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네트워크
작성자: 대안경제 | 조회: 2635회 | 작성: 2011년 7월 7일 12:55 오후
정보·기술 공유로 경쟁 메커니즘 압도
| |
등록 : 20110705 11:34 |
|
에밀리아로마냐의 ‘신뢰 네트워크’
에밀리아로마냐의 비밀은 한마디로 ‘신뢰’다. 미국 하버드대의 퍼트넘 교수가 ‘사회적 자본’에 관한 이론을 전개했을 때 그가 염두에 두고 있던 곳이 에밀리아로마냐였다. 사회적 자본은 ‘신뢰의 네트워크’로 정의된다.
흔히 에밀리아로마냐 지역 사람들은 이곳이 르네상스의 발원지 중 하나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시민적 인본주의가 중세시대부터 뿌리박혀 있었다는 얘기다.
뿌리깊은 시민적 인본주의 전통 에밀리아로마냐의 주도인 볼로냐의 시청 벽면엔 파시즘에 저항하다 숨진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이탈리아 공산당과 이 계열의 협동조합이었던 레가를 주축으로 레지스탕스를 벌여서 무솔리니가 항복하기 전에 스스로 독립했다. 우리에겐 영화로 더 알려져 있는 과레스키의 소설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의 무대 역시 에밀리아로마냐이다. (돈 카밀로 신부는 별명이 ‘볼셰비키 신부’로, 공산당원인 페포네 시장과 시종 아옹다옹하면서 깊은 신뢰관계를 유지한다.) 이곳은 1950년대 초에 이탈리아에서 가장 못사는 동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유럽연합 전체에서도 제일 잘사는 지역 중 하나이다. 지난해 만난 에밀리아로마냐주 경제부 장관은 “우리는 인구 430만에 기업이 40만개입니다”라는 말로 얘기를 시작했다. 어린아이와 노인을 빼면 평균 직원 5~6명의 영세기업만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하고, 전체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수출한다.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이 없는데도 말이다. 협동조합도 8000개에 이르며, 많지 않은 대기업 또한 절반이 협동조합이다. 여기서 신뢰의 네트워크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공공재의 구실을 한다. 이 지역에는 자기만 독점하는 기술이나 노하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워낙 작은 기업들이라 서로 지식과 위험을 공유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어쩌면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이 지역 9개의 지자체는 서로 다른 산업을 영위하는 ‘산업지구’(industrial district, 요즘 말로 클러스터)를 가지고 있으며 또 각각 고도의 기계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지자체별로 서로 다른 산업지구 이 작은 기업들의 영세성을 보완해주는 중간조직들도 매우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1940년대에 이미 형성된 중소기업-수공업연합회(CNA)나 협동조합연합회인 레가는 회계나 법률, 해외 진출, 그리고 정부 로비 등 사업서비스를 대행하고 70년대부터는 ‘리얼서비스센터’가 산업별 기술 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90년대 이후로는 역내 대학교, 국립연구소, 기업 간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바이오 등의 첨단산업 발전도 꾀하고 있다. 에밀리아로마냐는 신뢰에 입각한 정보의 공유가 시장의 경쟁 메커니즘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웅변한다. 이런 신뢰를 떠받치는 힘은 바로 일상에 스며든 협동조합의 정신이었다. 협동조합의 원칙들이 이 지역의 사회규범이 된 것이다.
이런 점이 이 지역을 포함한 제3이탈리아가 포드주의를 이을 모델(예컨대 피오르와 세이블의 ‘유연전문화 모델’)로 각광받았던 이유일 것이다. 당시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들 중소기업이 장차 세계화와 정보기술혁명의 격랑 속에서 스스로 대기업이 되거나 아니면 소멸할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이들은 협동조합과 ‘협동’하면서 여전히 신뢰의 네트워크 속에서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태인(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