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는 큰일 났구나! 긴급을 요함!

소비자 의사 정확히 묻지 않고 가입… 100만원 환급 받기도

<이 기사는 주간조선 2107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난 5월 17일 오후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KT 사옥에 방송통신위원회 조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조사관들은 KT 고객 600여만명의 전산 데이터를 제출할 것을 KT 측에 요청했다. 방통위 이용자보호국이 전기통신사업법에 근거한 ‘금지행위 위반’으로 문제를 일으킨 KT에 사실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방통위가 KT에 사실 조사라는 칼을 빼든 이유는 최근 몇 년간 인터넷을 달군 ‘맞춤형 정액제’와 ‘더블 프리’ 전화요금 상품에 대한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KT가 2002년과 2004년에 각각 출시해 KT 직원과 하청업체 텔레마케터들을 통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 이 상품들은 최근 1년간 월평균 시내·외 통화료에 1000∼5000원을 추가한 요금을 정액으로 납부하면 시내·외 전화를 무제한으로 쓸 수 있게 하는 ‘맞춤형정액제’와 최근 6개월 월평균 LM(집전화→이동전화) 통화료에 30%를 추가한 요금을 납부하면 월평균 통화량의 2배를 쓸 수 있게 한 ‘더블프리’상품이다. 두 상품은 한때 최대 700만명의 가입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맞춤형정액·더블프리, 한때 가입 700萬

문제는 KT가 이 상품을 판매하면서 소비자에게 가입 의사를 정확히 묻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가입시켰다는 점. 텔레마케터들이 “우수 고객님들께만 드리는 혜택입니다” “고객님을 더블프리 요금제에 가입시켜 드리겠습니다” 등의 애매한 말로 고령자나 가정주부에게 형식적으로 상품을 설명하고 가입하게 한 사례가 부지기수였다. 실제 방통위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현재 맞춤형정액제에 가입된 488만1000명 중 90% 이상이 상품 가입 신청서나 상품 설명을 듣고 가입에 응한 과정을 담은 녹취록이 없는 상태이며, 더블프리 요금제 가입자 141만3000명 중 70% 이상이 이같은 관련 자료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필요에 의해 상품에 가입한 사람들에게도 최근 들어 휴대폰 사용량이 증가하고 집전화 수요가 감소하면서 ‘애물단지’ 가 됐다. 인터넷에선 네티즌들 사이에서 ‘눈 뜨고 코 베어가는 요금제’ ‘KT 적금’이라는 별명도 붙어 있다.

이 상품들을 둘러싼 분쟁은 자신들도 모르게 가입돼 있는 상품의 요금으로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소비자들이 늘면서 격화되기 시작했다. 2006년을 기점으로 소비자보호원에 KT 관련 민원이 집중적으로 제기됐고 인터넷에 KT를 고발하는 소비자도 늘기 시작했다. 결국 방통위가 나서 2008년 12월 시정명령과 함께 KT에 과징금 4억3000만원을 부과하며 사태 해결에 나섰고, 지난달엔 KT 측에 상품 가입자에게 연락해 해지 의사를 묻고 해지를 원하면 상품으로 소비자가 얻은 혜택을 제외한 부당 요금 전액을 환불해 줄 것을 명령했다.

방통위, 자진 환불 명령… KT ‘모른 척’

방통위가 지난 4월 29일 KT 고위임원들을 불러 다시 시정을 권고했지만 KT의 부당 요금 반환 노력은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실제 4월 29일 이후에도 KT는 홈페이지에 ‘(맞춤형정액제와 더블프리 요금에 가입돼 있는지) 집전화 고지서를 확인해 보라’는 팝업 창 하나 띄우지 않았고, 상품 가입자를 대상으로 문자 안내도 보내지 않았다. 홈페이지 ‘자주 묻는 질문’ 메뉴에서 ‘더블프리’를 검색하면 상품소개와 함께 ‘2010년 1월 1일부로 신규가입 중단’이라는 설명이 있을 뿐이다.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상품에 가입돼 있던 사람들은 주변에서 환불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고지서를 꼼꼼히 본 후에야 환불 절차에 나서고 있다.  상품 출시 당시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700만명의 가입자를 유치한 것과 대비되는 소극적 대처가 아닐 수 없다.

이번에 방통위가 KT 측에 고객 데이터 제출을 요청한 것은 소비자를 상대로 피해 사례를 일일이 확인해 직접 시정조치를 하기 위해서다. 방통위 이용자보호국 관계자는 “600여만명의 데이터를 엑셀 파일로 제출하라고 요청했는데 자료의 양이 엄청나 KT 측에서도 자료 준비에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자료를 받는 대로 직접 소비자를 상대로 확인작업을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

더블프리 요금제에 가입되어 있는 집전화 고지서. / photo 유마디

녹취록 요구하자 마지못해 환불

지금까지 KT를 상대로 부당 요금을 받아낸 사람들은 분통 터지는 실랑이 끝에야 환불에 성공했다고 말한다. 2006년 KT로부터 61만원을 받아낸 이명덕(53·대구시 동덕동)씨의 경우 어느 날부터 집으로 전화요금 고지서가 배달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통장 잔고를 확인한 후에야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더블프리 요금제에 가입돼 있다는 것을 알았다. 2002년에 가입된 더블프리 요금제로만 매달 약 2만2000원이 빠져나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고지서도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인터넷 발급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씨는 “집에서 살림만 하는 안사람이 인터넷으로 전화요금을 확인하는 것은 고사하고 컴퓨터도 켤 줄 모른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씨는 이 후 몇 번이나 KT에 전화해 항의했고 결국엔 환불 약속을 받아냈다. 처음에는 “환불 불가”를 외치던 KT 측도 이씨가 자신의 가입 의사를 담은 녹취기록이나 서면 계약서를 요구하자 꼬리를 내린 것이다. 상담원과의 마지막 통화에서 이씨가 “환급받을 금액이 얼마냐”고 묻자 KT 측은 대답을 꺼리며 “통장에 입금할 테니 나중에 확인해보라”고 말했다고 한다. 통장에 들어온 61만원을 본 이씨는 “그때 액수를 들었으면 내가 더 흥분했을까봐 대답을 회피한 것 같다”고 말하며 “혜택을 공제한 차액만 받았는데 다 받았으면 100만원쯤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KT가 문제 상품들에 부당하게 가입된 소비자들에게 돌려줄 전체 금액이 얼마나 될지는 추산하기 어렵다. 평균 통화료를 기준으로 상품이 설계돼 있어 피해액이 집집마다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KT 측은 “가입자 본인이 원해서 가입했거나 혜택을 보고 있는 이용자들도 있기 때문에 환급을 원하는 이용자 범위를 파악하기가 힘들다”는 입장이다.

KT직원들 무례한 전화응대도

지금까지 환급받은 사람들의 경우 환불액이 대략 20만원에서 100만원 선에 이른다. 여러 대의 전화와 팩스를 함께 쓰는 가게나 사무실의 경우 한 사람 명의의 환불액이 300만원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만약 629만4000명의 상품 가입자 모두가 최소 20만원씩 환불받을 경우 KT는 무려 1조2000억원을 물어줘야 한다.

2009년 10월 14일에 개설된 ‘KT피해자들의 정보공유와 집단소송(http://cafe. daum.net/kt.lawsuit)’ 카페에선 KT 측에 전액 환불을 요구하는 집단소송이 진행 중이다. 애초에 가입 의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입시킨 것은 ‘명의도용’이기 때문에 그동안 납부했던 전액을 돌려받을 권한이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현재 1차 소송에는 모두 55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KT 측의 변론일은 5월 27일로 예정돼 있다.

집단소송 카페에 올라온 ‘우리들의 피해사례’ 메뉴엔 요즘에도 하루에 몇 건씩 KT와 실랑이를 벌인 내용들이 올라온다. 2002년 맞춤형서비스에 가입돼 8년 동안 월 1만4100원씩을 납부해온 김모씨는 “KT 고양지사에 전화를 걸어 상세내역을 요구하며 ‘부당이득을 취한 게 아니냐’고 따지자 남자 상담원이 ‘무슨 부당이득이야!’라며 되레 화를 냈다”며 “본사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자 ‘그런 건 114에 물어보라’며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제가 여자라서 였을까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한 네티즌은 “숙련된 텔레마케터가 매뉴얼대로만 응대해 형식적인 상담만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며 “계속 화를 내자 ‘알았다’며 전화를 끊더니 집에 전화해 ‘댁의 따님 참 이상하시네요’라고 했다”고 한다. ‘80세 할머니 화병으로 누운 사연’이란 글엔 할머니의 고지서를 보고 손주가 대신 전화해 “고소하겠다”고 했더니 광화문지점 상담원이 “아 그러세요? 그렇게 하실 거죠? 꼭~그러세요”라고 비아냥거렸다고 쓰여 있었다.

위의 피해사례들이 ‘사실’임을 주장하는 카페지기 김유진(32)씨는 “고소한 피해자들 중엔 300만원 이상의 환급금이 물려있는 사람들도 있으며 상담자들과 통화 당시 불쾌했던 경험들을 녹음한 녹취록도 가지고 있다”며 “대기업을 상대로 승소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피해자들의 감정이 상할대로 상해 끝까지 싸워볼 작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KT 측은 “문제 상품에 가입된 모든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서는 많은 상담원이 필요하고, 그들을 고용해 훈련시키는 덴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고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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