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1년, 사라지는 노동권 ② 복수노조와 비정규직의 노동기본권

[릴레이기고-복수노조 1년, 사라지는 노동권 ② 복수노조와 비정규직의 노동기본권]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강제적 창구단일화 제도"

 

배동산 공공운수노조·연맹 정책국장

 

편집부  |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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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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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동산 공공운수노조·연맹 정책국장
비정규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불안정한 노동을 하고 있다. 불안정한 고용관계는 부당한 사용자의 권력 행사에 대한 저항을 시작부터 어렵게 만든다. 어렵게 노동조합을 만들더라도 사용자는 어김없이 재계약 거부·계약해지·배치전환 등의 방법으로 조합원들을 위협해 탈퇴를 강요한다. 탄압을 해도 민주노조를 약화시키기 어려우면 아예 통째로 업체를 변경하는 방법으로 집단 해고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서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금지하고 있으나 법은 너무 멀고 사용자의 권력은 시퍼렇게 날이 서 있다. 따라서 기업별로 비정규 노동자들이 조직되더라도 사용자에게 지배되지 않는 자주적인 조직으로 생존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이유로 민주노총 산업별 연맹들은 산업별 노조로 조직을 전환하고 비정규 노동자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조직화 사업을 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의 경우 홍익대·연세대·고려대 등 대학 청소·경비노동자들을 산별노조로 조직해 지난해 집단교섭과 투쟁을 진행했다. 청소노동자들에게는 숙명과도 같았던 법정 최저임금을 뛰어넘는 임금인상을 쟁취하는 의미 있는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산별노조를 중심으로 비정규 노동자들이 조직되면서 일궈 오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권은 지난해 7월 강제적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시행되면서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창구단일화 제도는 '기업별 교섭' 강제



지난해 겨울 집단해고 투쟁을 벌였던 홍익대에서는 올해 또다시 50일 넘게 농성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공공운수노조는 집단교섭을 통해 홍익대를 포함한 고려대·경희대·연세대·이화여대 등 청소·경비·시설관리 업체들과 “노조가 요구하면 집단교섭에 성실히 참가한다”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홍익대 경비용역업체인 용진실업은 지난해 7월 이후 ‘홍경회노동조합’이라는 비자주적인 노조가 설립된 뒤 경비노동자의 다수파가 되자 단체협약을 무시하고 공공운수노조와의 교섭을 계속 거부했다. 용진실업은 서울서부지법의 가처분결정(위반시 1일당 100만원의 이행강제금) 이후 형식적으로 단체교섭에 응했으나 올해 3월 서울지노위가 “공공운수노조는 교섭대표노조가 아니므로 임금교섭은 쟁의조정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리자 얼씨구나 하며 현재까지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업체는 올해 집단교섭에서 합의된 시급 5천100원에 훨씬 못 미치는 시급 4천900원으로 홍경회노조와 합의했다. 사측과 월권적인 노동행정기관으로 인해 집단교섭에 대한 단체협약 조항은 휴지 조각이 됐고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후퇴했다.



다른 사업장노조와 창구단일화해야 하는 간접고용 노동자



파견·용역회사에 고용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창구단일화 제도의 문제점이 더욱 심각하다. 실제 파견·용역회사들은 원청의 인사노무관리 대행업체 수준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노사관계는 원청 사업장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한편 용역회사는 일반적으로 여러 원청과 노무공급계약을 체결하는데, 만약 용역회사를 기준으로 창구단일화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다른 사업장 노조와 창구단일화를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어렵게 단일화 절차를 거치더라도 용역업체가 변경되면 그때부터 다시 새롭게 변경된 용역업체에 있는 다른 노조들과 절차를 밟아야 한다. 혹시라도 창구단일화 절차가 이미 진행됐다면 창구단일화 이후 설립된 신규노조와 같은 지위를 갖게 돼 교섭권과 쟁의권이 원천적으로 제한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주대와 비전대의 청소노동자들이다. 전주대와 비전대의 청소·경비 용역업체인 온리원에 소속된 청소·경비 용역노동자 130명 중 113명은 지난해 6월 노조에 가입한 뒤 온리원측에 교섭을 요구했다. 같은해 7월 이후 용역업체 온리원이 행하는 전혀 다른 사업장인 천냥마트라는 전국 30여개 영업매장 판매원을 중심으로 온리원노동조합이 설립됐다. 사측은 그 노조가 다수파가 됐다는 이유로 공공운수노조와는 불성실한 교섭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비정규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교섭도 못해 본 상황에서 지난해 7월 이후 장기파업과 40일이 넘는 지부장 단식투쟁이라는 절박한 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비정규 노동자가 노동법전 달달 외워야 하나



현행 노조법에 의해 단체교섭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각종 공고 절차 등이 필요하다. 아무 문제 없이 절차가 진행되더라도 두 개 이상의 노조가 있다면 최초 교섭요구부터 빨라야 31일이 지나야만 단체교섭을 시작할 수 있다. 만약 다른 노조나 사측의 각종 이의제기가 있다면 2개월 이상 지나도록 교섭조차 시작하지 못할 수 있다. 힘의 불균형이 극심한 비정규 사업장에서 사용자에게 이와 같은 시간이 보장되는 것만으로도 사용자에게 유리한데, 엄청 복잡한 절차는 전문가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사용자를 더욱 유리하게 만든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생존권 보장을 위한 교섭을 하기 전에 먼저 어려운 노동법전을 달달 외워야만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소수·신규노조에 단체교섭권·쟁의권 보장 안돼



비정규직은 일반적으로 소수인 경우가 많다. 다행히 다수파라고 하더라도 대단히 불안정한 현실을 감안할 때 사용자의 탄압이 있을 경우 언제라도 소수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조합원이 소수라는 이유로 또는 신규노조라는 이유로 자신의 노동조건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게 되는 현행 제도하에서 사용자는 끊임없이 자신이 싫어하는 노조를 소수파로 만들기 위해 어용노조를 새롭게 만들거나 민주적 노조를 탄압하는 부당노동행위를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실효성 없는 공정대표의무제도나 부당노동행위제도와 같은 사후적 구제제도가 아니라 조합원수에 관계없이 소수노조라도 직접 교섭하고 스스로 책임지고 투쟁할 권리가 보장돼야만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부족하나마 보호될 수 있을 것이다.



월권적 행정지도 남발해 쟁의권 제한하는 노동위



지난해 7월 이후 노동위원회는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쟁의조정을 신청한 경우 쟁의조정 자체를 진행하지 않은 채 절차를 거칠 것을 요구하며 행정지도를 남발하고 있다. 최근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은 스스로 노조들 간에 단일한 교섭단위를 만들고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사용자인 교육청이 "사용자가 아니다"는 이유로 각종 절차를 진행하지 않아 교섭 자체를 진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은 노동위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하지만 전국의 노동위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창구단일화 절차를 먼저 진행했고, 사용자측의 책임 있는 사유로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던 이번 경우에도 역시나 "절차가 없었다"는 이유로 행정지도 결정을 내리면서 쟁의권을 제한했다.



사용자 탄압 효과적으로 만드는 법·제도 폐기해야



이상과 같은 이유로 가뜩이나 취약한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3권은 새롭게 바뀐 강제적 창구단일화 제도로 인해 더욱 위태로워진 상황이다. 어용복수노조 설립을 통한 민주노조 탄압이 사용자에 의한 탄압이라고 한다면, 기업단위로 교섭을 강제하고 소수노조의 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는 법·제도에 의한 민주노조 탄압이자 사용자에 의한 탄압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드는 제도다. 가뜩이나 취약한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보호되기 위해서는 기업을 넘어서는 산업별·지역별 교섭구조를 법·제도화하고, 강제적 창구단일화가 아니라 모든 노조에 교섭권과 쟁의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노조법을 개정해야 한다. 또한 법 개정 이전이라도 노동행정기관들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스스로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초기업노조에 의한 단체교섭은 창구단일화 제도의 예외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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