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 관행에 대한 새로운 기준

대법원 “긴박한 경영상 이유, 존폐위기 정도는 돼야” 
 
진방스틸 사건서 부당해고 판결, 고용안정협약 인정 … 무분별 정리해고 관행 '쐐기'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갖추지 못한 정리해고는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기업이 정리해고를 단행하려면 기업 자체가 존폐 위기에 처할 만큼 심각한 재정적 위기가 도래했거나, 예상치 못한 급격한 경영상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시적인 매출 감소 등의 이유로는 정리해고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정리해고의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한 이번 판결이 국내 기업의 무분별한 정리해고 관행에 제동을 걸지 주목된다.

1일 대법원(재판장 이인복)은 경북 포항 소재 강관제조업체 진방스틸코리아(주) 정리해고자 권아무개씨 등 16명이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 대한 상고심에서 서울고법의 2심 판결을 확정하고,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특히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없는 한’ 노사가 특별교섭을 통해 합의한 ‘고용안정협약’의 효력이 유지된다고 판시했다. 인수·합병 같은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고용안전판 차원으로 마련된 고용협약은 해당 기업이 문을 닫지 않는 한 효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진방스틸의 경우 지난 2007년 8월 한국주철관공업으로 경영권이 넘어갔다. 당시 모건스탠리로부터 경영권을 인수한 한국주철관은 같은해 7월 금속노조 진방스틸지회와의 특별단체교섭에서 노조·단협 승계와 함께 “인위적으로 구조조정을 시행하지 않는다”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경영권이 넘어간 지 1년도 되지 않아 두 차례 대규모 정리해고가 발생했고, 최종적으로 26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지회와 한국주철관이 맺은 고용협약의) ‘인수 후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는다’는 조항은 회사 인수예정자였던 한국주철관이 스스로 경영상 결단에 의해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를 제한하기로 한 것”이라며 “협약 체결 당시 예상하지 못했던 사정변경이 있어 협약의 효력을 유지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부당한 경우가 아니라면 협약은 유효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고용안정협약이 체결된 2007년 7월 이후 2008년까지 국내 강관 가격이 올라 강관업계가 사상 최대 수준의 매출실적을 올렸다”며 “고용안정협약의 효력을 배제할 만한 상황으로 보기 어렵고, 따라서 협약을 어기고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한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을 대리한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그동안 법원은 도산의 우려가 없는 기업이 경영 합리화 차원에서 추진해 온 정리해고까지 폭넓게 인정해 왔다”며 “노사가 맺은 고용안정협약의 효력을 인정하고 정리해고의 요건을 강화한 이번 대법원 판결은 국내 고용관행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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