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1년, 사라지는 노동권 ①민주노조 사업장에 등장한 어용노조

[릴레이기고-복수노조 1년, 사라지는 노동권 ① 민주노조 사업장에 등장한 어용노조]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는 '단결권 확대' 아닌 '민주노조 파괴 무기'

이상우  |  labortoday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2.07.0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7월1일로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에 복수노조가 시행된 지 1년이 됐다. 논란 끝에 도입된 복수노조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노동현장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 민주노총이 '복수노조 1년, 사라지는 노동권'을 주제로 연속기고를 보내왔다. 기고는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재된다.

--------------------------------------------------------------------------

   
이상우
금속노조 정책국장
지난해 7월1일 시행된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제도의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사업장 단위에서도 자유롭게 제2, 제3의 복수노조를 만들 수 있다. 둘째, 산업평화와 교섭비용 절감을 위해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을 거쳐 과반수 노조에게만 교섭권·쟁의권을 부여한다. 셋째, 그렇지만 사용자가 원하면 소수노조와도 자율교섭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결의 자유는 넓혀졌지만 교섭권과 쟁의권을 하나로 제한함으로써 그 의의를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탄압의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 이 절름발이식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라는 신무기에 의해 민주노조가 파괴되고 친기업노조로 대체되고 있다. 그 과정은 민주사회의 기본원리이자 헌법상의 기본권리인 노동기본권이 박탈되고 자본일방의 노사관계로 재편돼 가는 과정이다.

신종무기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먼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를 매개로 한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는 친기업노조 설립으로 시작된다. 회사측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이 친기업노조가 다수를 장악하면 창구단일화 절차를 밟아 교섭권·쟁의권을 독점할 수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민주노조 소속 조합원들을 압박해 탈퇴시키고 친기업노조에 가입시키면 게임은 거의 끝난다. 소수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교섭대표 노조에게 공정의 의무를 다하라고 따지는 것 정도다.

그런데 또 하나 기가 막힌 문제는 민주노조에 교섭대표권이 남아 있거나, 친기업노조가 다수를 점하지 못한 소수일 경우에도 회사는 자율교섭을 한다는 명목으로 소수노조인 친기업노조와 교섭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는 것이다. 사측은 소수노조 상태인 친기업노조와 먼저 합의하고 민주노조와의 교섭은 형식적으로 임하고 버틴다. 동시에 친기업노조는 회사의 지원하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다수를 확보한다. 조합원들은 갈등 속에서 살기 위해 동료를 등지고 자책감에 괴로워한다. 노동현장은 이전에 겪어 보지 못한 갈등·분노·배신감 등이 뒤얽혀 인간성의 파괴를 경험하고 있다. 문제의 근원은 바로 다수노조가 교섭권·쟁의권을 독점할 수 있게 하고, 사측이 교섭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임의로 선택해 자율교섭을 할 수 있게 한 모순된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제도다.

파카한일유압·유성기업·KEC·한진중공업

파카한일유압은 더 많은 이윤, 더 많은 비정규직 사용을 위해 장안외국인투자단지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2009년 5월 32명을 정리해고했다. 이후 정리해고 반대투쟁이 전개됐고 노동자들은 지난해 7월 1심에서 승소했다. 사측은 그러나 계속 밀어붙여 지난해 2월 단협 일방해지에 이어 같은해 7월1일 복수노조를 설립했다. 이후 민주노조 소속 조합원들은 잔업·특근에서 배제되고 부당한 업무지시·배치전환에 항의하면 중징계를 받아야 했다.

유성기업에서는 공격적 직장폐쇄 기간을 장기화해 조합원 복귀율이 50%가 된 지난해 7월14일 복수노조가 설립됐다. 회사측이 노골적으로 나서 친기업노조 가입운동을 펼쳤다. 관리직 사원 50명을 가입시켜 다수를 확보해 나갔다. 또한 같은해 12월 말까지 '친기업노조 가입이 50%를 넘지 못하면 현대자동차에서 물량을 안 준다고 했다'는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조합원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장기파업으로 인한 징계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 대상에서 제외되기 위해 등을 돌려야 했다.

지난해 희망버스의 소중한 성과물인 한진중공업은 정리해고자들의 복직 이전에 이미 친기업노조가 설립돼 다수를 확보했다. 올해 7월18일 이후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앞두고 있다. 일거리가 없는 조합원들에게 친기업노조에 가입하면 받을 수 있는 대출 형식의 1천만원 지원과 순환휴직에서 벗어나 먼저 현장에 투입될 수 있다는 바람은 열사의 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던 그 애틋한 동지들 사이를 갈라 놓고 말았다. 노조 간 선의의 경쟁은 말할 가치조차 없다. 고도로 준비된 노무컨설팅을 바탕으로 기획적인 노동탄압이 존재할 따름이며, 친기업노조는 노무관리 대행·사측의 아바타 역할을 수행한다. 사측은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라는 효율적인 탄압의 무기를 얻었을 뿐이다.

소수의 신규노조에 단결의 자유 안겨 줬나

복수노조가 허용됐다고 해서 노조의 무풍지대나 기존 어용노조의 아성에 노조결성의 바람이 불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교섭권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것이다. 소수노조라도 교섭권이 보장된다면 장기적 전망을 갖고 활동해 나갈 수 있으나 과반수 노조에만 교섭권이 보장돼 있는 이 제도하에서는 노조의 확산을 통한 노동자 권리 확대를 예측할 수 없다. 금속노조에서 기존 친기업노조하에서 새롭게 지회를 결성한 곳은 부산 TY밸브가 유일하다. 조합원 160명의 TY밸브노조 위원장은 임금을 결정하고 인사권을 행사하는 등 사측의 인사노무관리 역할을 하고, 조합비를 마음대로 사용하는 전횡을 일삼아 왔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조합원 중 30명이 복수노조 창구단일화가 시행된 지난해 10월4일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지회를 결성해 교섭을 요청했다. 그러나 과반수 조합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사측과 한 몸인 친기업노조를 상대로 과반수 조합원을 확보하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이긴 하지만 그 산을 오르기가 무척 힘겨워 보인다. 그렇다고 사측이 스스로 지회를 선택해 교섭을 할 리는 만무하다. 현재 TY밸브지회는 공정대표 의무 위반으로 친기업노조를 제소하며 힘겹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조직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이렇듯 교섭창구 단일화는 기존 민주노조를 파괴하는 훌륭한 무기가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규노조의 진입을 가로막는 강력한 장벽이 되고 있다. 한마디로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 민주사회의 기본원리인 노동기본권을 제한하고 박탈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노동법 전면 재개정 투쟁’ 앞에 서다

장기간의 투쟁 끝에 민주노조를 파괴하고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확보한 친기업노조는 자주성을 갖고 있는 ‘노조’가 아니라 회사측의 노무관리를 대행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지난해 7월1일 만들어진 복수노조 1호 사업장인 KEC노조는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을 거쳐 올해 2월17일 회사측의 오랜 염원이었던 상여금 300% 삭감·고정 OT 폐지·교대수당 폐지·2조2교대제·무급순환 휴직에 흔쾌히 합의해 줬다. 유성기업노조는 관리직 50명을 플러스해 교섭대표권을 행사해 교섭이 진행 중이나 이미 단체협약상의 노조활동시간과 구조조정 제한규정 삭제, 여성들의 생리휴가 제한 등에 합의했다. 센트랄·두산모트롤도 회사측의 경영방침이지만 민주노조가 걸림돌이 돼 하지 못했던 구조조정 제한규정 삭제·노동유연성 확대·노조활동 지원 축소·노동조건 하향조정 등에 합의해 회사측의 고민을 한번에 해결해 주고 있다. 이렇듯 교섭창구 단일화는 노동기본권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의 권리를 후퇴시키고 자본 일방의 노사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한국의 노사관계에 대한 세계적인 관전평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에 비해 노동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으며,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각종 권고가 있따르고 있다. 최근 ILO의 결사의자유위원회 313차 회의(2012년 3월15일)는 한국의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제도와 관련해 "모든 노조에게 쟁의권을 부여해야 하며, 과반수노조가 없을시 모든 노조에게 교섭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지난 1년을 통해 밝혀진 것은 노동기본권을 지키고, 확대하기 위해서는 노동법 전면 재개정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 사용자가 교섭파트너를 선택할 수 있게 돼 있는 이 악법은 모든 노조에 교섭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전면 재개정돼야 한다. 또한 사용자의 부당한 차별행위·친기업노조 설립지원·노조에 개입하는 행위에 대해 처벌을 강화해야 하며, 모든 노조에게 쟁의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투쟁해 나가야 한다. 그 출발이 8월 말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이다.



<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현장의 목소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