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김창식은 왜 죽었는가? (2)
작성자: 마파람 | 조회: 3129회 | 작성: 2011년 8월 30일 12:08 오전
비리와 불법과 발바리에 물들은 "움직이는 불법"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단속 정보를 알고 빠져나간다
아니 설령 걸려도 로비와 비리로 또 빠져나간다
KT는 노조공작과 직원미행과 불법메일확인에 올림픽선수인데도 신노사문화 대상을 받은바 있지않는가?
그들은 이런 비리와 불법을 관리하는 길(방법)에 길들여져 있다
난 김창식, 사망한 김창식을 기억해본다 우리내 김창식을
우리 주변의 김창식을....
이렇게 김창식은 우리 곁을 떠났다
김창식...
일제는 김창식을 무능과 실적에 자신이 없어 황국신민에 스스로 낙제한 자라고 혹평했고
왜놈 발바리들은 한 술 더 떠서, 일도 못하고 날마다 나와서 천황폐하의 은공을 파먹는 놈이라고 했다
그랬다
발바리들은 날미다 퇴비증산이나 공출에 발 벗고 나서서 동포 등줄을 훼게 하였지만
김창식은 깡패 왜놈들의 하수인이 되기 싫어 퇴비증산이나 공출에 소극적이었다
당연히 업무실적이 발바리들보다 낮을 수 밖에 앖었다
발바리들은 천황에 대한 김창식의 충성심을 시험해봐야 한다고 왜놈들을 꼬두겨 그의 고향과
처가 쪽을 담당하게 하였다
김창식은 졸지에 친가 처가 어른들에게 막말을 하거나 그들의 숨통을 조여야 보직과 승진을 할 수 있는 형국이 되었다
이런 일은 발바리들에게 자연스런 일이지만 김창식에겐 죽음보다 더한 것이었다
1942년 가을 둘째 출산을 위해 처가에 쉬고있던 마누라 보기에 자신이 없었다
처가 공출독려차 성황당 재를 넘는 순간 김창식은 처가 굴뚝연기가 석양빛을 휘감고 하늘고 올라가는 모습에
넔을 잃는다. 대한민국 동포들이 이런 평화를 원하것만... 자기는 처가의 쌀을 공출하여야 되지 않는가!
더더구나 처가 마을 어른들을 설득하면 이해는 하겠지만, 그것은 인생이 아니다고 생각한 것이다
민족감정도 감정이려니와 상식에 어긋한 폭력배들에게 더 이상 고개를 숙일 순 없었다
그리고 그는 사표를 섰다. 사실 사표가 먼저인지 징계가 먼저인지 모르는 형국에...
사표도 맘대로 쓰지 못한 일제시대.... 그는 거의 정신병자 행세하며 퇴직하게 된것이다
발바리들은 이런 것을 두고 김창식을 무능하다고 줄곧 비판하였다.
실로 김창식에 비하면 한 줌의 흙도 안되는 것들이.......
김창식에 대한 동시대의 평가는 친일파가 집권하는 이승만 박정희시대에도 그대로 닮습되었으니
그의 고통과 맘씀에 얼마나 무거운 짐이 되었겠는가
김창식의 고통은 이것만은 아니었다
어릴적부터 신동처럼 자란 김창식의 몰락은 마을 어른과 특히 그 어미 진씨에게 충격이고 실망이었고
김창식은 그 어미의 이런 눈망울을 평생, 돌아가실 때까지 보았다
더구나 김창식 형, 동식이는 가만히 일본놈 하는 것 따라만 하여도 군수자리가 보장되는 것을 굳이 마다하고
인생의 가파른 길을 선택하여 자기 앞길을 망쳤다고 빈정대며 호동을 쳤다
이래 저래 김창식의 맘고생은 천근 만근이었는데....
사실 김창식의 가장 큰 맘고생은 자식과 마누리 황씨에 대한 것이었다
황씨는 본디 착하고 무난하며 어른 모시기에 극진하였으나 김창식의 처신이 결국 자식들(2남2녀)에게 가난을
대물림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말년에 김창식과 강하게 대립하게 되었다
결국 이런 문제는 시댁과 갈등이 잦았고 그럴때마다 김창식은 어머님과 마누라사이에서 가슴을 쓸어 안았다
그리고 광야에 나가서 혼자 울었다.
어머니에게 미안했고 마누라에게 야속한 것이나 ...마누라도 하나의 여자이리라
김창식의 맘고생중 가장 큰 것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다
김창식은 면서기 퇴직후 그를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면서기 하다가 척을 둔 사람도 있었고... 더구나 그시절에 면서기하다가 퇴직한 것 자체가 황국보은이 없는자라서
회사에서 꺼리는.... 요즘 말하면 뺄갱이요 KT에서 말하면 민동일지니.....
천하의 신동이 결국 놈팽이 아닌 놈팽이가 되어 길거리를 헤메이는 것은 그 자체가 그토록 사랑한 아이들에게
보탬이 될리 없고.... 가정살림은 해를 거듭할 수록 말이 아니었다
의지가 곧고 자생력이 풍부한 김창식 스스로는 이런 문제를 헤쳐갈 수 있었지만... 당장 쌀독이 텅비고
물독에 물이 없고, 헛간에 댈감이 없는 초한계 상황에서 마누라와 아이들의 아빠,남편에 대한 수요는 감당할 수 없었다
가정이 어려우면 부부가 합심하면 하사불성이겠지만... 이런 극빈생활에 경험이 없는 마누라 황씨는 결국 화살을
김창식에게 돌리고 말았다..... 마누라가 고통을 분담하는 것이 아니라 마누라 자체가 부담이었으니
자식농사가 제데로 될리가 없었다
긴 세월을 두고 이를 경험한 김창식은 극도ㅡ 극빈상태에서 알면서도 손도 못쓰고 애들이 성년이 되는 것을 보았다
그래도 큰애는 다행히 가르켰는데 둘째부턴 김창식의 가슴에 평생의 멍에로 남았다
김창식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고 떠났는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물론 그 가족에게 아무것도 남김이 없다.
남는 것은 빈곤,무능,무식,...그런가? 정녕 그런가?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출세와 행복이 보장된 김창식이가 왜 인생의 가시밭 길을 선택하였는가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는 자기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자기의 비굴을 감추기 위해 남의 진실된 능력을 빈정대며
(그것도 남을 시켜) 깍아내리는 것은 없었는가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는 이 사회가 그 때나 지금이나 은근히 김창식같은 사람을 바라면서도 (대리만족) 막상 그런 사람이
자기 조직에 있기를 은근히 꺼리지는 않는가를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는 김창식이가 온갖 가족내외적, 사회적 냉대와 모멸속에 그가 지키고 간직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가 고민해 봐야 한다
우리는 비리와 불법에 능수능란한 자들이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저명한 훈장과 포상을 받으며
특정조직에서 존경받는 일에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는 김창식의 죽음이 자연적이던 사회공학적이던 타살이지만, 그 타살자가 전자는 운전기사이지만
후자라면 우리 모두가 범인인데... 그 중에 "내가 끼지는 않았는가" 고민해봐야한다
결국 살아야 할자는 죽어 사라지고, 죽어야 할자가 살아서 특정사회를 유지한다면 누가 범인인가?
일제시대 민족지사는 죽거나 만주로 사라지고, 독재시대 또한 민주인사들이 죽거나 형무소로 사라지고
우리 KT도 살벌하고 험준한 경쟁시장에서 KT를 지키고 사랑했던 수많은 직원들이
SK나 신세계통신으로 이탈되었거나 ... 그나마 남은 사람들은 파면되거나 강퇴당하였다
KT로 보자면 대우가 좋고 직위가 높은 공체4급의 퇴사율이 하위직급인 공채6급보단 더 높은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고민을 헤야 한다. 남아서 KT를 지키고 우리 곁을 지켜야 할 사람은 떠나고..
비리와 불법에 찌들은 기업문화속에서 그 찌꺼기를 먹고 그나마 지금의 KT를 지탱하는 것도
KT내 잔류하는 몇안되는 또 다른 김창식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또 다른 김창식이가 더이상 희생이 안되도록 , 우리가 더 이상 김창식 희생에 공범이 되는 일이 없도록
재발... 재발 KT 비리와 불법과 자뻑기업문화에서 탈피하여 KT가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를
그동안 떠났던 김창식은 비록 억울하고 타의적으로 KT를 떠났어도 멀리서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평직원들이 배금주의 유혹에서 벗어나 환골탈퇴하여 사회공학적인 공범에서 탈피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김창식 그는 떠났다
그를 다시는 볼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김창식이가 우리에게 던진 고민거리는 날마다 우리의 눈과 귀와 뇌리를 진동시킬 것이다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김 창 식?
나에게 김창식은 80이 넘은 할아버지가 아니다
그는 나의 동료요 친한 친구이다
나의 스승이요 인정이 넘친 페스딸로찌다
현실에 안주하며 비리에 찌들은 비계덩이를 갈망하는 발바리들을 몰아내는
젊고 활기찬 선구자이다
1.풀냄새 피어나는 잔디에 누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