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퇴근길 사망업무상 재해 인정

직장인이 자가용 승용차로 출퇴근 도중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경우 산재보험에 의한 유족 보상과 장의비를 받을 수 있을까?

이 경우 공무원은 공무원연금법상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일반 직장인은 '출퇴근 과정이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산재 보상을 받지 못했던 게 지금까지의 판례였다. 즉, 공무원이 아닌 일반 직장인은 회사에서 제공한 통근버스 사고만 인정되고, 자가용이나 대중교통 사고는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밤늦은 퇴근길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산재보험에 의해 유족 보상 및 장의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예외적인 판결이 나왔다.

최근 부산고법 제2행정부는 26세의 젊은 나이에 퇴근길 교통사고로 사망한 창원의 한 유통회사 여직원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 2004년 10월 30일 새벽 0시 8분께 창원의 (주)파비뉴21에서 총무부 대리로 일하던 하혜영 씨가 자신이 운전하던 비스토 승용차로 창원시 천선동 대우주유소 앞 전신주를 들이받고 숨진 지 만 4년 만에 나온 판결이다.

하 씨의 유족인 어머니(당시 55세)와 남동생(당시 24세)은 회사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입사 후 20여 일 동안 휴일에도 쉬지 못하고 거의 매일 밤 11시 30분이 넘어 퇴근하는 등 과로에 시달리다 퇴근길에 재해를 당했다"며 유족 보상과 장의비를 청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이듬해인 2005년 2월 소송을 냈다.

그러나 창원지법의 1심과 부산고법의 2심에서 모두 패소하자 자포자기 심정으로 대법원에 상고했고, 지난 9월 25일 대법원에서 기적적으로 원심과 항소심을 뒤집는 파기 환송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만 26세의 미혼 여성이던 망인이 사고 당시 회사의 긴요한 업무상 필요 때문에 심야까지 근무를 계속한 후, 택시나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어려웠던 까닭에 시외(진해시 풍호동)에 위치한 자택으로 퇴근하기 위해서는 잦은 야간근무에 대비한 것으로 보이는 승용차를 이용한 퇴근 이외에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원고의 주장은 '이유있다'고 판시했다.

이에 파기 환송된 사건을 다시 돌려받은 부산고법이 지난 7일 최종적으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림으로써 4년에 걸친 긴 법정투쟁이 종지부를 찍게 됐다.

항소심과 상고심 대리인을 맡았던 법무법인 미래로 도춘석 변호사는 "출퇴근 교통사고의 경우 공무원의 경우와 형평성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던 데다, 영세사업장일수록 통근버스를 제공하지 않는 회사가 많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약자에 불리한 법 적용이라는 비판이 많았다"면서 "아예 법을 개정해야 마땅하겠지만, 이번 판례로 직장인이 다른 교통수단을 선택할 여지가 없었을 땐 심야버스에서 사고가 났더라도 적용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하씨의 어머니는 "비록 우리 혜영이는 갔지만, 이번 판결로 더 많은 사람들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다면 그렇게 헛된 죽음은 아닐 것"이라며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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