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면 꾀심한kt

KT 노조, 5900여명 울어도 ‘올레’? [2011.05.23 제861호]
[초점] 위로금 못받은 명예퇴직자들의 소송에 무심한 KT 노조… 동료들 내쫓고 만든 돈으로 회사와 돈잔치하며 제3노총 준비
이정훈
그럴 리 없지만, 당신이 지난해 12월 명예퇴직했다고 가정해보자. 그에 앞서 같은 해 5월에 회사와 노조는 특별위로금 200만원을 주기로 합의했다. 다만 지급 시기를 두 번에 나눠 100만원씩 2010년 7월과 2011년 1월에 주기로 했다. 그럼 당신이 퇴직한 직후인 올해 1월에 나온 돈 100만원을 받을 수 있을까?

단체협약 공개 안 해 노동부 경고도 받아

판단이 어려운 이 가정은 현재 법정 소송이 진행 중인 사건이다. 2009년 12월 명예퇴직한 KT 전 직원들은 회사를 상대로 1인당 1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지난해 8월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는 당시 명예퇴직한 5992명 가운데 절반가량인 2368명이 참여했다. 총 23억6800만원과 지급 지연 이자를 돌려달라고 한 것이다.

? KT 이석채 회장(왼쪽)과 김구현 노조위원장이 2009년 5월 단체교섭안에 합의하고 있다. 이 단체교섭을 근거로 2009년 명예퇴직한 KT 전 직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특별위로금 지급을 요청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사진은 KT노조 누리집 갈무리)

명퇴한 이들은 재직 중이던 2009년 노사가 합의한 단체교섭안에 따라 애초 100만원을 주기로 약속했으며, 시기만을 뒤로 늦춘 것이어서 받아야 할 돈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회사 쪽은 본합의서에 추가된 ‘부속합의서’에 ‘지급일 기준으로 재직자에게 국한한다’고 명시돼 있어 명퇴자들은 지급 대상이 아니라며 맞서고 있다.

갈등의 계기는 2009년 5월 KT 노사가 체결한 단체교섭안이다. 당시 KT 노사는 임금과 관련해 △기본급 현 수준 유지 △통신보조비 지원 △특별위로금 지급 등에 합의했다.




문제는 특별위로금 지급이다. KT 노조는 당시 임금과 관련해 회사와 체결한 공식 문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통상 노조는 회사와 단체협약에 대한 가합의를 하고 협약 내용을 공개한 뒤 찬반투표를 물어 최종 결정한다. KT 노조는 찬반투표 절차를 밟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4쪽의 본합의서와 해설만을 알렸다. 단체협약문에는 특별위로금과 관련해 ‘20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만 담겨 있다. 또 노조가 발행한 ‘2009년 단체교섭 잠정합의(안) 해설’에는 ‘특별위로금 200만원 지급’과 관련해 ‘(2009년) 7월25일 100만원, 2010년 1월6일 100만원’으로 돼 있다. ‘재직자에 국한한다’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아울러 지급 시기를 두 번으로 나눈 이유에 대해 ‘대외적 시각과 집행 예산 관련으로 조정한 것’이라고 돼 있다.

이에 대해 소송 대표자 이종근씨는 “부속합의서보다 영향력이 큰 본합의서에 ‘200만원을 지급한다’고 돼 있고, 금융위기 등 어려운 상황에서 위로금을 받는 것이 눈총을 받을 수 있어 원래 2009년에 받을 돈을 나눠 지급한 것”이라며 “협약 체결시 재직 중이던 명퇴자들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또 “찬반투표 당시 ‘재직 중’이라는 단서에 대한 설명은 듣지 못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KT 노조는 단체협약안을 공개하지 않아 노동부로부터 경고까지 받았다. 경인지방노동청 성남지청은 지난해 4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준수 철저’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내 “2009년도 노사합의서에 대해 공표하지 않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6조 위반 사실이 확인되어 규약이 정하는 바에 따라서 조합원이 노동조합의 대표자에 대해 그 책임을 물을 수 있으니 유념하시기 바라며 추후 다시 동일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동법을 철저히 준수하여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KT 노조 관계자는 “당시 협약을 맺으며 연말에 명예퇴직을 실시할 것으로 생각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면서도 “관행대로 본합의서와 해설만 공개했다”고 말했다. 또 “노동부로부터 경고를 받은 것은 맞지만 관행에 따라 한 것”이라며 “명예퇴직자들의 소송에 대해서는 시간이 지난 일이라 잘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회사 쪽도 ‘법대로’만을 외친다. KT 홍보팀 관계자는 “임금에 대해 세부 내용을 담은 부속합의서에 ‘재직 중인 자’라는 문구가 있는 만큼 당시 퇴직한 이들은 지급 대상이 아니다”라며 “법정에서 그 판단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5900여 명 내쫓고 돈잔치 벌인 KT

이처럼 명예퇴직자들이 ‘돈’을 요구하는 사이 KT는 자신들만의 ‘돈잔치’를 벌였다. 2010년 10월 체결한 단체협약에 따라 지난 3월 3만여 직원들은 1인당 40만원씩 인센티브를 받았다. 약 120억원을 나눠가진 셈이다. 이는 2009년 대비 2010년 인건비 감소 목표액 3천억원을 초과 달성하고 남은 돈이다. 5992명을 명예퇴직시킨 뒤 남은 인건비 감소액을 직원들이 나눠가진 셈이다. 이에 대해 KT노동인권센터 조태욱 집행위원장은 “인센티브 지급액 절반만으로도 생활고를 겪는 명퇴자의 소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는 5900여 명을 거리로 내쫓고 만든 돈으로 돈잔치를 벌이는 회사나 노조 모두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KT 노조는 2009년 7월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해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최근에는 서울지하철노조, 현대중공업노조, 현대미포조선노조, 전국지방공기업노조 등과 함께 ‘제3노총’을 준비하고 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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