런 걸 보여주는 거죠. 노동개혁한다는데, 이건 자본가한테 완전히 권력을 넘겨주는 거예요."
비연고지 발령으로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는 곽 씨는 마지막으로 가족 이야기를 했다.
"제 막내 아들이 중학교 다닐때 가족들과 떨어지게 됐습니다. 그 아이가 군대를 갔다와서 사회생활을 시작할 동안 집에 못 들어가고 있어요. 남들은 주말부부 하면 좋다고 하는데, 10년만 집밖에 나와 있어봐요. 사람이 절단납니다. 저, 폐인 다 됐어요. 가정이고 뭐고 다 망가졌는데, 이걸 누가 책임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