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 KT에 맞선 ‘다위’들

[인연]`골리앗’ KT에 맞선 `다윗’들
민영화 이후 1만 명 명퇴·3년간 40여 명 사망
민주노조 `노동자 죽음’ 항의 시위…이달 선거
김규남
기사 게재일 : 2011-11-03 07:00:00
▲ 1인 시위중인 임순택 씨.

 `광주드림 인연’은 지난달 24일부터 2주 동안 KT북광주지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KT민주동지회 광주지부의 임순택 씨(53세)와 위청량 씨(52세)를 만났다. 출근길에 들어선 직원들은 피케팅을 외면한 채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추워진 날씨처럼 썰렁한 1인 시위였다. 이들에게 말을 건넨 건 동네 주민들과 이들을 응원하러 온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뿐이었다. KT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민영화, 낙하산, 잇따른 죽음

 KT는 2002년에 완전 민영화되었다. 현재 KT의 주식 절반 가까이는 해외투자자본이 차지하고 있고, 이사회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다. KT노동조합의 집권세력은 노동자들의 죽음에 침묵하고 있으며, 이에 항의하는 KT 노동자들의 현장조직인 KT민주동지회(이하 민주동지회)는 전국적으로 250여 명에 불과한 회원으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구조조정이 가장 짧은 시간 동안 주가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인지, KT는 민영화 이후 2003년과 2009년에만 1만 명이 넘는 직원을 명예퇴직시켰다. 노골적으로 퇴출을 권유했고, 이에 불응한 직원들에게 불가능한 업무를 부여하거나 외딴 지역으로 발령을 냈다. 2009년 1월 이석채 회장이 취임한 뒤로 3년 동안 40여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올해에만 14명의 노동자가 돌연사나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임순택 씨의 경우

 임순택 씨(53세)는 1980년에 6급 체신공무원으로 KT의 전신인 한국통신에 입사했다. 96년에 KT노동조합 광주통신망 지부장으로 당선되어 4년 동안 활동했다. 99년 노조 지부장 선거에서 낙선한 그에게 회사는 “중계소장을 시켜주겠다”며 회유했다. 노동조합 일에서 손을 떼라는 것이었다. 임 씨가 이를 거절하자 회사는 임 씨를 목포로 발령냈다. 회사는 임 씨가 목포에서도 잘 버티자 이번엔 명예퇴직을 권유했다. 2003년의 일이다. 몸이 아픈 것도 아니었고, 일을 못해서도 아니었다. 임 씨는 당시의 일을 회상했다. “치욕스러웠고, 내가 초라해 보이더라. 우울증까지 겪었지만 민주동지회 회원들에게 많이 의지했고 아이들을 위해 버텼다.”

 회사는 명예퇴직을 거부한 임 씨를 상품판매팀으로 보냈다. 상품판매팀은 구조조정에 반대하거나 불응한 직원들의 집합소였으며, 임 씨는 25년 동안 오직 전자교환 업무만 맡아오던 기술자였다. 임 씨는 “일반 영업직원에게는 영업카드와 자기 지역을 할당해주는데, 상품판매팀에게는 무조건 목표만 주고 팔아오라고 했다”고 술회했다. KT민주동지회를 필두로 한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2005년에 상품판매팀은 해체되었지만, 그는 전자교환 업무로 복귀할 수 없었다. 다시 함평으로 발령이 났고, 인터넷 개통업무를 맡아야 했다. 불행 중 다행히도 2006년부터는 태어나고 자란 광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전국노동자회의 강윤희 씨는 상품판매팀 시절의 임순택 씨를 기억하고 있었다. “2004년 즈음인가? 어느 날 민주동지회 동료와 함께 사무실로 찾아와 농담처럼 휴대폰을 사달라고 하더라. 뭘 팔아본 적이 없어서 연습하는 거라고….”

 

 ▶위청량 씨의 경우

 민주동지회의 위청량 씨(52세)도 임 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1986년에 한국통신에 전기기술자로 입사했다. 민주노조 활동을 하던 중 95년부터 97년까지 지리산수련관 노동조합 지부장을 지냈다. 임기를 마친 그는 5월부터 광주에 위치한 전남 전산국에서 일했다. 그런데 6개월 뒤, 전남전화국에는 위 씨가 담당하던 업무가 사라졌다. 회사는 위 씨를 진도전화국으로 보냈다. 위 씨는 “민주동지회 회원들에 대한 분산정책이었다”고 말한다.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로 진정을 냈으나 기각당하고 말았다. 위 씨는 2007년에야 가족들이 있는 광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것도 “직장 동료들이 보증을 서준 덕분”이었다. 그는 작년 7월부터 24년 동안이나 해온 전기기술 업무를 관둬야 했다. 회사가 현장개통 업무를 맡겼기 때문이다. 위 씨는 “민주동지회 회원들 대부분이 경험이 전무한 영업이나 현장 일로 배치되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조 활동 죄”, “사표 내지 않은 죄”

 KT의 대규모 구조조정과 노동자 길들이기는 유명하다. 지난 4월에 KT의 관리자였던 반기룡 씨의 양심선언을 통해 KT의 부진인력퇴출프로그램(이른바 CP·C-Player)이 세상에 폭로되었다. 반 씨의 증언과 자료에 의하면 `민주동지회 회원’, `114 잔류자’, `무능력자’ 등이 CP로 분류되어 회사의 `특별한’ 관리를 받는다. 자진퇴직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래도 버티면 해낼 수 없는 일을 부과한 뒤에 업무촉구서와 지시서를 반복적으로 보내 해고의 근거로 사용한다. CP의 항의에 수수방관하거나 온정주의에 머무르는 관리자도 퇴출의 대상이 된다.

 “민주노조 활동한 게 죄지.” 임순택 씨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아니야. 사표내지 않은 게 더 큰 죄야!” 위청량 씨가 임 씨의 말을 받았다. “그래도 광주는 15명 정도의 민주동지회 회원들이 건강하게 버티고 있어. 회사가 은근히 우리 눈치를 보거든. 최소한 나이든 여성 직원한테 전봇대 올라가는 일은 안 시키잖아.” 임 씨의 말이다. 임 씨가 잠시 침묵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회사가 원래 직원들 간의 유대가 강했던 조직이야. 1인 시위 때 우리를 외면한 사람들도 대부분이 아는 사람들이야. 회사에 눈치 보이니까 그러는 건데, 그 사람들 원망 안 해.”

 

 이달말 KT 노동조합 선거

 지난 2008년 노동조합선거에서 민주동지회는 KT의 인간말살 경영에 분노한 노동자들의 지지로 43%를 득표했다. 비록 또 한 번의 낙선이었지만, 회사의 개입과 감시 속에서 치러진 선거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의 승리였다. 이달 말 3년 만에 다시 노동조합 선거가 치러진다. 민주동지회는 과연 집권할 수 있을까? 선거는 KT 이석채 회장의 구속투쟁을 결정한 민주동지회 측과 기존 노조 집권세력간의 2파전으로 치러진다.

김규남<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향한 연대, 광주사람연대 준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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