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작성자: 균형 | 조회: 1355회 | 작성: 2011년 6월 20일 8:19 오전
[인물과 현장]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뒤집어라
2부 기본소득의 사회경제적 효과 - 개인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과 여성
노동시간 단축과 가사노동 분담 그리고 사회적 일
한국은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자랑한다. 많은 남성이 ‘생계부양자’의 구실을 하느라 하루 종일, 때로는 야간·밤샘, 휴일 근로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된다. 여성 또한 마찬가지다. 여성 노동자들은 심지어 똑같은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남성들과 ‘성(性)’이 다르다는 이유로 집에 돌아오면 가사·양육까지 도맡아야 한다. 이러한 장시간 노동은 일과 생활의 균형(life and work balance)을 어렵게 한다. 장시간 노동과 가부장제적인 ‘남성 생계부양자’논리가 만나면 여성의 삼중고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기본소득이 도입되고, 여성이든, 남성이든 매월 꾸준히 일정액이 안정적으로 지급된다면 실질 노동시간 단축이 가능해진다(노동시간단축과 기본소득 부분 참고). 실질적인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일과 가정의 균형을 갖춘 삶은 훨씬 가능성이 커진다.
우선 기본소득 도입과 노동시간 단축 덕분에 작업장으로부터의 해방을 맞은 (즉, 장시간 노동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벗어난) 남성들이 자신의 시간을 갖게 되면서 양육과 가사일을 여성들에게만 떠맡길 수 없게 된다. 여기에 앞에서 Elgarte의 말을 빌려 언급했듯이 자신 명의로 돈을 지급받는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가정 내에서 적당하게 키운다면 여성과 남성, 남성과 여성의 가정 내에서 일의 역할분담은 분명히 변화를 겪게 된다.
Almaz Zelleke(2008)은 Fraser1)의 말을 인용해 실질적인 성평등은 돌봄 노동처럼 주로 여성의 노동으로 여겨지는 것을 재분배함으로써 이뤄진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더라도 돌봄 노동을 여성과 남성이 나눠 하지 않는 한, 경제활동에 참여한 여성들의 일(주로 가사노동과 양육)을 다른 여성들(사회적으로 더 열악한 조건에 처해 있는 여성들, 예들 들면 이주여성노동자)이 하게 될 가능성이 많아 성평등 실현은 요원해진다는 것이다. 때문에 여성과 남성이 양육, 가사노동을 나눠 할 조건을 만드는, 다양한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기본소득이야말로 다른 어떤 사회보장 제도보다 성평등을 이루는데 적극적인 복지제도라는 말이다.
여성의 주된 일이라고 여겨지는 양육, 가사노동을 남성과 여성이 함께 나눔으로써 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Nancy Fraser의 주장을 좀 더 자세하게 소개하여 그의 주장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Fraser는 시민의식의 두 가지 모델이 논쟁 중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하나는 보편적 생계부양자 모델이고, 또 하나는 돌봄 제공자 동격 모델이다. 보편적 생계 부양 모델은 원칙적으로 여성의 고용 증진을 통한 성평등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들의 풀-타임(full time) 일을 방해하는 돌봄 노동으로부터 여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이 요구된다.2)
돌봄 제공자 동격 모델은 원칙적으로 비공식적인 돌봄 노동에 대한 지원을 통해 성평등에 도달하는 것이다. 즉, 돌봄 노동이 다른 임금 고용과 동등하게 간주돼야 하고, 보상돼야 한다. 이 모델은 성별 노동 분업을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다. 문제는 소득 불평등과 돌봄 노동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이다. 이 모델은 주요하게 비공식적 돌봄 노동을 지원해 성평등을 증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Fraser는 두 모델이 모두 남성중심주의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두 모델은 다 어떤 일이 남성의 일이고 어떤 일이 여성의 일이냐에 대한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여성이건 남성이건 두 가지의 일에 다 참여를 해야 하고, 이 두 책임을 구조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임금노동·돌봄·휴식 등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에 대한 개인의 선택폭을 키운다. 누구도 수익을 얻기 위해 ‘노동자’ 혹은 ‘돌봄 제공자’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필요가 없다. 때문에 기본소득은 돌봄의 제공과 유급 고용의 세계에 대해 남성과 여성 양쪽의 관계를 재분배적인 계획의 가장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Fraser 주장의 요지이다.
기본소득은 일과 가정의 균형을 이루는데 기여할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활동이 가능하게 한다. 문화 활동, 지역공동체 활동, 혹은 더 폭넓은 사회활동도 장시간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여성과 남성이 사회적 차원으로 자신의 유의미한 활동을 확장할 수 있다. 로비스타 숄츠(2007)의 말처럼 편협한 관점에 갇힌 채 ‘가족과 직업’에 몰입하는 것이 자본주의적이고 가부장적으로 강요된 존재 방식임을 깨닫고 그를 비판하려고 생각하지 못한다면 페미니즘 이론은 우리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 때문에 시선을 보다 폭넓게 가져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이러한 시각을 갖는데 기본소득은 크게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의미 있는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기본소득도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공공 보육시설이 보다 확충되지 않으면 노동시간 단축으로 생긴 시간을, 추가로 생긴 수입(기본소득)을 ‘자신’의 아이들, 가족들을 돌보는 데만 사용할 수도 있다. 때문에 기본소득제도의 도입은 다른 공공재의 강화와 함께 이뤄져야 한다. 기본소득은 도입했지만 공공보육의 확충, 무상의료, 무상교육, 돌봄 노동의 사회화 등이 제도화되고 실현되지 않는다면 기본소득의 효과는 삭감될 것이다. 기본소득 도입과 공공성 강화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루어진다면 사람들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특히 여성들에게 기본소득 도입은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많은 기본소득 주창자들이 얘기하듯 기본소득 도입과 함께 공공재는 더욱 확충돼야 한다.
기본소득 도입과 실질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과 가정의 균형, 의미 있는 사회적 활동도 가능하지만, 또한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도 가능해진다. 기본소득 도입으로 노동자의 필요·충족에 의해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사용자는 기존의 노동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일자리가 남성에게만 국한될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또한 돌봄 노동의 사회화나 공공재 확충으로 사회 서비스에 해당하는 일자리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일자리의 임금이나 노동조건이 기본소득 도입 덕분에 괜찮은 일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성별노동분업과 기본소득’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겠지만 이미 언급하였듯이 일정액의 수입을 확보한 사람들에게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의 일자리는 선택할 수밖에 없는 ‘오직 하나’가 아니다. 때문에 기본소득 도입, 실질 노동시간 단축은 여성에게 괜찮은 일자리를 나누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성별 노동 분업과 기본소득
개인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이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성별 노동분업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다. 다양한 상황을 통해 기본소득이 성별 노동분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자.
Elgarte(2006)는 사회에서 여성의 특별한 지위의 주요요소는 성별 노동분업이라고 주장한다. Zelleke(2008) 역시 성평등에 도달하기 위한 처음 중요한 단계는 노동의 성별분업을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들은 다른 사회보장제도와 비교해 기본소득이 성별노동분업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본소득 도입은 성별 노동분업을 약화시킨다는 가설을 놓고 얘기를 해 보자.
기본소득이 모두에게 지급되면 여성들은 갈등을 겪게 된다. 특히 저임금·장시간 노동으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 또한 아이가 있어 상당히 많은 액수의 보육비를 지출해야 하는 엄마들이 그렇다. 예를 들어, 100만원의 임금에 40만원의 보육비를 지출하고 있던 여성이 만약 40만~50만원의 기본소득을 받게 되면 과연 계속 노동시장에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집에서 아이를 ‘직접’ 돌보는 일을 선택할 것인가. 물론 이는 단순하게 금전적인 이유만으로 선택될 일은 아니다. 아이에게 미칠 영향도 고려해야 하고, 직장에서 자신의 경력을 쌓는 일도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나 당장은 10만원 더 벌자고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고 싶지는 않을지 모른다. 얼마나 소중한 아이인가! 아마도 노동시장을 떠나게 될 가능성이 많을 것 같다3).
그러나 또 한 가지의 예를 생각할 수 있다.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들이다. 그녀들에게 기본소득 40만~50만원이 매달 지급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해도 최저임금조차 받기가 쉽지 않다. 차비에, 식비에 이렇게 저렇게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기본소득이 있으니 차라리 집에 있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들은 쉽게 노동시장을 떠날 수 없다. 최저임금의 일자리를 선택하는 여성들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최저임금에, 비정규직으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면서도 그런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녀들에게 기본소득은 ‘추가’의 소득이 될 가능성이 더 많다.
그러나 만약 그러한 여성들이 기본소득이 생김으로써 그녀들이 일자리를 떠난다면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많은 여성학자가 기본소득에 대해 우려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성별 노동분업을 더욱 고착화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예를 들어 Robeyns(2001)는 만약 기본소득제도 아래에서 가사노동에 대한 책임 때문에 남성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줄어든다면, 다른 여성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가사일 때문에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여성들 때문에 고용주는 자신의 경력을 쌓기 위해 헌신하는 여성들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여긴다. 때문에 고용주는 남성을, 심지어 경력자 여성보다 낮은 능력을 갖춘 남성을 고용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여기게 된다. 고용주는 어차피 여성들은 가사노동과 양육의 책임으로 직장을 남성보다 쉽게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러한 영향은 가정을 이루거나 아이를 갖고 싶어 하지 않은 여성들에게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요지는 이렇다. 여성 개인에게 기본소득이 보장되고, 이 때문에 저임금 일자리를 이탈하게 되어 가정에 머물게 되며, 그렇게 가정에 머물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가정 내의 돌봄 노동을 전담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성별 노동분업은 더욱 굳어지며, 언제가 노동시장으로 복귀하고 싶을 때 또 다시 ‘성별 노동분업’에 근거한 일자리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혹은 가사와 양육을 전담하지 않는 여성조차 남성들과 동등한 경력자로 인정되지 않으면서 ‘성별 노동분업’에 근거한 그러한 인식에 토대를 둔 일자리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한 일자리의 일은 ‘생계부양자’가 하는 일이 아닌 부수적 일로 여겨서 저임금,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기본소득은 여성에게 성별 노동 분업을 고착화하며 여성에게 ‘평등’은 더 요원한 일이 되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만 생각할 일인가. 다른 경우의 수도 생각할 수 있다. 여성 개인에게 기본소득이 보장되고, 그 때문에 저임금의 일자리에서 이탈하게 된다. 가정에 머물게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그 후 장시간·저임금의 여성 노동자들이 감당했던 그 열악한 일자리는 누구에 의해서 채워질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 일자리는 기본소득 때문에 여성들이 떠났다면 똑같이 기본소득을 받는 남성들이 그 자리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공평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저임금 등 열악한 조건의 일자리는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장시간 일하고도 적은 임금을 받았다는 것은 여성이 남성과 비교해 초과 착취를 당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적어도 이러한 초과착취는 가능하지 않게 될 것이다. Elgarte의 말처럼 어떤 관계로부터 후퇴(이탈 혹은 거절)가 가능하기 때문에 교섭할 수 있는 힘이 강해진다. 즉, 여성들은 더 이상 빈곤의 두려움 때문에 열악한 낮은 임금의 일자리를 강요받지 않게 될 것이다.
만약 기본소득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떠날 것이라는 논리에 따른다면 그들이 떠난 일자리에 새로운 인력이 필요해지고 보편적인 기본소득체계 아래서는 과거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는 노동자를 더 이상 그러한 노동시장으로 유인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지점에서 우리는 기본소득이 도입됐을 때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든 개인에게 또한 사회에 역동적으로 작동하는 기본소득을 상상할 수 있다.
의식 변화의 토대
물론 기본소득만으로 성평등을 완전히 실현할 수는 없다. 사회적 제도와 문화·의식의 변화를 위한 무한한 노력이 필요하다. 의료·보육·교육 등의 공공성 강화는 매우 중요한 기본조건이다.
기본소득은 임금노동, 돌봄, 휴식을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섞어서 선택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때문에 누구도 노동자와 돌봄자, 둘 중의 하나만 돼야 하는 선택을 강요받지 않는다. Zelleke의 말처럼 기본소득은 임금 고용의 세계에서 그리고 돌봄 노동의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바뀌게 하는 가장 가능성 있는 재분배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재분배의 가능성은 여성과 남성의 역할에 대한 의식 변화를 유도한다. 여성의 일, 남성의 일에 대한 고착화된 인식이 변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물론 경제적인 토대만으로는 쉽지 않다. 이는 가부장적 문화 극복을 위한 사회적 노력과 함께 할 때 그 빛을 더욱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은 성평등을 실현하는 사회적 의식변화를 마련하는데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각주]
1) Nancy Fraser, “After the Family Wage: A Postindustrial Thought Experiment,” in Justice Interruptus: Critical Reflections on the “Postsocialist” Condition(Routledge, 1997), pp.41~66쪽.
2) 한국의 일·가장양립지원제도가 이와 맥락을 같이 하는데, 여성이 양육·가사노동을 잘할 수 있도록 보육시설 등 각종 지원을 확대·강화하는 반면, 배우자출산휴가(산모가 출산을 하였을 경우, 배우자(남성)가 휴가를 사용하여 돌보는 제도)를 무급으로 하여 실질적인 사용을 쉽지 않게 하고 있다. 즉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여성에게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여 좀 더 여성이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것을 쉽도록 지원하기는 하나 남성이 양육과 가사를 나누어함으로써 실질적인 성평등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3) 강남훈·곽노완·이수봉(2008)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위하여」에 따르면 20세에서 39세의 개인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년간 400만원, 즉 월 33만원정도 된다.
김미정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