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시장을 동일시하는 것이 우리시대의 심각한 착각
작성자: 대안경제 | 조회: 2242회 | 작성: 2011년 7월 7일 12:34 오후
무한경쟁시대 ‘착한 대안’ 협·동·조·합으로 기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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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05 10:58 | 수정 : 20110706 1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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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선 이미 주식회사와 경쟁구도
인식·제도 못 갖춘 한국 갈길 멀어
이제, 발칙한 상상을 해보자.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들이 협동조합으로 벤처기업을 세운다. 동네슈퍼들이 소상인협동조합을 결성해 마케팅에서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능가한다. 10년 뒤에 이마트를 인수한다는 목표까지 세운다. 시민 1만명이 100만원씩 출자한 협동조합을 결성해 영종도 앞바다에 풍력발전을 건설한다. 노동자들이 경영위기에 빠진 회사를 인수해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새출발한다. 새로 태어날 ‘농협은행’은 사회책임 및 협동조합 펀드를 조성해 협동조합 사업의 안전판 구실을 한다. 협동조합을 주식회사에 비유하면, 주요 고객의 대다수가 주주인 회사에 해당한다. 홈플러스의 고객들이 홈플러스의 주주라고 생각해 보라. 그렇지 않은 홈플러스와는 고객 충성도와 참여, 홈플러스 물건의 구매 동기 등에서 뚜렷한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런 충성스러운 고객 집단을 갖는 것은 모든 기업 경영자의 꿈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주식회사도 흉내만 낼 수 있을 뿐 협동조합 같은 조합원을 가질 수는 없다.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의 스테파노 차마니 교수는 “자본주의와 시장을 동일시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심각한 착각”이라고 했다. 시장에서 생산활동을 벌이는 기업 하면 모두 자본주의의 주식회사라고 여기는 우리의 통념이 크게 잘못됐다는 것이다. 차마니에 따르면, 시장에서 활동하는 기업은 두 부류이다. 주식회사처럼 주주의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 협동조합처럼 공적인 동기도 함께 추구하는 기업이다. (요즘의 사회적기업 또한 후자에 속할 것이다.) 유럽에서는 여러 협동조합 기업들이 이미 자본주의 주식회사와 경쟁하는 대안의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소비자 또는 농민들에게 좋은 조건으로 물건을 거래하고,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급여와 근무조건을 제공하면서도, 주식회사와의 시장 경쟁에서 한판승을 거두는 협동조합 기업들이 튼튼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주식회사만이 아니라 협동조합 기업으로 ‘착한 사업’을 할 수 있는 선택지가 활짝 열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협동조합이 만능은 아닐 것이다. 협동조합 또한 자본시장에서 자금조달이 어렵고 의사결정이 더디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협동조합으로 기업하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중시되고 소비자들의 의식이 깨어나면서 착한 기업인 협동조합의 경쟁력은 돋보인다. 우리나라만 한쪽 눈을 감고 일방통행을 하고 있을 뿐, 한발짝만 바깥으로 나가 보면 성공한 협동조합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협동조합으로 새롭게 기업할 생각을 잘 하지 못할까? 모든 전문가들의 첫번째 대답은 “협동조합으로 기업을 할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안 돼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협동조합을 가까이할 수 있도록, 학교교육의 길을 열어야 하겠다. 참신하고 창의적인 협동조합 설립을 어렵게 만드는 법제도의 미비도 한몫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협동조합에 대해서는, 통일된 법제는 물론 담당 부처도 없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고 관심도 없다”며 “협동조합 이슈를 어디에서 어떻게 풀어갈지 생각하면 답답하다”고 말했다. 협동조합 맏형인 농협의 구실도 부족했고, 시민사회도 협동조합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양적 성장을 보이는 사회적기업들에는 협동조합이 사업조직의 중요한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협동조합은 지배구조와 사업내용에서 100년 이상 일관되게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온 ‘사회적기업의 원조’이다. 그래도 망망대해에서 어렵게 기틀을 다진 몇몇 생협과 원주의 지역협동조합들이 희망의 편지를 보내고 있다. 저력을 잃지 않은 읍면 단위의 여러 지역 농협들도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협동조합의 기운을 일으키기 위한 의제 7가지를 정리했다. 젊은이들이여, 협동조합으로 기업하자!
① 협동조합기본법 제정하자 우리의 협동조합 정책은 농협법, 신협법, 생협법 등 8개 특별법에 근거하고 있다. 협동조합마다 설립 기준과 지원 및 규제가 각각이고, 정책을 종합적으로 관장하는 정부 부처도 없다. 그래서 나타나는 문제는 세가지다. 노동자협동조합이나 사회적협동조합 등 새로운 협동조합을 설립할 근거가 없다. 다른 협동조합들끼리 공동사업을 벌일 수도 없다. 조합 자율이 아니라 감독과 규제 위주로 흘러간다. 조합원의 자율과 창의를 뒷받침하는 통일된 법제가 필요하다.
② 협동조합, 학교에서 가르치자 학부 과정에 협동조합 강좌를 개설한 대학은 건국대와 경북대, 단국대 3곳이다. 나머지는 모두 없어졌다. 국립농수산대학의 모든 강좌 설명을 읽어봐도 협동조합이란 단어는 빠져 있다. 영농 후계자들에게 협동조합으로 농업할 수 있는 길조차 일러주지 않고 있다. 성공회대와 아이쿱생협에서 협동조합 대학원 과정을 개설한 것은 의미있는 도전이다. 유엔은 젊은이들이 협동조합으로 사업할 수 있다는 옵션을 인식할 수 있도록 모든 학교단위에서 교육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③ 협동조합, 서로 협동하라 <278C> 협동조합은 많이 모일수록 그 힘이 더 커진다. 이탈리아의 대형 생협 매장에서는 여러 협동조합들의 농산물과 공산품을 좋은 자리에 진열해 판다. 투자 자본 유치가 어렵다는 약점도 그런 협동으로 극복해낸다. 모든 협동조합이 이윤의 3%를 갹출했다가, 어려운 협동조합이 생길 때 지원하는 ‘상호부조’ 제도도 운영한다. 우리는 읍면의 농협들끼리도 공동사업을 벌이기가 쉽지 않다. 농협이 생협과 손잡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이래서는 대기업과 경쟁할 수 없다.
학교 무상급식은 협동조합 발전에 더없이 좋은 기회이다. 무상급식의 식재료는 당연히 지역 농산물이고 친환경이어야 한다. 그런데 생협은 학교의 대규모 물량을 홀로 공급하기에 벅차고, 지역의 농협들은 잘 나서지 않는다. 지역의 학교에 안전한 농산물을 공급하는 일은 지역 농협과 생협의 책임이고 권리이다. 지역의 농민들을 조직화하고 협동조합 사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발판이기도 하다. 학부모들은 영리 급식업체를 믿지 못한다.
⑤ 협동조합으로 사회적기업 하라 사회적기업이 지속가능하려면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버는 데 가장 적합한 조직형태는 주식회사라고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주식회사로 사업하는 사회적기업의 상당수는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그렇다고 비영리단체 조직으로 사업을 끌어나가자니, 여러 한계에 부닥친다. 유럽에서는 사회적기업의 70%가량이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사업을 벌인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사회적 가치를 확실히 앞세우면서 사업을 끌어갈 수 있는 조직형태이다.
⑥ 시민사회, 협동조합운동 나서라 최초의 협동조합은 공장에서 나왔다. 공장의 노동자들에게 생필품을 값싸게 공급하는 생협 매장이 시초였다. 노동운동과 협동조합운동은 동전의 양면이다. 일터에서는 노조원이고, 퇴근해서는 협동조합과 공제조합원이 된다. 우리 현실은 많이 다르다. 노동운동은 협동조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협동조합 강령을 둔 진보정당도 없다. 말로만 외치는 사회연대이다. 협동조합은 사회운동의 외연을 광범위하게 넓힐 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
⑦ 농협 시험에 협동조합 넣어라 협동조합에 심장이 뛰는 농협 직원들이 얼마나 있을까? 협동조합에 자부심을 갖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가족도, 친구들도 협동조합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농협 직원들조차 협동조합을 잘 모른다. 세상 사람들이 협동조합을 인식하고 관심을 갖도록 하자. 농협은 협동조합의 맏형임을 자임하고, 학교에서 협동조합을 가르치도록 사회운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 첫걸음은 농협중앙회의 신입사원 시험에 협동조합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