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58세 해고된 여성사우의 한 맺힌 싸움이 있습니다.

일정:

작년 12월 24일 특별명예퇴직으로 5,992명이 나갔다는 회사의 공식 발표 이후에도 비공식적 명퇴는 지속 되었다.
2010년 1월 초 울릉도에서 근무하는 김옥희조합원에게 전화가 왔다.  노조 간부였다.
"지금이라도 퇴직신청하면 작년 수준으로 명퇴 처리해 준다.  아니면 징계 해임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이었다. 
김옥희조합원은 이를 거부했고 결국 징계 해고를 당한 후 대구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제기하고 6. 7일 심판을 받는다. 

2001년도 6월 114 분사 시 전적전출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김옥희조합원은
대구 시내에서 상주, 울진을 거쳐  울릉도까지 쫒겨 갔다. 울릉도 발령 시에는 휴가철이라 여인숙에서 한 달간 지내야 했다.
현장근무지시 - 혈압, 당뇨 등 몸이 너무 안 좋은 김조합원에게 회사는 '전주 작업'을 지속적으로 강요 했다.
병마 뿐 아니라 신체적인 이유로 전주 작업을 제외하고 모든 일을 하겠다는 김조합원의 눈물 어린 호소에 대하여 관리자들은
왕따와 수모, 그리고 협박까지도 서슴치 않으며 괴롭힘으로 답하였다. 그녀에게는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옥과 같은 삶이었다.

그녀는 지역을 옮길 때마다 분노와 설움에 싸워 볼까 수도 없이 망설였다.
지방본부 위원장을 만났을 때는 구세주 만난 심정으로 쏟아지는 눈물로 매달리며 호소했지만 돌아 온 건 '고자질쟁이'라는 핍박뿐!
가족들의 만류로 울릉도로 가는 어려움을 참으며 이제 몇 개월 다니면 정년퇴직이건만...  회사는 용납치 않았다.

김옥희조합원이 그 동안 쓴 일기를 울릉도에서 가져 나와 친지들에게 보이는 순간. 가족들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
"모난 정이 돌 맞는다"고  불이익을 참으라고 권유했던 가족들은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실명 거론된 관리자들에게 분노를 표했다.

이제서야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녀는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제기할 수 있었다.
노동인권센터 공동의장인 조광복노무사의 도움으로 6월 7일 15시 대구지방노동위원회에서 KT의 폭력에 맞선다.
그 동안 대구여성회 등에서 지원하며 지역에서 1인시위를 해 왔고 노사화합잔치에서도 부당함을 알렸다.
반드시 승리하고 1년도 채 남지 않은 정년을 명예롭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조합원들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한다.

KT노동인권센터 / KT민주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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